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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꼴에 시에미라고 ㅉㅉㅉ


BY 만석 2011-08-08

 

꼴에 시에미라고 ㅉㅉㅉ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나는 한 참을 늘어지게 자야 한다. 영감이 아주 이른 출근을 하는 날이 아니면, 영감의 출근과는 무관하게 잠을 청한다. 수술 뒤로 급격히 저하된 체력을 스스로도 느끼지만, 영감도 감지가 되는 모양이어서 용서가 되는 일이다. 젊은 날 누리지 못했던 나만의 특권인 셈이다. 대체적으로는 영감이 출근을 하기 전에 일어나려고 노력은 한다. 그래서 눈을 뜨면 늘 화들짝 놀라는 게 일상이다.


오늘도 급히 눈을 뜨니 영감은 없고 어디선가, 아주 가는 목소리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오호라 내 며느님의 목청이로고. 간간히 대사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손녀 딸아이와 뮤지컬을 흉내 내는 모양이다.

“아이구. 발톱도 이렇게 예쁜 아가는 처음 봤어. 어쩌면 발톱까지도 이렇게 예쁠까?”

뭔들 아니 예쁠까마는, 그녀의 아가사랑은 백만 불로도 그 값이 모자란다 하겠다. 


“아~. 그렇구나. 엄마는 그걸 몰랐네?! 이제 알았어. 그래. 그렇지?!”

내 손녀 딸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무슨 문장을 그렇게 구사했겠다고 넉살을 떠는고. 내 며느님과 손녀 딸아이의 일이 아니라면, ‘놀고 있네.’라고도 하겠지.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지. 이 모녀의 행복 바이러스가 날 이렇게 행복하게 만드는데 말이지.


저러다가 내 아들의 전화라도 올라치면 그 행복은 절정에 달한다.

“아~빠 해봐. 아빠. 아빠.”

“엄마~!”

애가 타기는 에미나 애비가 마찬가지겠지만, 그 마음을 읽지 못하는 내 손녀는 연신 ‘엄마’만 되뇐다.

“아까 했잖아. 아빠. 아빠 해 봐봐. 어서.”

“엄마~!”


크크크. 저 젊은 부부는 애가 타는데 나는 속없이 웃음이 나온다. 내 며느님은 시방 손전화를 아기의 귀에다 붙이고 애를 쓰고 있을 게다. 내 아들 녀석은 아마 숨을 죽이고 그 예쁜 목소리로 전해 질 ‘아빠~!’소리를 애가 타게 기대하고 있겠지.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느냐 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저 ‘아빠~’라는 아기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되는 일이고, 들을 수 만 있으면 족한 것이다.


야속하게도 아기는 끝내 ‘엄마~.’만 되 뇌이다가 통화를 끝낸다. 아, 통화를 끝내기 전에 빠지지 않는 며느리의 한 마디.

“오빠~. 오늘 일찍 들어와?”
아마 회식이 있다고 하는가 보다. 어제도 늦은 퇴근을 했으니, 오늘쯤은 앙탈을 부려도 봐 줄만 하거늘.

“응. 그렇구나. 알았어.”한다. 아들이 어찌 그녀를 예뻐하지 않을까보냐.


내가 시방 뭘 하는 겨. 채신없이 아들 며느리의 전화를 훔쳐 들은 겨? 아니다. 한 발자국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거니와, 귀를 돌려 세우는 일도 없었다. 그저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데 어째. 들어 줘야지 큭큭큭. 참 예쁜 부부다. 처음 그녀를 상면하면서, 약한 체격에 적지 않게 놀랐다. 맏며느리는 튼튼해야 한다는 게 우리네 늙은 세대의 관념이고 통습이다. 그런데 그 관념과 통습을 무너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차라리 기가 찼다함이 옳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들을 믿는다. 눈치를 알아 챈 아들 녀석 왈,

“제 맘에 들면 엄마 맘에도 들 거예요.”


그랬다. 그러나 신혼 초기에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그녀는 적지 않게 고생을 하는 눈치였다. 그렇겠지. 내 딸년을 보아도 해 주는 밥 먹고 빨아주는 옷을 챙겨나 입지 않았겠는가. 하루 사이에 낮이 설은 사람들의 끼니를 챙겨 바쳐야 하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 살펴야 하고 또…. 아직 사태가 정확히 파악되기도 전에 ‘임신’이라는 커다란 굴레와 멍에를 썼으니 그 어려움은 또 얼마나 컸으리.


다 좋다. 나도 그렇게 시집을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말이지. 단지 내 영감과 달리 자상한 남편을 옆에 두었다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 부부 이야기를 친구나 이웃에게 나는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우습다는 게다. 아니 한심하다 하는 게 옳은 표현일까.

“눈꼴이 시지 않니?!” 한다.


무시기 베락(?) 맞을 소릴 하는 겨?! 눈꼴이 왜 셔?! 무슨 이유로 눈꼴이 시냐고~! 되먹지 못한 것들. 엇다 대고 눈꼴이 어째?! 고얀 것들. 그래서 저는 시어미노릇을 잘 해서 아들며느리를 찢어놨어? 그러고 댓가로 손자들 데리고 죽겠네 살겠네 하는 겨? 뭐이 바빠서 와중에 재혼을 시키겠다고 새 며느리 감을 물색 중이란다. 누가 들어와서 고생 좀 하겠구나 싶어서 남의 일이지만 걱정이 크다.


저쪽 방이 조용해졌다. 내 손녀를 끼고 어미가 누운 모양이다. 아니 잠이 들었겠다. 비 내리는 오후. 시에미 점심도 먹였으니 저녁까지 잔들 어떠리. 아침 설거지가 아직이지만 저녁까지 간들 어떠냐고. 어차피 제 손으로 할 일인데 뭘 탓해. 설거지 정도는 내가 좀 도와 줘도 좋으련만. 그래서 시에미가 덜그럭 거려도 모르는 척해도, 크게 탓할 이도 없는데 한사코 마다하니 잠이나 깨울 게 뻔하다. 그래. 놔두자. 조용히 해 주는 게 며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애써 핑계를 만들어 자위(自慰)한다. 꼴에 시어미라고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