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야기2
설날 이른 아침.
6시의 알람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지. 며느님이 늦잠을 잘 것이 분명하니 일어나 봐야겠군. 뭘 잘 해놓았나 시찰을 하려는 건 아니고, 차례 상을 봐서 며느님 손을 좀 도와줘야겠구먼. 어차피 차례를 지내야 아침상을 보겠으니. 어차피 삼탕은 며느님이 일어나도 내 몫이고. 손질 된 제기접시를 날라다 상을 본다. 과일은 딸아이가 해마다 손질을 해 왔으니, 올해도 딸아이의 몫이다. 나물이며 식혜며 물김치며 간장을 준비한다. 대추도 접시에 담고 밤을 찾는다. 어~라. 아무리 찾아도 밤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다 꽁꽁 숨겨놨을꼬. 안 보이는 건 나중 찾기로 하고, 차례 상에 올릴 떡국 물을 잡는다. 여섯 분 조부모님과 부모님 몫을 더하니 여덟 그릇일세.
딸은 재우고 며느님만 깨우기는 좀 그렇다. 하여 딸을 깨우고서도 젊은 부부가 자는 방은 두드리기가 쉽지 않다. 좀 기다리니 깜짝 놀라 일어났는지, 며느님이 급히 방문을 열고 나온다.
“밤이 안 보이네. 어디다 뒀을까?”
“밤……. 여기. 아~ 껍질을……”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잠꼬대처럼 주절거린다. 아니. 그럼 껍질도 안 깠다는 말씀이야. 이런이런. 곧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이를 어째. 봉지 채 들고 창칼을 챙겨 안방의 영감 앞에 내려놓는다.
“이걸 이제사…….”
나보다 더 당황한 얼굴이다. 영감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는 시늉을 하며 눈짓을 한다.
“내가 잘못이네요. 어제 좀 챙겨 봤어야 하는 건데.”
영감이 잽싸게 손을 놀리지만, 그게 그리 호락호락 벗겨지는가. 식구마다 달려들어 칼질을 한다. 영감은 껍질을 벗기고 딸과 나는 속껍질을 저민다. 시댁 작은아버님의 작고로 작년부터 사촌과 갈라져서 각자의 차례를 맡았다. 올해도 우리 식구만의 차례가 얼마나 다행인가. 늦은 차례를 지내고 한숨을 돌린다. 밤 사건으로 겁먹은 듯하더니, 이제야 환하게 웃는다. 며느님이 어느 새 손녀 딸아이에게 한복을 입혀 나온다.
“할아버지랑 할머니한테 얼른 세배해.” 속이 보인다. 내 속도 보였을까? 그녀도 어깨를 움츠리며 웃는다. 아이들에게도 세배를 받았지만 세뱃돈은 없다. 모두 장성한 자식들이 아닌가. 영감이 소녀 딸에게만 거금을 희사한다. 큰아들이 무척 흐뭇한가. 큰소리로 묻는다.
“누가 세뱃돈 이만큼 받아봤어?” 것도 속이 보이네. 어차피 제 것이니까.
저녁에 영감과 나란히 앉아 TV를 보며 묻는다.
“며느리가 애썼는데 그냥 있어요? 봉투라도 하나 줘야 하잖아요? 세뱃돈도 안 줬는데.”
“봉투?”
영감은 생소한 이야기라는 듯이 나를 빤히 건너본다.
“잘 했던 못했던 그래도 애썼잖우. 요새는 옛날과 달라요. 그러는 거라우.”
“알아서 하지, 뭐.”
조금은 도톰하게 봉투를 준비하고 저녁상을 받는다. 아직 며느님도 아들도 식탁에 나와 앉질 않았는데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빠가 언니는 친정에도 안 가니까 하루쯤 밥하는 거나 면해줘야겠다고 하던데.”
“…….”
밥 하는 거? 아침도 내가 하고 점심도 내가 챙겨 먹질 않는가. 고작 저녁 한 낀데…….
“그래서 가까운 데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손이 아프셔서 안 되겠지? 그러네요.”
세뱃돈이 뭔지도 모르면서 세뱃돈 챙기는 할아버지의 손을 바라보고 앉아서 기디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