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남편이 옥상에 올라가더니
조그만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를 모조리 뽑아 갖고 내려왔다
어제 하루 물을 안 줬더니 온통 진딧물과 벌레가 기승을
부린다며 다 뽑은 것이다
워낙 배추된장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늘상 상에 오르는
국은 된장국이어야 하기에 얼갈이 배추를 봄에 씨뿌려
심은 것이다
나야 가꾸는 덴 재주가 없어 옥상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일은 농고 출신인 남편의 몫이다
상추든, 부추든, 고추든 뽑아다만 주면 반찬을 하는 게 내 몫이니까
우리 옥상에 지금 심겨져 있는 건 얼마 전 모종으로 심은 고추와 가지이다
오이 고추를 몇 포기 심었다는데 하얀 꽃이 피면서 한창 뜨거운 햇볕아래
열심히 자라고 있는 중이다
머잖아 실한 고추, 가지가 열리면 열심히 먹어야지
남편이 뽑아다 준 배추를 보니 얼갈이라 해도 어느 건 제법 실하게
속이 들어차 그냥 배추국을 끓여 먹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배추를 심어도 맨날 국만 끓여 먹었지 김치를 담궈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엔 국끓일 연한 것들은 남겨 두고
실한 것만 골라 김치를 담가 보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준비작업부터 다듬고, 절이고, 씻고
하는 과정이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라 요즘은 김치를 담글 때
거의 절임배추를 사다 담그는 편이다
조금 비싸긴 해도 일단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김치 담그는 날은 거의 하루종일 김치 담그는 일에
매달리게 되어 정말 날을 잡다시피 해야 된다
다행히 얼갈이는 절이는 데 시간이 그리 많이 들어가진
않으니 모처럼 시도해 본 것이다
아, 나는 배추 절이는 덴 정말 소질이 없는지
아직도 소금의 양을 맞추는 게 어려운 시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땐 짜거나, 또 소금이 덜 들어간 때는 배추가
금방 밭으로 갈 것처럼 뻣뻣하기도 하니 말이다
아직도 주부 9단은 멀기만 한 일이다
그래도 음식은 자고로 정성 아니던가?
먼저 찹쌀풀을 쑤어 놓고 양념에 들어갈 재료를 몽땅 믹서에
갈아서 액젓과 고추가루를 넣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은 다음
얼추 물이 빠진 배추를 몽땅 큰 다라이에 투하....
포기가 실하다 해도 막상 절여놓고 보니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애기처럼 자그마해서 큰 통으로 하나도 안 될 것 같았다
절여진 배추 잎파리를 조금 찟어 양념을 묻혀 먹어보니
맛은 그럴싸했다
앗싸, 이제 잘 익기만 하면 된다
내심 토속적인 시골김치 맛을 기대하며 자르지 않고 길게
버무리니 모양은 제법 괜찮게 보여 다 익기만을 기다리면 될 것 같다
텃밭이 조그마한데도 이렇듯 내 손으로 길러 먹는 채소로
김치까지 담그고 보니 일반적으로 사서 담근 배추보다
더 애정이 많이 간다
그래서인가 배추가 크기는 작아도 고소한 맛이 뒤끝으로 남았다
다 익으면 먹기에 아깝진 않을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