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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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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슬픈 이야기 2


BY 만석 2013-09-06

아주 슬픈 이야기2

 

때르릉~.”

핸드폰이 운다. 오랜만에 열어놨더니 불이 난다.

며느리가 반찬 좀 해다 날르냐?”

반찬 좀 갖다 주리?”

내 불편한 몸을 걱정해서 라기보다는, 뭘 알아보려는 듯 말이 많지만 누구의 물음에도 내 대답은 항상 간단하다.

에미가 매일 온다. 걱정마라.”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많이 잘 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냉장고라도 열어보면? 자칫하다가는 우리 며느님 욕을 먹일 일이 아닌가. 마음이 급해서 아들의 직장에 전화를 한다. 며느님의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고 싶어서다. 불쑥 전화를 해서 그녀가 곤란한 지경이 되게 해서야 쓰겠는가. 그녀도 제 생활이 있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시시콜콜 친구들의 이야기를 사설로 늘어놓기도 싫다.

에미가 요새 바쁘나?”

바쁘긴요. 왜요? 뭔 일 있어요?”

이런. 이렇게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야 ㅉㅉㅉ.

 

막내가 곰국을 주문해서 떨어지지 않고 배달이 오는데, 반찬은 깍두기랑 김치만 온다. 난 괜찮지만 요새 아빠가 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보기에 딱해서.”

.”

에미한테 반찬을 좀 부탁하려구.”

그 말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조심조심 말을 잇는다.

, 말해 볼게요.”

.”

 

전화는 끊었지만 뒷 끝이 영 개운치 않다. 얻어먹으려면 며느님의 결제가 있어야 하는 겨?! 며느님에게 전화하려던 용기가 사라진다. 내내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봐서 며느님이 시원한 답을 하지 않는가 보다. 괜히 전화를 했나 싶다. 멀거니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 시간이 지나자 혹시 티격태격 싸움이나 붙인 꼴이 됐나 싶어서 걱정이 태산이다. 좌불안석(坐不安席). 좋은 소리로 그만두라고 전화를 할까?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좋게 받아들일까. 아들에게? 며느님에게?

 

저녁 5. 현관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손녀 딸아이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모니이이~~~!”

금이 간 갈빗 뼈는 생각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다가 아이고~. 벌렁 들어 눕고 만다. 에미가 무거운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선다. 여느 때처럼 아기의 가방과 제 가방은 양쪽 어께에 나누어 멘 채다.

 

저 왔어요 어머님.”

아모니. 요기 주사 코~옥 맞았어요.”

아니 왜?”

감기가 심해서 폐렴으로 가기 직전이라고 해서 병원 다녔어요. 죄송해요.”

어머니 약하신데 감기 옮을까봐 못 왔어요. 저도 기침감기라서……

 

이런 이러언~!

아기 데리고 병원엘 다닌 일이 죄송할 일도 아니고, 그래서 내 집에 드나들지 못했다는데 그게 무슨 죄송할 일인가. 열이 많아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병원엘 다녀왔다 하니 그게 문제지. 아기의 손이 아직도 따끈하고 눈이 벌건 게 열이 싹 가시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유치원엘 가겠다고 떼를 써서 지금 오는 길에 문까지만 갔다가 오는 길이예요.”

가방을 메고 가겠다고 해서 가방도 메고 선생님도 만나겠다고 해서 만나 뵙고 와요 호호.”

 

한 두어 가지로도 족한데 뭘 저리 여러 가지를 했을꼬. 냉장고에 반찬을 들여놓고 청소를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청소도 여러 날 하지 못했지.

오늘은 힘이 들 테니 관둬라.”

그러나 며칠 청소를 하지 않은 집에 아기를 놔 둘 에미가 아니다. 들은 척도 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 대걸레는 시원찮아, 엎뎌서 박박 문질러야 한다는 그녀다,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머리는 젖어서 가닥을 만든 채. 티셔츠도 땀에 절어 앙상한 그녀의 어깨를 들어낸다. 여자가 무슨 죄이고 며느리가 무슨 죄일까. 더운 날 시원한 바람에 딩굴어도 좋을 것을. 잠시라도 서운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아들도 제 어미 걱정할라 싶어서 아픈 아기와 병원을 다니는 제 댁의 고충을 말하지 못했나 보다.

 

보림아~!

이 할미는 오늘 많은 걸 배웠구먼. 할미의 <아주 슬픈 이야기>는 이 할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도. 엄마가 이 할미 말은 안 듣는구먼. 이제 할미가 살살 걸을 수는 있으니께, 할미 집에는 그만 와도 된다고 하거라. 에구~. 우리 보림이두 어느 집 며느리가 될거나. 그게 바로 이 할미의 진짜 <아주 슬픈 이야기>구먼. 제발 이 할미 같은 시어미는 만나지 말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