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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목걸이


BY 햇살나무 2010-11-21

어릴 때 엄마의 화장대는 참 궁금하고 부러운 환상같은 존재였다.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아기자기한 화장품들과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만들어 주던 셋팅기,

장신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엔 반지 하나 끼지 않던 엄마이지만 그래도 몇가지

외출용 장신구가 구비된 작은 보석함까지.

엄마의 온전한 전유물인 그 화장대앞에서 뚝딱 마술 부리듯 화려한 변신을 하는 엄마를

보고있자면 마냥 신기하고 부러운 것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탐내던 물건이 있다면 작은 루비가 박힌 금목걸이였다.

다른 장식이 없어 심플한 디자인에 검붉은 빛깔의 루비는 컷팅이 참 이뻐 어린 마음에도

좋아보였던 것이다.

내가 그 목걸이를 좋아한다는 걸 안 엄마는 한번씩 내 목에 걸어주시기도 했지만

그 목걸이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기념으로 반지와 목걸이를 선물해 주셨는데

나 역시 장신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자주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쩌다 목걸이를 하고 나갈 일이 있으면 엄마의 루비목걸이를 빌려서

하고나가곤 했다.

결코 화려하지 않고 (그래서 맘에 든다..난 화려하거나 알이 큰 보석은 싫어하는 편이다.)

얌전하고 수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목걸이지만 루비의 색깔때문에 존재감을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포인트가 될만한 장신구였다.

오랜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도 결혼예물을 포함해 몇가지 패물들이 생겼지만

보석류나 장신구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그저 작은 소품정도로만 생각할뿐 별다른 애착이 없다.

작년 이맘때즈음..

김장김치를 갖다주러 오셨던 엄마가 작은 종이봉투를 건네 주셨다.

봉투속에 담긴 물건을 손바닥에 쏟아보니 루비목걸이와 작은 십자가 목걸이가 나왔다.

"옛날에 너 이 목걸이 좋아했었지?"

이젠 나이가 들어 안그래도 좋아하지 않던 장신구를 더 이상 할 일도 별로 없고

안쓰고 갖고 있느니 나 주자 싶어 챙겨오셨단다.

알이 큰 건 아직 젊은 내가 쓰긴엔 별로인 거 같고 몇가지 안되는 장신구 중에

그 루비 목걸이와 작은 십자가 목걸이는 내가 쓰기에 좋겠다싶어....

(ㅎㅎㅎ 사실 그 두 목걸이는 어릴때부터 내가 탐내던 거라 이담에 내가 크면

나 달라고 조르던 녀석들이었다...^^;)

몇십년만에 나의 소유가 된 목걸이....

참...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게 갖고싶던 목걸이가 드디어 내 것이 됐는데 마음은 짠하게 서글펐다.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이 그랬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음이 그렇고....

그렇게 예뻤던 엄마의 늙으신 모습이 그렇고...

목걸이는 그대로인데 이렇게 변하는 사람인지라 그렇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들이 경매에 오르내리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찰나를 사는 인간이 수십만년을 견디어온 보석을 소유할 수 있는가 하고.

물론 시대마다 주인은 바뀌겠지만 그건 단지 잠시 지녔다는 것일뿐

영원한 소유주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둥바둥 그걸 갖겠다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목걸이라 생각했는데 지인이 알아보고 이쁘다고 그런다.

내 눈에만 이뻐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 목걸이가 나에게 더 각별한 이유는 루비는 나의 탄생석이기 때문이다.

참 여러가지로 의미부여가 되는 목걸이이다...ㅎㅎㅎ

나에게 딸이 있다면...

아마 그랬다면 그 아이도 틀림없이 내 옆에서 그 목걸이 나 주지..그러며 쫑알거릴텐데..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르면 나 또한 이 목걸이를 딸에게 물려주며

좋아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볼텐데...딸이 없음이 살짝 서운한 순간이다.

(어쩐지 며느리는 나만큼 좋아해주지 않을 것같다.

뭐...물려주고말고 하기엔 넘 작은 목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