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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속은 아직도 몰라


BY 만석 2016-04-04

영감 속은 아직도 몰라

 

ㅎㅎㅎ.

영감이 퇴직을 하고 백수가 되고, 그래서 삼식(三食)이가 되고. 머지않아 영감이 그리 될 것이란 막연한 미래를 나도 일찌감치 점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러다가 급기야는 잔소리꾼이 되어버렸다는 지인들의 투정만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영감은 아마 잔소리는 하지 않을 걸.’.

 

그랬다. 그이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다. 병을 얻어 병원생활을 하고 난 뒤 사무실을 지인에게 넘겼다. 주치의(主治醫)의 명령에 따라 운전하는 것을 온 식구가 말렸으나, 가끔은 아니 자주 차를 몰고 나가기를 몇 차례. 할 수 없이 차를 없앴다. 영감에게 반() 동의(同意)는 얻었으나, 차를 없앤 뒤로 영감의 상실감은 무척 컸다. 말 없는 사람의 무언의 항변은 차라리 고함을 치며 발광(發狂)을 하는 것보다 그 힘이 더 크다.

 

차가 필요할 땐 아이들을 부르지 말고 택시를 탑시다.”

그렇게 종용(慫慂)을 했고 그러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영감도 나도 남들처럼 사치를 떨 위인(偉人)들이 아니. 게다가 전철의 무임승차권 유혹도 쏠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전철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우리 내외가 운동 삼아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말씀이지. , 이웃들에게서, 둘이 나란히 걷는 게 좋아 보인다는 소리도 있고.

 

그러나 그렇게 사는 동안, 영감이 차츰 변하고 있었던 걸 나는 미처 감지를 못했다. 내가 그런 일에는 좀 둔하걸랑. 도통 의논을 해서.’라는 게 먹히지를 않는다. 나는 작은 일이라도 마누라와 의논을 하자는 게지. 내 방 침대의 방향을 바꾼다든가, 액자의 자리를 바꿔 단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일이라도 내 동의(同意)를 구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야. 가사(家事)는 주부의 유일한 영역이 아니냐구.

 

어느 날 침대가 자리를 바꾸었고, 어느 날은 화장거울이 자리를 떴고 또. 왜냐고 물으니,

머리맡에 장식장이 있어서 지난번처럼 당신 얼굴로 약방이라도 떨어질까봐.”

~, 그런 깊은 뜻이.

그건 좋다 이거지. 전에 무거운 액자가 머리 위로 떨어져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었지. 그러나 이미 떨어질 만한 장식들은 옮긴지 오래였고, 침대가 위치를 바꾸니 창문의 솔바람이 싫은데, 영감은 거기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한 모양이다.

 

멀쩡한 벽에 난 못 자국을 가리려고 걸었던 액자는 왜 자리를 바꾸었을까.

그 사진 하나만 그쪽 벽에 있어서 안 어울려.”

저쪽 벽에는 가족사진이고 이건 풍경화이니, 흉물스런 못 자국을 가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미 액자를 옮겨 다느라고 못을 쳤으니, 제자리로 옮기면 거기도 못 자국이 나기는 일반이다. 마땅치 않으나 입을 다문다.

 

창의 하얀 테두리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고 접착제로 붙여놓았더니, 시커먼 못질을 탕탕탕. 언제 그랬을꼬. 아마 세월이 흐르니 그 창틀이 들떴던 모양이다. 이왕에 못질을 했으니 원상복구(原狀復仇)를 요구한댔자 못 자국만 요란하겠다. 아쉬운 마음에 '본드를 사다가 붙이지.‘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만다. 왜 말하기가 싫을까. 내게 물었으면 뛰어가서 본드를 사다가 드리지(?) 않았겠는가.

 

잠깐 개똥철학을 해 본다.

왜 영감은 나와 의논을 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을까?’

그게 영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나?’

,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철학과 출신의 영감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는 아주 신통하게도 명답(名答)을 얻었다.

 

아~! 영감의 자존심(自尊心)이 걸린 문제다. 영감이 나와 의논을 한다 치자. 결과는 뻔하다.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걸 이미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의논을 해야 마누라가 원하는 대로, 결국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

나와는 언제나 상반(上半)’된 사고(思考)를 가진 사람이니까.‘

언제는 당신이 내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냐구.’들이대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옳거니. 그거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제법이네. 비록 개똥철학이긴 하지만 이만큼의 사고를 얻어냈다면. 서당 개 3년에라기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래. 그것이로구먼.

아내는 남들이 보기에는 나를 잘 따르는 척. 조용한 척. . . 척척척. 차라리 의논 말고 말도 말고 그냥 나 원하는 대로 하자.’ 이거였나 보다. 영감의 소신을 지키자면 다툼이 될 것인데 다투기는 싫은 게다. 게다가 마누라의 고집을 꺽을 자신도 없고.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이의 보는 눈보다는 내 사고가 나은 것 같으니 어쩐다?! 이건 교만이 아니라 솔직한 고백이다. 나를 깡그리 버리고 영감을 따르자면 결과는 뻔하다. 누가 보아도 영감의 하는 일은 어설프다. 집안에선 워낙 해 본 일이 없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여섯 여자 속, 아니 시댁 어른들까지를 헤이면 열 여자 중에 시어머님의 유일한 남정네. 못질을 시켰겠는가 잘 못된 일을 나무라기는 했겠는가.

 

그런데 곱씹어보면 나도 영감에게 의논을 하자고 제안을 한 적이 없다. 막내딸이 말한다.

남자는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알아서 해주리라는 기대가 안 통해요.”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니까요. 어린아이처럼요.”

네가 내 엄마 해라.”라고 핀찬을 주었지만 맞다.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니까 영감도 일일이 가르치라는 말이지.

 

직장에서 먼저 퇴근하고 집에 있는 신랑에게 새색시가 문자를 보냈댄다.

봉지의 감자를 반만 껍질을 벗겨서 물에 담궈놓으세요.”

~. 이 신랑은 하나하나의 감자를 절반만 껍질을 벗겨서 물에 담궈 놓았다지? ㅎㅎㅎ.

김장철에 시간을 벌 속셈으로,

배추 좀 반으로 잘라놓으세요.”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배추를 모두 가로로 잘라놓았더란다.

 

그래. 내가 먼저 말을 붙여보자. 내가 먼저 손을 뻗어야겠구먼. 남편의 자존심만을 나무랄 건 아니지. 남편만큼이나 거센 나만의 자존심도 문제는 문제야. 철없는 마누라 노릇 좀 한다구 뭐 자존심이 얼마나 크게 깍이겠어? 고개를 갸웃둥거리며, ‘이렇게 해 주소.’ ‘저것도 좀 해주소.’하면, 아마 기분이 좋아져서 씨~익 웃으며 신이 나서 해주려나? 그러나 영감 앞에 서니, 가르치고 구슬리기에는 너무나 큰 산이다. 나는 아직도 영감의 속을 잘 모르겠다.

 

보림아~!

할아부지 속을 니는 아냐~?

50년을 살아도 할매는 아즉 몰라 야~.

 

                                영감 속은 아직도 몰라                       영감 속은 아직도 몰라     

        아이들이 말한다.                                             보림이랑 축구 시합 중.

        웃는 영감의 얼굴에 "대박~!"이라고.                      보림이가 원하는 거니까 이럴 땐 웃기도..

        (미국의 디즈니랜드시티에서)                             (할미 칠순기념 강화가족나들이의 팬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