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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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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디...


BY 만석 2015-05-04

밥은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디...

 

형님. 병 나셨어요?

일본 갔나?”

미국 갔셨어요?”

내가 잠시만 컴에 나타나지 않으면 전화기가 몸살을 한다. 고마운 걱정들이 아니겠는가.

 

내가 아니라 컴이 반란을 일으켜서 나도 좀이 쑤시는 며칠을 보냈다는 말씀이야. 컴이 아파할 때마다 내 스스로 처방을 해 줄 수 있음 얼마나 좋을꼬. 일본어가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 손주와 대화가 되면, 그 다음은 컴을 좀 더 배워야겠다. 이리저리 부품을 만질 수 있다면 아들이나 사위의 수고를 덜어 줄 테니 말이야. 나도 또한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지 않을 테고.

 

결국은 사위의 수고를 빌려 다시 컴 앞에 앉았으니 이런 미안스러울 데가 있나. 큰아들은 무역회사에 출근을 해서, 시차 때문에 새벽 한 두시에 퇴근하는 일이 많다 하니, 내 컴 문제가 아니라도 안스러운지고. 사위는 학위문제로 하루에 두 세 시간씩 잔다 하니 것도 애처롭지 아니한가. 자녀들 눈치를 보는 늙은이만 처량한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살기가 팍팍하구먼

 

노인네가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컴은 한다고 내 속을 썩이는고!’ 하지는 않았으려나? 핸폰이 대행을 해 주긴 하지만, 님들의 글을 읽는 것까지는 좋아도 답글 작업 등은 수월치가 않다. 역시 시원한 화면의 컴이 제격이로고.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젠 수다쟁이가 다 됐는 걸? 하하하. 컴 앞에 앉으니 웃음도 절로 나네.

 

오늘은 우선 얼굴만 보이며 안부나 전하자 했으나, 내 집 담쟁이 위의 꽃잔디 자랑은 좀 해야겠다. 충정도의 언니 네 가는 길에, 무더기로 핀 꽃잔디를 보았다. 내가 환성을 지르는 바람에, 운전을 하던 영감이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영감과 살아 온 45년에 그리 무서운 표정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지. 그이는 다시 핸들을 잡지 못하고 한참동안 숨고르기를 하더구먼.

 

끽소리도 못하고 앉았던 나는 언니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영감에게 한마디의 말도 걸 수가 없었다. 영감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미워서도 아니었다. 핸들을 급하게 돌리자니 온 몸이 뒤틀렸던가. 그의 위기대처 모션이, 그의 놀란 가슴을 알아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암튼 그때의 영감 표정은 지금도 상상하기조차 싫다. 차라리 내 뺨을 한 대 쳤으면 어땠을까.

 

물론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다. 잠자리를 따로 편 지가 수 년이 됐으니 것도 이상할 게 되지 못한다. 아직 잠이 들지 못하고 꼬물거리고 누웠는데,

괜찮아?”한다. 싱거운 사람. 급정거로 다치지 않았는가를 이제야 묻고 있다. 공연한 오기가 생겨 서러운 마음까지 든다. ‘영감이 얼마나 놀랐을까?’하던 미안한 마음도 깡그리 접고.

 

한달쯤 지났을까. 화분 귀퉁이에서 작은 분홍꽃 서너 송이가 매달리고 있었다. ~!꽃잔디다.

어머. 꽃잔디 씨앗이 바람에 불려왔나 봐요. 신 난다.”

손벽을 치며 함성을 지르다가 언니 네 다녀오던 길의 급정지 사건이 생각난다.

~! 이젠 나도 꽃잔디가 있다구.’ 영감 보란 듯이 잘 키워 볼 심산이다.

 

영감이 저녁을 먹으며 말한다.

꽃잔디를 이제야 봤어?”

언니 네서 영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시간이 있었다. 그때 꽃잔디를 캐다가 내 집 화분에 옮겨 심은 모양이다.

 

에구~. 그런 줄 알았으면

괜찮아?하고 물었을 때 그리 서럽지도 않았을 것을. 아니지.

. 난 괜찮은데 당신은?”하고 한마디 되물어 줄 것을.

참 대단한 영감이여. 진즉에 말했으면 그동안 마누라한테 극진한 대우를 받았을 것을.

 

보림아~!

밥은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여~.

니가 할아버지 좀 갈쳐라


밥은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