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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BY 시냇물 2012-09-23

무엇이든 간절하면 이루어 진다 했던가?
 
박완서님의 글이 손숙씨의 모노드라마로 공연되기에
내심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그냥 저질러(?) 버렸다
 
23일까지 공연인데 날짜를 아무리 따져 봐도
이런저런거 다 감안을 하면 나중에 후회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른 다음
"아, 그때 볼 걸"하고 후회해 봤자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니.
누군가는 그랬다
 
나이 먹어서 "~~할 걸"하는 후회야말로 어리석은 거라고.
 
화,수 공연은 마침 주부들을 위한 시간이라 특별히
티켓 할인이 되는지라 원주에 사는 언니와 약속을 잡았다
평소 신세만 지는 탓에 이럴 때 조금의 갚음을 하려는 마음과 함께
 
 
손숙씨야 베테랑 배우인지라 우선 믿음이 간 것도
공연을 보려는 생각에 부채질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려 1시간 30분의 공연을
혼자서 이끌어 가는 손숙씨의 연기에 차츰 빠져 들었다
 
 
시댁 동서와 전화 통화하는 내용으로 연극은 시작을 한다
주인공은 다 키운 하나뿐인 아들을 민주화 운동으로 잃고
커다란 상처를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안으로 삭이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주인공에게 친척이나 친구들은 행여 아들로 인해
상처를 들쑤실까 싶어 조심스럽기만 한 반면
천연덕스러운 사람은 바로 주인공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다 묻고 자식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데 어찌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는지.
 
 
그냥 자신에게 최면을 걸다시피 지탱해 온 시간들이었는데
동창을 방문하면서 애써 피해 왔던
자신의 깊고 깊은 상처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고 치매까지 온 장애 아들을

돌보며 입으로는 "에이구, 이 죽일 놈, 어서 뒈져라"하지만
주인공이 막상 친구를 도우려 하니 다른 사람은 만지지도 못하게
괴성처럼 소리를 지르며 엄마만 찾는 그 아들의 모습에서  
부러움 섞인 질투마저 느끼는 자신을 보게 된다
 
주인공은 그동안 잘도 참아 왔는데 그만 거기서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그 설움이 다 통곡으로 나온 것이다
 
 
손숙씨의 연기가 어찌나 열정적으로 극에 몰입을 하게 하는지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나 역시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이 가며 눈물이 나왔다
 
비로소 아들의 부재를 인정하며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큰 일을 겪게 되는데 그럴 때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모처럼 본 연극 한 편이
깊어가는 이 가을에 나 자신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