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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BY 박시내 2010-09-28

언니는 불가능을 가능케했다는 자신감을 갖고있다.

 

그것은 고등학생때 터득한것이었다.

 

예비고사가 있던 시절, 언니는 고3초반까지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아버지는 "넌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르구나.. 뒤에서 세번째냐? 또?"

 

고3 봄에 가정방문이 있었다.  언니의 담임선생님이 저녁에 집에 왔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 숙대는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은 되는건가요?"  물어보고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 숙대요? 예비고사나 붙으면 다행이게요?"

 

선생님이 가고 엄마는 언니에게 "야,, 우리는 너를 후진 대학보낼 돈 없다, 너도 알다시피

 

오빠 학비대기도 빡빡하고 네 밑으로 동생이 3명이야... 예비고사도 떨어지고 대학도 못가면

 

잘됐네...집에서 식모나 하다가 결혼이나 해야지뭐..."

 

그날부터 언니는 독기를 품었다.

 

언니는 죽기살기로 공부를 했다.  그때나 가능했을까?

 

언니는 수학만 빼고 모든 교과서를 몽땅 암기했다. 

 

다행히 영어는 중학생때부터 미국친구와 펜팔을 했기때문에 잘 하는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기초도 없는 네가 지금 몇달이나 남았다고 발악을 하는데? 괜히 힘빼지 말지?"

 

언니는 참고서를 사달라고 했을때 엄마가 하던 말이었다.

 

언니는 밤마다 자신의 책상에 앉아 의자에 몸을 묶고 공부를 했다.

 

"신경질나게 자꾸만 아침에 이부자리속에서 눈을 뜨는거야!  잠잔 기억이 없는데 말야"

 

그 뒤로 언니는 의자에 못쓰는 넥타이로 몸을 묶고 공부를 했다.

 

얼굴이 백짓장같아지고, 코피도 쏟으며, 그렇게 공부를 했다.

 

57등이 35등이 되던날,, 선생님은 언니가 컨닝을 한것이라 의심을 했다.

 

그래서 시험을 보게되면 어김없이 언니의 사물들을 꼼꼼히 체크까지 했다.

 

35등이 23등이 되고,, 13등이 되고,,  3등이 되었다.

 

더 이상의 등수상승이 안되었다..왜냐하면 수학때문이다.

 

"이 반에 수학빵점 나왔다... 박미나 일어나!"  수학시간의 굴욕이다.

 

"이 반에 사회 백점 한명 나왔네..박미나 일어나..박수.."  사회시간의 박수..

 

이렇게 언니는 예비고사를 붙고, 예비고사의 점수대로 이화여대에 응시하여 합격을 했다.

 

그 당시 본고사는 한 과목이라도 빵점이 나오면 불합격이었다. 언니는 수학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 한 장르만 파자...그나마 함수가 가장 할만하니까...'

 

결국 언니는 수학문제에서 한 문제만 맞았다.  다른 과목은 거의 다 맞았다고 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달달 외었으니까.........

 

언니는 3학년때  그당시 여자들의 로망인 스튜어디스 시험을 본다.

 

대한항공에 합격을 하게된다.

 

그 당시 9차까지의 단계를 다 패스하게 된것이다.

 

맨 마지막 임원진의 면접에서 함께 들어간 5명의 후보중 가장 옷을 잘입은 여자애한테만 질문이 쏟아졌다며

 

집에 와서 언니는 울었다... 그 애가 된것같다며...

 

하지만  언니가 붙고 그 옷잘입은 여자가 떨어진것이다.

 

언니는 굉장히 예뻤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미희 정윤희 등 당대스타들의 얼굴을 적절히 섞어놓은것처럼 예뻤다

 

집에까지 꽃다발을 들고 쳐들어오는 남자부터, 길에서 쫒아오는 남자등등...

 

언니는 만 3년을 일하고 스튜어디스일을 그만두었다.  고등학생때부터 그리 열망하던 직업이었는데 실상은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떨땐 울면서 집에 오곤했다.   공항과 집이 너무나 멀어서 그것도 힘이 들고

 

미주노선이나, 사우디아라비아노선이 너무나 힘이 들다고했다,, 나중엔  퍼스트클래스에서 일을 했는데, 한복

 

입고, 풀고스로 서빙하는것도 너무 힘이 든다고했다.

 

스튜어디스를 그만둔 언니는 통역일을 짬짬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980년 미스유니버스대회가 한국에서 열릴때 샤프롱일도 했다.  그당시 한국일보에 샤프롱을 뽑는다는

 

기사가 나왔고, 당당히 뽑힌거였다. 

