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
손녀 딸아이가 이젠 제법 밥을 잘 받아먹는다. 량도 어미나 나보다 더 많이 먹는다. 아직은 묵은 쌀을 먹던 할미가, 오늘은 손녀 딸아이를 위해서 최고의 햅쌀을 구매했다. 복숭아도 최고품을 사 넣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며느님이 들으라고 공연히 목청을 올린다.
“어른들이야 어떠랴 만은 애기는 햅쌀을 먹이고 싶어서.”라고 부연설명을 한다.
“복숭아도 좀 비싼 걸 넣었다. 애기 먹일 거니까.”
며느님의 기분이 한층 좋아진 게, 시력 좋지 않은 내 눈에도 보인다. 제 새끼 위하는 소리는 들을수록 기분이 좋은 법이라는 걸 나는 익히 알걸랑.
“너 지금 기분 괜찮아?”
“예. 왜요?”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너, 전 번에 나 상 타오던 날 왜 그랬어? 상을 타 왔다는데 반응을 좀 보여야 하는 거 아냐? 나, 그날 참 무안하기도 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섭섭하기도 했다. 왜 그랬어? 난….”
아직 내 말이 끝나기도 전인데 며느님이 받아서 말한다.
“아, 아가씨도 말하던데요. 어머님이 무척 서운해 하셨다구요. 저는 오빠가 그러기에 그냥 별 뜻 없이…. 무시한 건 아니고… 어머님은 하두 상을 많이 타 오시니까…. 죄송해요. 저는 그냥… 죄송해요.”하며 안절부절. 그저 죄송하다고만 조아린다. 나는 사실 ‘왜 죄송한 일을 만들었을까’를 듣고 싶은데 말이다. 보아 하니 진심으로 죄송하긴 한 모양. 내가 정말 섭섭했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말보다 아마 막내 딸아이가 조근 조근 내 섭섭한 마음을 잘 대변했던 것 같다. 말이 너무 길어지면 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진심으로 죄송하다지 않는가. 일 절만 하자.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짚고 가자.”
“네. 말씀하세요.”
잔뜩 긴장을 해서는, 퍽 공손하게 하명(下命)을 기다린다. 그래야지. 시어멈이 잔뜩 굳어있으니 말이다.
“너희들 친정 산소에 갈 때 말이다. 어쩌자고 그렇게 주방을 비우고 갔어?”
“네?”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인 듯, 콩 튀듯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며느님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한다. 그날 상황을 떠올리려는 눈치다.
“밥을 하려고 주방에 들어가니까 어쩌면 그렇게 깨끗하게 비우고 갔는지. 깨가 있나 식용유가 있나 커피가 있나. 음료수 한 병 없이 과일 한 알도 없이…. 계란도 한 알 없더구나.”
“….”
“너희가 하루 이틀 비울 것도 아니었고, 일주일씩이나 비울 계획이었으면, 어른 모시고 사는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지.”
요쯤에서 조금은 치켜 주어야 하는 법이거니.
“네가 평소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저, ‘그러려니’했겠지. 헌데 평소답지 않게 깡그리 비우고 어쩌라는 소리도 한 마디 없이 말이야. 일부러 그랬던 거니? 난, 그날 너무 황당했다.”
“어머나. 정말 그랬네요.”
방금 생각이 났다는 듯 어깨에 잔뜩 들었던 기운을 빼고 추~ㄱ 떨어뜨린다.
“일부러는 절대로 아니구요. 제가 너무 들떠 있었나 봐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러~ㅁ. 그건 정말 죄송한 일이지. 됐다. 알아들었으면 됐다. 그래서 어른 모시는 게 어려운 법이지. 그러게 니들끼리 나가서 살면 좀 좋아.”
공연한 소리라는 걸 알면서 한 마디 얹은 건, 같이 사는 게 절대로 내 탓이 아니라는 무언의 방어막이다.
“아, 한 마디만 더 하자. 오빠한테 시골 산소에 한 번 다녀오자고 하거라. 며칠 있으면 작은 애들 일본서 올 텐데, 걔들은 오면 산소 먼저 들를 게야. 그러면 너희들 체면이 뭐가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 이장(移葬)을 했다는 데도 한 번 다녀올 채도 않는다고, 아버지가 말씀은 없으셔도 많이 서운해 하신다.”
“친정 산소에 다녀오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자꾸 일이 생겨서 미뤄졌어요. 죄송해요. 다음 토요일이라도 오빠랑 갈 거예요.”
온통 죄송한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더 긴 말은 필요가 없지. 오늘, 할 말은 다하고 기분도 썩 좋다. 며칠 동안 안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오늘의 기분은 맑음이다. 내 기분은 그렇다만, 며느님 기분은 어떨꼬. 내일쯤은 맘먹고 며느님 기분도 풀어 줘야겠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