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주부수업3
컴 앞에 앉아 있는데 남편이 주방엘 드나든다. 그런데 자꾸만 ‘나 좀 봐주소.’하는 듯 내 방을 기웃거린다. 말은 없어도 내가 시방 주방에서 뭣인가 하고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SOS작전이 틀림없다. 그이가 안방으로 간 사이에 살짜기 주방으로 나가본다. 사발면에 물을 부으려는 듯 뚜껑이 열려있고, 커피포드엔 물이 끓고 있다. 오~잉?! 드디어 주부수업의 효과가 보인다.
살그머니 들어와 컴 앞에 앉는다. 썰어놓은 김치가 있던가? 그이는 김치를 찾는 게 분명하다. 그냥 모르는 체 앉아 있어? 손수 찾아 먹으라고? 아니면 부르기라도 하겠지. 그런데 좀이 쑤신다. 일어나? 말어? 라면은 나무젓가락이 제격인데 찾기나 할까. 쩌~기 씽크대 위의 찬장에 있는데. ㅋㅋㅋ. 나는 벌써 일어나 안방으로 걸음을 뗀다. ‘나도 참 못 말리는 마누라다.’생각하며 들어서는데 라면을 먹던 남편이 얼굴을 돌린다.
“돈 있어?”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아하~ㅇ. 그거였구나. 김치도 있고 나무젓가락도 찾은 걸 보니 주부수업이 실효를 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그런데 내가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물어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이가 진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할 때면 나는 늘 미리 그렇게 물어줬으니까. 그이가 말하는 건 언제나 재차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박사장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가봐야 해.”
“지금 가진 거 없는데요. 가다가 찾으세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느냐는 듯, 앉은 나를 내려다본다.
그랬다. 우리 집 경제는 내가 주무른다. 남편이 은행엘 드나드는 일은 거의 없다. 사업이 번창했을 때는 아랫사람들이 맡아 했고, 사업이 줄어들면서부터는 경리보다 내가 자금운영을 맡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와중에 남편에게 가벼운 뇌졸중이 와서 그 후로는 전적으로 내가 맡아 왔다. 병원에서도 신경을 쓰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다.
그러나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엄청난 자금을 주무르는 건 아니지만 돈을 만지는 일은 ‘사는 재미’의 일부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내가 관여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거저 퍼 주라는 것은 잘도 하는 그이라서 나도 이젠 그이에게 맡기는 건 무섭다. 남편도 영업상의 일은 몰라도 금전의 들고나는 일은, 타인보다는 마누라가 더 미더운 모양이다.
급전이 필요한 때도 왕왕 있다. 그러나 그이는 땡전 한 푼도 남에게는 손을 발리지 못하는 위인이다.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일까지도 차라리 몽땅 아내에게 맡겨버리는 게 속이 편하겠지. 아, 그이는 내가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은행 출입도, 통장이나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전수(?)를 해야겠다. 오늘은 직접 키를 누르라 해야지.
눈치는 백단이다. 은행을 나서며 남편이 묻는다.
“병원에서 괜찮다는데 당신 요새 왜 그래?”
“당신이나 내 나이가 괜찮을 나이가 아니잖우. 우리가 언제 어떨지 알아요?”
“이젠 서서히 준비합시다.”하니 그이의 얼굴이 굳는다. 우리는 집에 오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림아~!
니 할아부지가 늘,
“당신 죽으면 나도 따라가야지. 어느 자식이 혼자 남은 홀 아비 좋아하겠다구.”그러시더라.
근디, 할미는 할아부지가 돌아가셔두 따라 갈 용기가 없어~. 구박을 받드라도 명껏 살고 싶은디 안 되겄냐?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