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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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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아들의 외박


BY 만석 2011-03-12

 

아들의 외박


  “아범이 출근을 했니?”
  “모르겠어요.”

  “…… 어제 안 들어왔어?”
  “예.”

  아침이면 매일 문안을 하던 아들이 오늘 아침엔 거른 것이다. 낼 모레가 사십이니 뭐, 하루쯤 걸러도 그만이지. 그러나 늘 하던 일인지라, 별스럽다 생각하고 물었더니 외박이라?! 이런이런. 변고로고.


  한참을 말없이 섰으나 딱히 할 말이 없다. 어제 회식이라 하긴 했었지.

  “전화 해 봤어?”

  “오늘은…….”

  오늘은 전화를 해보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이유가 어떻든 아들의 잘못이다. 며느님의 눈치를 보니 속이 많이 상한 것 같다. 기다리다가 잠을 설친 모양 같기도 하다.


  “별 일은 아닐 겨. 술이 너무 과해서 오지 못하고, 동료들이랑 찜질방에라도 갔을 게다.”

  여관에 들었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아는 건 찜질방뿐이니 내 말솜씨도 그 수준이지.

  “예.”

  얼굴엔 미소가 스치지만 그 미소도 의심스럽고, 또 ‘예’라는 대답의 의미도 후딱 입력이 되질 않는다. 시어미 말이 맞다 하는 건지, 그렇게 생각을 하겠다는 건지. 오늘 아침엔 여~ㅇ 며느님의 심기가 잡히질 않는다.


  “오늘은 싫은 소릴 좀 해라. 버릇 되겠다. 벌써 두 번째네.”

  며느님의 심기를 다독거릴 양이었고, 비위를 좀 맞춰주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금방 공연한 소릴 했는가 싶어서 후회가 된다. 싸움을 붙인 건 아닌가 싶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호호호.”

  오늘 아침 우리 며느님 참 아리송하네. 저 ‘호호호’ 웃음소리는 또 무슨 의미일꼬. 하지만 눈치는 여전히 살피게 된다.


  “밉겠지만 전화나 좀 해봐라. 추운 날씨에 밖에서……. 출근이나 했나.”

  “……예.”

  짧은 이 대답의 의미는 알겠다. 내키지 않는다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좋게만 말하는 거 아니야. 닦달을 할 땐 야무지게 할 줄 알아야지.”

  허허허. 이건 또 뭔 소리야. 못 된 시어미가 아들의 허물을 며느님에게 전가(轉嫁)하잖았는가. 웃긴다. 며느님아. 이럴 땐 시어미도 야무지게 닦달을 해도 좋아.


  다음 날 저녁.

  영감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렸는데 아들 내외가 식사 중인 식탁에 마주앉아 술잔을 채운다. 허허. 일 났네. 난, 술 마시며 ‘한소리’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맨 정신에 점잖게 타이르라는 주문이었는데. 이건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니라는 말씀이야. 잘못하다가는 부자간에 의가 나겠는 걸. 잔뜩 긴장을 하고 영감 곁에 엉거주춤 앉는다.


  “뭐하는 짓이야. 이젠 너 혼자가 아니잖냐. 식구도 늘었고 너는 이제 우리 집의 기둥이란 말이다. 그래서 쓰겠니. 외박이라니. 집에 올 정신도 없이 마셔?”

  “…….”

  옳거니. 영감도 아직 취 중이 아니니 말에 폼이 나고, 고개 숙이고 살려줍쇼 식의 아들도 맘에 든다. 영감은 결혼생활 40년에 딱 한 번의 외박을 했으니 그리 말할 자격이 있음이야.  제발 일 절로 끝내라는 무언의 눈짓을 보내지만, 영감은 내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잘못했습니다. 다시 안 그럴 게요.”

  암. 암. 그래야지. 역시 내 아들이야.


  그날 저녁 영감이 묻는다.

  “어때. 며느리가 좀 풀어진 것 같아?”

  오이~ㅇ? 영감은 그런 취지였어?

  으하하. 푸하하. 영감도 제법이네.

  역시 영감은 고부간(姑夫間)의 교통정리도 만점이었는데, 며느리 달래기도 수준급이네?

  허지만 영감. 어제 저녁엔 내 심사가 복잡했다우.


  일부러 들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이건 하나님께 맹세코 진실이다), 건너 방의 고성을 들었다. 다른 사람에겐 아니었지만, 적어도 조용한 내 며느리의 성품으로 봐서 고성이었다. 전화 통화 중인 것 같았다.

  “잘못했지? 확실히 잘못한 거지?”

  그럼. 내 아들이 제 댁에게 잘 못했다고 빈 겨? 그런 겨?! 싹싹 빈 겨?


  아들이 잘못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며느님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면 내 심사가 고요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야. 뒤틀린 심사를 다스리느라고 베란다에 섰는데, 막내딸아이가 퇴근을 해 들어온다. 어미의 볼품없는 표정에 왜? 냐고 묻는다. 이러고 저래서 저렇고 이랬다 했더니 막내가 당당히 내뱉는다.

  “오빠가 잘못했네, 뭐.”

  “…….”

  

  동의를 청하던 이 못된 어미는 뾰족한 입을 더 삐쭉 내밀어 보이고 돌아선다. 옳기는 옳지만서두…….

  “엄마.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지요. 내 경우라도 난 사과 안 받으면 용서 안 해요.”

  “일 절만 혀~.”

  영감~. 영감은 내 맘 아실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