 

그 후 언니는 외국회사 비서로 들어가는게 소원이 되었었다. 그러나  스튜어디스를 하는바람에 대학을 중퇴할

 

수 밖에 없었던 언니는 졸업장이 없었던것....

 

그렇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회사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언니는 매일 저녁마다 조선호텔 바에서 진을 친다.  그 당시 명동 칼 빌딩엔 외국인회사가 많았고. 지점장들이

 

향수를 달래기위해 자기네들끼리 만나 회포를 푸는곳이 조선호텔 바 라는걸 알아냈기때문이었다.

 

언니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같은 음료를 시키고 혼자 앉아있기만 했다

 

얼마안가 외국점장들의 의문의 눈초리가 언니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지?  이곳 바에는 한국여자가 잘 안오는덴데?  무슨 사연이 있나?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고, 급기야  한명의 외국점장이 말을 건넨다.

 

지금말로 낚시에 걸린거였다.

 

그 외국점장은 네덜란드 선박회사 지점장이었다.

 

이렇게 안면을 트고, 그 뒤로로 자주 합석을 하며  형식적인 사담을 하게 된다. 언니에겐 목적있는 사담이었게지만..

 

어느날  "얼마있다가 내 한국인여비서가 그만둔다고 하는데 너네들 비서중에 아는사람 추천할사람 없냐?"

 

언니가 바라던 그 상황이 아닌가?

 

언니는 그 기회를 잡았다...    내 프로필이 이러쿵저러쿵인데 나를 비서로 고용하겠느냐...

 

언니는 바로 이력서를 갖다냈고  회사에 출근을 하게되었다.

 

그렇지만 암초에 걸린것..  한국인점장이 모든 서류를 내라며 태클을 건것.. 언니는 낙하산 아닌가?

 

언니는 졸업증명서때문에 이 아까운 비서자리를 그만둘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된다.

 

그러다가 충무로 인쇄거리에 가서 위조서류를 만든다.  

 

언니는 그 선박회사에 2년정도 다니게된다.   한국휴일과 네덜란드휴일을 놀 수있고, 주 5일 근무에다가

 

봉급도 아주 좋았던 그 회사...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었던 꿈같은 회사...

 

언니는 또 하나의 꿈을 위해 그 회사를 그만둔다.

 

그것은 바로 외국으로 나가는것이었다.

 

스튜어디스를 하며 많은 선진국을 돌아다녀봤던 언니... 언니는 한국에서의 평범한 삶이 너무나 싫었다

 

"허구헌날, 연탄불때고, 시장에서 콩나물이나 사서 국끎이고 김치만들고,,남편 치닥거리하며 늙어가는건

 

절대로 하기 싫다.. 난 이 나라가 싫다..  짚신이나 신고다닐 나라같으니라구..."

 

그 당시 한국이 어떠했는가?  통행금지가 있었고. 외국여행은 아무나 다닐 수 없었고. 외국물건역시 아무나

 

갖지 못했고, 저녁 5시면 국기하강식에 동참해야했고, 나라는 항상 데모로 시끄러웠고. 앞이 보이지않는 그런

 

나라아이었는가?    언니는 다른 나라에서 자유를 맛보았었고. 이미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정도였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안되는게 없었고. 영어와 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도 있었고 나이도 겨우 27살밖에

 

안되었으니....

 

스튜어디스를 할때 몇번 가보았던 프랑스는 언니에게 또다른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언니에겐 프랑스에서 몇번 관광객으로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그곳 파리에서.

 

안부편지만 몇번 주고받았던 남자.   유학생이라는 것 외엔 아는게 전부였던 남자.

 

언니는 이 미지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  단지 프랑스에 간다는것 하나만으로.

 

예전에 외국인회사에 들어가기위해 위조서류를 만들었던  그 단순함(?)으로..

 

그것도 언니보다 12살이나 많았던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이 서강대를 나왔고. 대학원도 나왔다고 했으며 영화공부를 하기위해 유학을 왔다고 했다

 

그리고 파리에 지인들이 많아 그 곳에서 결혼식을 할것이기때문에 한국에선 약혼식만 하자고 했다.

 

언니는 그래서 면사포도 써보지 못했다.

 

파리로 간 언니는 아연실색을 하게된다. 모든게 거짓말이었다.

 

낡고 좁은 기숙사로 데려간 그 남자.  그 방엔 간이 철제침대하나와 세면대하나가 달랑 있는 2평짜리 방이었다.

 

그 남자는 서강대 대학원시절 학부학생들에게 북한 불온선전물을 틀어보여준 죄로 박정희정권으로부터 수배를

 

받던 중 프랑스로 도피성 유학을 가게된 남자였다. 

