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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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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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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며느님 고마워~


BY 만석 2011-08-25

 

며느님 고마워~


내 예쁜 손녀 딸아이가 지독한 여름감기를 앓는 중이다. 입안이 모두 헐고 목과 기관지가 많이 부었단다. 열이 사십 도를 넘나드니 눈 아래가 벌건 써클로 보기에도 안쓰럽다. 입안이 그 지경이니 먹는 것도 수월치 않고 목이 그러니 삼키는 일도 용이하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아이는 순해서 보채지는 않는데, 에미가 기절하기 직전이다. 왜 아니겠어. 나도 진즉에  경험한 일이 아닌가. 대신 아파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시어미 속도 까맣게 타 든다.


응급실을 이틀 연거푸 드나들며, 그 가느다란 팔목에서 어쩌자고 피는 자꾸 뽑는고. 오늘이 첫 번째 혈액검사로부터 사흘째라 다시 피검사를 한다고 병원을 찾았지. 병원이라는 데가, 특히 종합병원은 진료시간보다 진료를 받기 위해 사전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긴 법이다. 접수하느라고 줄을 서서 한 시간. 진료소 앞에서 대기가 또 한 시간. 환자도 환자지만 어린환자의 경우엔 그 보호자가 병이 나기 십상이다.


내리 닷새를 따라 다니며 수발(?)을 도왔더니, 할미도 몸살을 할 지경이로세. 수액의 주사가 끝나려면 아직 대 여섯 시간이 걸린다 하여, 며느님과 아기를 남겨두고 귀가를 했겠다?! 어머님은 틀림없이 택시를 타지 않을 거라며 며느님이 직접 잡아준 택시를 전철 출입구에서 스톱. 물론 기사 양반의 미간이 찌그러들 일이라 쳐다보지도 않고, 가까운 전철역을 소리 높이 외쳤지. 전철을 내려서도 다섯 정류장을 축지법이랍시고 씩씩거리며 걸었구먼.


집에 도착하니 만사가 귀찮다. 영감의 저녁밥 때문에 서두른 귀가지만, 손가락 끝도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좀 누웠다가 밥을 시작해도 되려나 싶어 영감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 와여?”

“나, 아직 멀었어. 10시는 넘어야 할 거야.”

“알았슈.”

제기랄~.

 

사실은 저녁을 그만두라는 요행수를 바랐던 듯싶다. 그런데 멋대가리 없는 영감은 기어이 밥을 집에 들어와서 먹겠다는 뜻을 전한다. 좀 멋진 답이 돌아오기를 기대했던가 보다.

“아, 그래?! 그럼 내가 집 앞에 가서 전화할게. 밥 그만두고 우리 나가서 먹자구.”

오죽 좋은 소리인가. 왜. 어째서 그게 안 되냐고. 어제 막내 딸아이가 봉투를 줘서 내게는 한 푼 건네지 않고 싹 쓸어 주머니를 채우더니. 이런 날 선심 좀 쓰면, 그 뒷일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할 수가 있을 터인데. 


외식하다가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김치 하나에 밥을 먹어도 ‘집밥’이 좋다는 건 고집일 게다. 암. 그건 틀림없는 고집이야. 이제 결혼 42년차면 좀 변할 수도 있을련만…. 에고~ 에고~. 다 내 팔자지. 진즉에 버릇을 고쳤어야 하는 건데…. 그러고 보면 나도 좀 그렇긴 하다. 이제 40여년 겪었으면 포기할 때도 됐을 것을. 그게 포기가 안 되니 영감의 고집이나 내 주변머리나 피장파장 이로세.


며느님. 내가 시방 밥하기 싫어서 죽기 일보 직전이라네. 매가리가 없어서 몸이 딱 방바닥에 붙어 있다네. 그동안 늙은 이 밥해 먹이느라 수고했어. 고마워~. 진즉에도 늘 고마웠지만 오늘 새삼스러운 건, 내 몸이 천근이라서여. 늘 수고했음을 잘 알어~. 오늘 저녁은 오빠가 병원으로 퇴원할 것이니, 맛있는 넘으로 배불리 먹고 들어와~. 아기가 보채지는 않는지. 수고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