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속을 몰라?! 저녁마다의 한 시간 걷기운동. 왜 한 걷기운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보다. 걷기운동이 몸에 좋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지극히도 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날마다 저녁 걷기운동을 즐겨한다. 내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게 내 궁색한 핑계란다. 남편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긴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이 말이야. 나이가 들고 늙으면 죽게 돼 있는 것을. 좀 더 살겠다고 기를 쓰니 세상이 온통 늙은이 일색이지.”한다. 그러니까 사람은 나이를 먹기 마련이고, 늙기 마련이고, 병이 들기 마련이고, 죽기 마련이란다. 그걸 좀 더 오래 살겠다고 바드등거리면 추하다는 게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만 그러라 하고 자기만 딴청을 부린다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이겠으나, 본인이 몸소 실천을 하니 마냥 미운 양반은 아니다. “오래 살고 싶은 당신은 부지런히 병원을 다니소.”하면서도 당신은 절대로, 절대로 병원에 가는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그이는 건강 체질이다. 머리가 성성한 이 나이에 병원에 갈 일이 없다는 건 퍽 다행스럽고도 복스러운 일이다. 친구들이 하나 둘 유명을 달리할 때마다 그이는, “갈 때가 됐지.”한다. 유족들이 들으면 서운해 하니 말을 삼가라고 이른다. “서운해 해? 누가?” “자식들이?” “마누라가?” “손주들이?”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이의 말에 공감(共感)이 간다. 그이가 철학도이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할 만한 이야기다. 늙은 부모의 죽음을 서러워할 자녀들이 얼마나 되고 수발 어려운 남편의 죽음을 서러워할 부인들은 얼마나 되겠는가. 할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곶감 대추 타령을 하는 세대는 아니어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서러워할 손주는 또 몇이나 되고. 그래도 나는 오늘도 걷는다. 걷고 또 걷고 또 걷는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말이지. 며느리들이, 아들들이 내 병든 몸을 수발하며 힘들어 하게는 하지 말자는 말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추하지 말자고. 근디, 영감. 혈압약은 와 먹는다요? 지금 죽어도 억울할 것 없는 나이라며? 아, 혈액순환제는 약이 아닌감? 케케케. 보림아~. 하부지가 참 웃기신다 그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