 

그 곳에서 공부는 커녕 일본인 면세점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미래없는 남자에 불과했다.

 

언니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가져간 돈을 털어서 원룸을 얻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려

 

애썼다.  언니는 불어를 잘 못했기때문에 면세점캐쉬로 일을 하며 솔본느에서 랭귀지코스를 밞기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남자는  자신이 번 돈은 자신과 친구들의 밥값과 술값으로 탕진을 했고, 언니는 돈을 벌어 원룸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해야만했다.   남자는 거의 매일 친구들(한국사람)을 집으로 끌고들어와 술상을 차리라며, 일하고

 

들어온 언니를 쉬게하지도 않았다.   언니는 파리에 있는 한국사람거의를 밥을 해먹였노라고 했다.

 

남자는 거의 알콜중독에다가, 한국에서 수배를 받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친구들을 찾았다.

 

어느날  밖에서 이미 만취된 남자는 친구을 데리고 새벽 1시에 들어와 술상을 차리라하고는 또 술을 먹는다

 

원룸이라 귀퉁이 침대에서 잠을 자던 언니는  새벽에  쏴~~하는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되고  친구란 남자가

 

언니침대옆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모습을 보게된다.  

 

언니는 소리를 지르고,  오줌누던 남자는 놀라서 도망치고,  소리를 지르나다며 남자는 언니를 때리면서 맨발로

 

쫒아냈다.  그때가 새벽3시였다고 했다.      세느강가에 서서 언니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했다.

 

실패와 패배..인정하고 싶지않았다.  

 

언니는 그 날로 별거에 들어가고,  그 뒤 몇년뒤에 이혼을 했다.

 

남자가 이혼서류에  싸인을 안해주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가정을 원해서 결혼을 한게 아니었다.   남자는 돈을 벌어와서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술상을 차려줄 물주가

 

필요했을뿐이었다.   

 

그 남자는 그 뒤  한인회장(2년간하는것)에 한번 당선되어서 한민족체육대회가 열리던 해에 한국에 온적이있었다

 

언니와 그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도 우리집에 와서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고, 목욕까지 하고 갔다

 

언니와 다시 잘 살아보겠노라는 다짐까지 하던 뻔뻔스러운 전라도 남자.....

 

 그 후 언니는 프랑스회사에 취직이 되어서 고양이 한마리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나,  너무 외롭지않겠는가?   외국인은 외국인일뿐..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여정을 보면 

 

스무명의 여자가 살았음직한 생을 혼자서 살아온것같아 안타까울뿐이다.

 

연탄불갈기싫어서, 콩나물 다듬기 싫어서 떠난 한국...  이제는 이 나라에 돌아올날만 고대하고있다.

 

그러나 연금이 걸려있고. 여기서 도중하차를 할 수없는 상황이다.

 

매년 바캉스차 한국에 한달간 왔다 갈때마다.."한국이 이렇게 변할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어..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할줄 알았다면 외국에서 고생하며 살 이유가 하나도 없었을거야... 뭐야..마트에 가면 반찬도 다 만들어

 

팔고,  도처에 맛있는 음식도 깔려있고.. 사람들 구경하는것도 재미있고.. 거기다가 테레비젼에서는 죙일 드라마도

 

실컷 볼수도 있잖아?  난 너무 억울한거지..안그래?"

 

언니가 떠나던 그 당시엔  마트도 없었다..그냥 동네 구멍가게..  과자는 새우깡. 산도. 라면땅   치약은 럭키치약

 

비누는 다이알,  조미료는 미원, 빵은 크림빵, 곰보빵,  음료수는 콜라 사이다.. 이게 전부였잖은가?

 

전자제품은  금성사..   

 

30년도 안된 세월동안  눈이 뒤집힐정도로 너무나 많이 변한 한국...  압구정동엘 가면 외국에 있나... 착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언니는 한국에 와서도 외국인이고,  그곳 프랑스에서도 외국인의 신분이다.

 

한국에 오면, 말만 한국말을 할뿐이지, 전혀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난 언니가 그 옛날로 다시 돌아가

 

의자에 몸을 묶고 공부하는걸 말리고 싶다.

 

난 언니가 대학을 자퇴해가며 스튜어디스가 되려는걸 말리고 싶다.

 

난 언니가  잘나가는 네덜란드 선박회사의 비서일을 그만두려는걸 말리고 싶다.

 

적어도

 

적어도

 

언니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한국에서 살아주었다면

 

지금쯤  참 많은걸 갖고, 경험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을것이라 확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