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할배와 키가 작은 할매는
“참 신기해요. 엄마랑 아빠랑 이렇게 잘 살아오신 게.”
딸아이가 늘 말해왔다. 뭐,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신기한 조합이다. 179cm의 1cm가 아쉬워서 줄무늬만 즐겨 입었다는 그이다. 실제로 혼사 전에도 그이의 코트는 줄무늬였다. 그나마 이젠 늙어서 줄어든 영감의 키지만, 그렇다고 내 키는 안 줄었겠는가. 크고 작은 키는 50년이 지나도 그대로 계속된다.
아담한 156cm의 나는 신랑을 만나기 전에는 키가 작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랑의 옆에만 서면 유난히도 더 작은 마누라가 되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작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할 때마다 그이는,
“거기는 난쟁이만 살았나?”라고 했다. 대청마루에서 우리 형제들을 배웅하시던 친정어머니도, 다른 형제들보다 우리의 조합은 늘 불안해 보이는 모양새였다고 회고하셨다.
우리 부부의 부조합은 외모 뿐만은 아니다. 성격이며 식성에까지 뭐 하나 잘 맞는 부분이 없다. 부부가 살아가는 데에는, 성격도 그렇지만 식성이 다른 것도 아주 큰 고역이라는 걸 살아가면서 터득했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랬다. 그이는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 김치를 상에 올려야 익었다고 하는 식성이고, 나는 풋풋한 냄새가 나는 갓 버무린 김치가 좋다. 그이는 얼큰한 찌개를 좋아하는가 하면, 나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의 된장국을 좋아 한다
영감은 추운 겨울에도 냉장고의 시원한 물을 찾는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따신 물을 마신다. 따뜻한 물이 몸에 좋다고 아무리 권해도 영감은 막무가내다. 그 어려운 보리고개에도 외아들에겐 뽀얀 쌀밥을 먹였노라고 시엄니는 자랑삼아 하시더니, 시방도 하얀 쌀밥만 고집한다. 잡곡을 섞은 밥은 먹지를 아니하니, 굶기는 것보다는 쌀밥이라도 먹여야지 어쩌누. 나만 현미에 잡곡을 덕지덕지 더해서 아구아구 먹을 수밖에.
찌개는 고추장으로 간을 맞춰야 하고 청량고추를 듬성듬성 띄워야 한다. 된장은 냄새도 싫어해서 상 아래로 내려놓기가 일쑤다. 영감은 육류도 달달 볶아야만 좋아한다. 마누라야 물을 푸짐하게 잡아야 국물이라도 얻어먹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 식성대로 해서 그이가 먹지 않으면 더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아이를 넷씩이나 낳고 이만큼 사는 것을, 영감은 당신의 넉넉한 배려심과 넓은 이해심의 덕이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부부싸움을 하고는 집을 나간다는 것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가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집에 남은 남편은 설마 시집으로 갔겠나 싶어서, 본가로 알아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터. 전화가 없었을 때이니 집 나간 마누라를 찾느라고 애를 태웠겠지. 시어머님은 농본기에 손이 모자랐던 터라 그저 반갑기만 했을 것이고. 부부싸움을 하고 왔다는 걸 알고는 입을 벌렸다. 그래서 우리 시댁 동네에서는 이 조그만 며느리의 재치가 오랫동안 회자 되었다지? ㅎㅎㅎ.
또 한 번은 그이와 다투고, 아이들을 두고 홀로 집을 나와서는 언니 네로 잠적 아닌 잠적을 했다. 내 계산대로 사흘 만에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섰다. 슬그머니 지는 척 따라나섰더니 시어머님 왈,
“참 대단한 며느님이셔.”라 하니, 그럴 걸 왜 모시러 왔느냐는 말이지. 서슬 시퍼래진 내 시선에 움찔하며, 아이들의 손을 양쪽으로 나눠 잡고 앞장섰으니 시방 생각해도 시어머님에게는 못할 짖이었구먼.
곰곰 생각해도 내 스스로가 참 대견하다. 두어 가지 예이지만, 50년을 살면서 어디 부부싸움을 두어 번만 했겠는가. 아무튼 우리 부부의 부 조합은 키가 크고 작은 것만큼이나 여기저기에서 지금도 자주 부딪친다. 거울 하나 세우는 것조차도 어렵다. 영감의 전신이 보기에 좋으면 내 종아리는 실종이 된다. 수건걸이를 붙일라치면, 나는 의자에 올라서야 손이 닿는 곳에 영감은 못을 친다. 그렇다고 맞지 않는 대로 탓을 하겠는가. 이래도 영감은 자기 덕에 이만큼 산다고?!
때로는,
“그렇게도 생각이 없수?”하는 마누라와 ,
“내가 하는 일에 잔소리를 안 하면 어디 덧나지?”라며 살지만, 우리는 오늘도 나란히 병원엘 다녀왔다. 같이 가자는 약속은 없어도, 내가 가야 하는 병원엔 영감이 따라 나서고 영감이 가야 하는 병원엔 내가 따라 나선다.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노라고 자부한다. 서로 “내 덕!”을 외치면서 말이지 ㅎㅎㅎ.
보림아~!
흑흑~!
할배도 할매도 요래 늙어번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