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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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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BY 라니 2010-12-31

          

오늘

오전 8시 28분

5호선 개화산 역 출발

도착하여 출구 나가기 가까운 곳에

맘에 드는 자리를 앉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움

갑자기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일고

자세를 바로 세워야 할 때

무척이나 불안해 보이는 한 사람이 옆자리에 앉는다.

어깨에 멘 빅 백을 무릎위에 얹고

한 손에 들려있던 뭔가 가득 들은 쇼핑백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한 손 피 엠 피 가방위에 올려놓고

입에 물려 있던 자판기 커피 종이컵 을 내렸다 다시 입에 물었다

빅 백 다시 정리하여 자리를 마련하고

입에 물려있던 종이컵 내려 아슬아슬 자리 잡아 앉혀놓고

빅 백에서 삼각 김밥 꺼내 한입 베어 먹고

손에 묻은 가루 털어내고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삼각 김밥 다시 한입 베어 먹고

손에 묻은 가루 털어내고

종이컵 다시 입에 물고

가방 속을 뒤적뒤적

한참동안 뒤적뒤적

립스틱과 거울 꺼내 가방 앞쪽에 놓고

다시

반복

그러는 동안 눈은 계속

피 엠 피 에만 머물고 있고

보는 옆 사람이 무척이나 불안하여 신경이 쓰이고

정작 본인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

그렇게 김포공항역은 바쁘게 지나간다.

반듯하게 펼쳐진 내 무릎위의 책은

경이롭게 옆 사람을 살피기에 바쁜 탓에

오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 페이지 그대로 부족한 잠을 자고

곳곳에서 낯익은

그러나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고

같은 자리에서 매일 보이는 얼굴,

아는 채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님

그렇게 속으로 은근히 반가운 얼굴들로

늦음과 이름을 체크 하고

오전 8시 38분 우장산역 도착

우장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살짝 방향을 전환하면

저 높이 언덕이 보인다.

저 언덕 정상이 나의 일터가 있는 곳이다.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출발

딱! 딱! 딱! 딱!

밑창이 닳아진 구두소리가 요란하다.

단 한 번의 쉼표도 없이

딱! 딱! 딱! 딱!

휴~ 한숨 몰아쉬면

오전 8시 43분

엘리베이터 앞이다.

한 박자만 늦추면

노랗게 분칠하느라 수고하는 은행나무 행렬도

빠알갛게 부끄러운 척 손내미는 아파트속 단풍나무도

십대소녀처럼 웃어제낄 만큼 요상하게 구르는 나뭇잎도

넘어질듯 그러나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유치원아이의 반가운 달음박질도

오빠 배웅하는 유모차속 아이의 예쁜 표정도

모두다

내게 주어진 선물인데

그 한 박자 늦추지 못하는

여유없음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이 시간에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