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덩이 하나 치웠을 뿐인데
160이 채 못 되는 아이. 50kg도 나가지 않는 자그마한 아이. 그 작은 아이 하나 떠난 자리가 이리도 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 아이 방엔 종일 불을 밝힐 이유가 없고 대문도 일찌감치 걸어 잠근다. 현관의 쎈서도 잠이 든 지 오래이고 주방과 거실의 정적은 차라리 무섭다. 대문 밖을 오가는 자동차 소리도 이젠 관심 밖의 일이다.
말없는 영감이라지만 도대체 할 말이 이렇게도 없어?
“얘 안 들어왔어?”
“벌써 들어와서 자나?”
정신 놓은 척하고 좀 물어라도 보시지.
대문 여닫는 소린가 싶어 후다닥 일어나 현관문을 여니 매서운 살바람이 와락 안긴다. 아침 잠을 깨울라 싶어 주방의 수도꼭지를 조심스럽게 비틀고는,
“아, 저 방이 비었지?!”하며 주방과 접한 딸아이의 방문을 열어본다. 아직 그녀가 쓰던 향수의 흔적이 눈웃음을 치던 그녀처럼 다가선다.
터벌터벌 되돌아 거실의 쇼파에 주저앉는다. 친정 엄마 생각이 난다. 이 나이에도 엄마가 그립다. 엄마도 날 시집보내고 이러셨겠지. 난 것도 모르고 새신랑이랑 새록새록 행복했지.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가고만다’더니, 참 옛말 그른 게 없네. 나도 그랬으니 딸년도 알콩달콩 새신랑이랑 잘이나 살라 할 밖에.
보림아~!
할미가 사는 재미가 없다. 보림이가 자주 좀 와야 쓰겄다.
막내 고모는 말이다. ‘할미의 보림이’란 말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