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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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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날


BY 시냇물 2010-03-29

 

오늘도 난 씨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홍보물을 준비해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속으로 이 정도의 장수면 단지 안 아파트 게시판에 충분히 붙일거라
생각하고 들어섰는데 아뿔사, 70장이나 있어야 된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다시 돌아와 모자라는 장수를 다른 것과 합쳐 들고
또 다시 사무실로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섰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
분명히 1시까지 접수를 받는다 해놓고 벌써 접수가 끝난단다.
하루에 붙이는 양이 있어 더 이상 접수를 받을 수 없대나 어쨌대나.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 A4용지 길이가 넘었으니 돈을 더 내던가
아니면 중요한 홍보용 전화번호를 자르던가.
할수없이 아쉬운 소리를 하니, 그건 당신 사정이라며 냉정하게
거절하는 매몰찬 부녀회장의 한 마디에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어 주섬주섬 홍보물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치 내가 무슨 장사꾼 취급을 당한 것 같아서
괜시리 주눅이 들어 콧날이 시큰했다.

그래도 예서 말 내가 아니다 싶어 오기를 부리기로 하였다.
그냥 돌아온다는 것은 순순히 승복하는 것같아 왠지 꺼림칙하기만
하였다.
무조건 찍은 동에서 제일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면서 출입문에
일일이 홍보물을 붙이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15층부터 조심스레 붙이며 내려오다 13층의 계단에서 경비원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조심스러웠는데 하필 거기서
제지를 당할 게 뭐람. 큰소리로 잡상인 내쫓듯 붙이지 말라고
호령이었다. 할수없이 쫓겨 내려와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한 번 홍보를 했던 다른 아파트에 들어서서 또 다시 나머지
홍보물을 붙이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지.
이번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따라오면서 문에다 붙이지 말라고
또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웃으며 알았다고 하긴 했지만 이미 기분은 영 엉망이 되었다.

하루에 몇 군데서 이런 일을 겪다보니 마치 내가 무슨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아 기분을 잘 추스를 수가
없었다.

비도 오락가락 하는 날,
마음도 기분도 영 아니올시다가 되어 집으로 일찍 돌아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교재를 들여다 보고
내일 수업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홍보를 멈출 수는 없다.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