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간디?!
주위엔 온통 낡은 것 투성이다. 집이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전자세품도 그렇고. 이것이 고장이다 하면 저것도 탈이난다. 투덜대는 나에게 영감이 말한다.
“때가 되면 다 가는 게 정한 이치지. 사람이고 물건이고 때 되면 갈 준비를 슬슬 하는 거야.”
따는 그렇다 싶으면서도 공연한 앙탈을 부려 본다.
“나는 그래도 좀 오~래 살고 싶은데?”
두 식구에 김치냉장고가 따로 필요치 않기에 두 개 모두를 정지시켰었다. 내 아이들도, ‘붙박이다’ ‘구형이다’ 하고 가져갈 채를 않으니 딱히 누구에게 줄만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설합장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추석에, 시댁에 들러 바로 친정엘 온 딸아이가 사돈이 보낸 먹걸이 짐이 많아서 김치냉장고를 작동시켰다. 사돈은 아이들 편에 양념장까지 챙겨 보내느라 몇 밤은 지새웠지 싶다. 게다가 내 것까지 얹었으니 짐이 많을 수밖에.
허~ㄹ.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기절을 할 뻔했구먼. 김치냉장고의 음식이 뜨끈뜨끈. 이를 어째.
아들 사위가 달라붙어 이리저리 손을 써 보지만 허사다. 워낙 오래 된 제품이니 A/S는 어림도 없고 차일피일 미루는 게 여직 그대로다. 며칠 전에는 세탁기까지 말썽을 부렸다. 물이 빠지지를 않는다. 도대체 어쩌라는 게야. 금요일 오전이었으니 천상 월요일까지는 올스톱이로구먼. 물에서 헤엄치는 저 빨래는 어쩌누.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어서 큰아들이 손을 보았는데 싶어서 연락을 넣었다. 회사에 큰 건이 터져서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네?! 급하냐고 물어오니 이런. 직장의 ‘큰 건’보다 급할 거야 없지. 단지 물에 젖은 빨래를 어쩌느냐는 것이지. 그 와중에 ‘런닝머신’이 굉음을 낸다. ‘치그덕치그덕 삐거덕삐거덕!’ 숨이 찬 나머지 곧 회전을 멈출 기세다. 어쩌란 말이냐. 이러다가 내 발이 빨려들 것만 같아서 도통 더는 뛸 수가 없다.
ㅎㅎㅎ. 웃고 말아야지. 덜덜거리며 잘도 흔들어대던 ‘덜덜이’의 허리끈이 ‘탁’하고 끊어져 방문을 후려친다. 이제 와서 얼마나 살겠다고 이것저것 새로 장만하기도 그렇고. 다른 건 몰라도 ‘런닝’은 좀 더 썼으면 싶은데, 꼴에 외제라고 A/S도 쉽지 않게 생겼다. 어쩐다?! 사람도 물건도 세월이 가면 이리 골칫거리가 되는구먼. 제~ㄴ장! 그래도 한 십 년은 더 썼으면 싶은데 말씀이야.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면 장만을 해달라는 뜻으로 속 보이는 일이겠고.
에~라. 그냥 버티자. 아직은 튼실한 ‘제자리자전거’랑 ‘꺼꾸리’와 ‘다리찢기’가 있지 않은가. ‘저주파찜질기’도 있고 아, 반신욕통돌이도 있네?! ‘윗몸일으키기보조기’도 있고 ‘탈탈이(?)도 건재하고. 그러구보니 아직 많네?! 훌라후프도 하고 아령도 들어보고. 거기에 산행을 더 한다면 운동 못해서 죽었다고는 못하겠지. 그러구보니 만석이가 잘 벌기는 했던 모양이야 ㅋㅋㅋ. 시방이라면 있는 것도 팔아먹어야 할 판인데 말이지.
그나마 이젠 쓰잘데기 없는 병이 붙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자꾸만 늘어나는 건 병(病)뿐이다. 갖가지 눈병에 없던 당뇨까지. 허긴. 나이는 적은가?
“이제쯤 병이 나서 자식들한테 몇 년 효도 받다가 죽으면 안성맞춤이야.”하던 영감의 노래가 참 옳은 말이다 싶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지만 그래도 죽는 날까지는 올곧게 버텨야지?!
아니, 사는 날까지.
보림아~! 할미 말이 맞제?
할미는 죽는 날까증 이쁜할매로 살고 잪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