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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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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 문을 열며.......


BY *콜라* 2010-03-28

내가 쓴 글이 타인에게 처음 읽혀진 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여학생'이란 잡지를 통해서였다.

 

이후 교내 시화공모전에서 어줍잖은 시가 당선되어

문학행사가 열린 강당에 전시되면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던 시골 계집아이 나의 존재가

국어선생님 이하 선생님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때

황홀 할 지경이었다. 

 

작법을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깡촌의 촌닭이

드넓은 대도시에서 얼떨결에 거머 쥔 수확치곤 엄청난 것이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것도 이즈음 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글은 때론 눈물보다 슬프고, 아픔보다 처연하고

사랑보다 달콤한 것이었다.

 

글로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미운 이와 화해를 하고

상상만으로도 가슴 떨리던 이의 사랑도 쟁취하고

언론사 공모에 당선되어 활자화 된 내 이름을 보며 주체하기 어렵던 기쁨...

자잘한 글들이 방송 될 때마다 상품을 타는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이색적인 행복....

 

그러나 삶의 연륜이 내면을 채우고 넘쳐난 뜨거움 없이 쓴 글로

너무 쉽게 얻어지는 세속적인 즐거움 앞에서

순수성을 잃고 타락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박동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인간이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순수한 열정도 되살아나 학보사와 여성지를 기웃거리며 부스러기 일을 배우다가

망설임 없이 '글쟁이'가 되었다.

 

한국, 필리핀 그리고 밴쿠버에서...

도합 22년이라는 시간을 기자라는 타이틀로 마감에 끌려 다니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참 많이도 써 댔다.

 

기업인, 정치인, 보통사람, 연예인학자, 잡상인, 거지, 창녀에서 수녀까지  ..............

그 사이 내 이름을 건 단행본 실용서가 서점 판매대에 올랐고

그로인해 여기저기 쏟아진  IMF 시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재기를 도우며

24시간을 38시간으로 늘리며 살던 시간도 있었다.    

  

거짓과 오만과 야합으로 똘똘 뭉친 인간을 만나고 온 날이면

족히 사흘은 썩은 생선대가리 냄새가 눈과 귀에서 배어 나와 맥이 풀렸다

그렇게 빈둥거리다 마감에 쫓겨 급하게 자판을 두드리면

타이핑 소리가 요란하게 내 마음을 대신한다.

'........'..................'

 

마음에도 없는 말과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적당히 시간을 보낼 무렵

가슴을 열면 바스락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조바심에 신춘문예란 것에 건방진 고갯짓도 해보고

방송사 드라마작가 과정에 박봉을 털어 붓기도 했다. 

 

하지만 한 남자와 그 가족들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서

나도 사랑을 받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랑을 나누어 주는 법을 배웠고

내 생애 처음 행복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서 돈벌이 글쟁이가 싫어졌다.

진정성이 결여된 마음으로 포장지 씌워 남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도 지겨워졌다.

 

행여 서점 구석에서 세월만큼 먼지가 쌓인다 해도

타인에게 산술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내 안에서 꿈틀대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수필이다.

나를 중심으로 순수하게 내 마음을 조합해 이웃과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일, 그런 글이 쓰고 싶어 '맘 살'이 났지만

그때마다 우연인 듯 또 생계가 발목을 잡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퇴근 한 남편과 손 잡고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이웃들이 억지로 쥐어 준 푸성귀 한 줌이 저녁 반찬의 전부일지라도

그들에게 부족하고 내게 축척 된 작은 지식 있다면 푸성귀 대신 나누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강원도 휴전선 너머 작은 학교 교사인 남편을 처음 보던 날 첫 눈에 반했다.

그것은 클로즈업으로 정지된 컷처럼 신선한 충격이었다.

 

먼저 프로포즈하고 먼저 고백하고 먼저 청혼하고 서둘러 숨가쁜 나를 주었다.

박사 버리고 사업가 버리고 산골로 들어가길 자청하는 나를

사람들은 대놓고 '짧으면 1, 길면 3'이라 못 박으며 꽃놀이 떠나는 여자 취급했다. 

 

15년이 지난 요즘 나는 종종 그날, 그들의 표정을 떠올린다.

그들이 사랑을 알기나 한 걸까. 

샤프하고 똑똑한 인간이 질리도록 많은 세상에서

내가 선택한 사랑의 순수함이 몇 %의 순도였는지

혹시 지금은 ... 알게 되었을까.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자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삶의 꿈과 사랑을 단번에 채워 준

그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삶의 기쁨이며

그와 나누는 숨결 하나 하나가 내 행복의 소재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모두에게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며

수필이란 틀을 빌려 내 마음을 쏟아 붓고 싶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렇게 갈망하던 수필이 싫어 졌다.

'정통'이란 틀에 갇혀 대화체를 배제 해야 하는 정형적인 ..... 

틀 맞춰 줄 맞춰, 말 맞춰 정해진 글쓰기는 또 자유로움과 거리가 있었다.   

 

내 감정과 생각이

돈벌이로 쓰던 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답답하던 그 날처럼

호흡 곤란에 빠져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달콤한 박하사탕처럼 두 차례의 당선 기쁨을 맛 본 이후

공모전, 그것으로부터 내가 먼저 떠나는 길을 택했다. 

 

요즘도 '공모전' 당선작에 이름 올리기 위해

목숨 거는 친구들과 만나면, 나는 차 향을 음미하며 말을 아낀다.

 

그들은 내가 아니므로.....

 

 -감사합니다.-

 

이 방에서는 누군가에게 읽혀 지기 위함보다

저 자신을 행복에 빠뜨리기 위한 글 쓰기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썼던 글들을 정리하며 또 한번의 사랑에 빠지는

공간이길 바라며 방 하나를 얻어 세를 듭니다.

작고 소박한 방이지만 저와 더불어 행복하길 바라는 분들은 누구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