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팔자가 좋다더니
일본에서 귀국하는 날.
긴 여행도 아니련만 그래도 귀국하는 맛은 제대로일세. 큰딸아이가 픽업을 담당한 모양. 딸아이는 오늘따라 일이 겹쳐서, 아침도 점심도 못 먹고 이리저리 뛴 모양이다. 차 안에 먹다 남은 찰떡이 딩굴고 있다. 배가 고파서 운전하며 물어뜯었다고. 미국에 유학 중인 큰 손녀딸이 오늘 아침에 방학을 마치고 재 출국을 했다 하니 얼마나 바빴을꼬. 에구~. 어미 호강에 귀한 내 딸 배곯고 다녔네. 여름이었으면 오픈카가 제 몫을 다했을 것을……. 뚜껑을 열고 늙은이들이 신이 나서 ‘나를 봐 달라’고 달렸을 터인데.
영감과 나를 제 집에다 실어다놓고 딸아이가 다시 외출을 한다. 우짜노. 저리도 바쁜 아이를. 다녀올 동안 여독을 푸시라고 배려가 장난이 아닐세. 뭐, 부족한 게 없는 생활이니 청소라도 해놓으면 좋으련만 밥을 굴려먹어도 좋을 듯하니……. 큰 아이 방이 비어서, 내 방이 아니어도 빈 방이 넉넉하다. 챙겨놓은 과일을 영감 앞에 내놓으니 기내식에 배가 부르다 한다. 막내 손녀딸아이에게 현지에서 들고 온 과자를 건네니, 제가 젤로 좋아하는 과자라고 제법 격식 있는 인사차렴을 한다. 기특하기는. 언제 저리도 잘 컸을꼬.
헐레벌떡 귀가한 큰딸아이의 차에 실려서 삼청동으로 향한다. 오~라. 제 신랑을 픽업하러 나갔던 모양이로고. 제 어미보다 덩치가 큰 손녀 딸아이를 구겨 뒷자리에 끼어 앉히고는……. 낸들 뭘 아나. 그저 이끄는 대로 소슬대문이 근사한 정원을 밟는다. 한 켠에 어~라. 큰아들 차가 섰네. 제 댁과 손녀와 막내 딸년을 끼워 먼저 도착한 모양. 아이고야~. 이런 데는 아주 비쌀 터인데……. 저녁 한 끼는 걍 웬만한 데라도 괜찮은데. 막내 딸아이를 불러 살짝 나무라니 제 오라비가 예약을 했다고.
아침은 막내 아들네와 같이 했으니, 그 녀석이 빠졌어도 서운해 하지 말라 한다. 그래야지. 아침엔 예쁜 막내 며느님의 미역국상을 받았지 않은가. 그래도 그녀석만 끼었으면 좋을 것을…….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아닌 척해야지. 우리 모두를 합쳐도 막내만 하지 못하냐고 녀석들 덤빌라. 이쯤에서 기분을 바꾸는 게 신상에 좋을 게야 ㅎㅎㅎ.
자식은 많을수록 좋다더니 참 그러네. 큰 딸아이는 공항에서 부모님 픽업. 큰아들은 저녁식사 자리 물색해서 예약하는 일 담당. 요번 일의 전체적인 계획은 제 어미를 닮아(ㅋㅋㅋ) 야무진 내 막내딸이 맡은 모양. 물론 일본에서의 모든 일정은 막내아들이 전담을 했을 테고. 으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두어 녀석 아니, 서너 녀석쯤 더 낳을 걸 그랬나? 그랬더라면 녀석들의 경비 분담도 좀 더 수월했을 것을……ㅎㅎㅎ.
허걱~! 아빠와 엄마 앞엔 스페시얼이라며 보기에도 요란한 먹을거리가 여러 번 들락거리더라니. 내일이 돌인 아가까지 열 명의 식사비가……. 뭣이 어째? 얼마라고라? 아빠 엄마 친구 분이랑 친척들 모시자는 것을 그동안큰 일이 많아서, 번접했던 초대를 핑계로 마다했더니 ‘축의금사양’을 제안하던 년석들이었기에, 아이들 부담이 너무 클라 싶어서 차라리 일본여행으로 돌리며, 그게 선심인 줄 알았더니……. 작정하고 그 경비를 다 쓰기로 했나 벼.
비행기에서 두 늙은이가 작당한 대로 영감이 슬쩍 일어나더니 계산대를 다녀온 모양. 나갔으면 그냥 계산을 하고 들어 오시지이! 들고 귀국한 채인 게 모자란다고 카드로 계산할란다고. 이런 이런. 아니. 그걸 마누라한테 허락을 받아야 해?! 눈치가 십 단인 아이들이 알아차리고는, 제 아비를 굳이 앉히고 나가 계산을 하는 모양이네. 허허허. 이런 덕(德)은 덕을 봤다 할 것도 없고 오히려 맘이 거북스럽다는 말씀이야. 결코 잘했다고 하지 않을 마누라 눈치를 보느라고 영감이 내 시선을 피한다. 딱한 양반. 그렇다고 뭐, 내가 영감을 때리기야 하겠어? 나중에 다른 모양으로 보상을 해줘도 되는 일인 것을…….
얘들아~!
어쩌니. 엄만 니네들한테 뭐, 해 준 게 없는데……. 너희들이 자랄 땐 너무 부족한 게 많았었을 어린 시절이었다는 걸 아주 최근에야 알았구나. 그저 최선을 다 한 것만 힘을 주어 자부했으니, 이 어미는 미련하고 둔하고 가증스럽고 또…….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더는 할 말이 없네.
아주 잘 나가는 유명인들의 뒤에는, 어떤 모양새로든지 힘이 있는 어머니들이 있었던 걸 뒤늦게야 알았다는 말씀이야. 내가 최선을 다 했다는 건, 알량한 내 수준 에서였다는 걸 알았다구.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한다더라만, 내게 있어서는 전혀 아니올씨다야. 뉘라서 귀하지 않았겠어. 눈군가가 농담이었겠지만, 넷이나 두었으니 하나만 달라 해도 내어 줄 녀석이 하나도 없더라는 말씀이야.
그랬더니 너희들이 내게 주는 사랑도 그렇구먼. 이 녀석은 이렇게 살갑고 저 녀석은 저렇게 살갑고 또 다른 녀석들은……. 하지만 여럿 남매를 거느린 어미는 말이다. 이 자식 앞에서는 저 자식의 칭찬을 할 수 없고 저 자식 앞에서는 이 자식 말을 할 수가 없더라. 그걸,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없는 걸 어쩌겠어. 이렇고 저런 살가움은 마음에 담고 그저 어느 녀석이랄 것 없이 몽땅 고맙고 예쁘단다.
아~. 이렇게는 말 할 수 있지. 큰딸은 이제 사십이 넘었으니 친구 같아서 좋고, 낼 모레 사십 바라보는 큰아들은 든든해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좋고. 셋째인 막내딸은 오랫동안 어미 곁에서 곰살스럽게 살펴줘서 좋고, 막내아들은 막내 답지 않게 의젓하게 엄마 아빠를 지켜줘서 좋고. 그러나 제일 좋은 건, 니네들이 자랄 때도 걱정 한 푼을 안 시키더니, 지금도 다투는 일 없이 조화롭게 사는 게, 너무너무 좋구나. 그 어떤 효도보다도 제일로 좋아. 그래서 엄마 아빠는 더 신이 나고 행복하지.
어~이. 딸들 아들들.
뭐니 뭐니 해도 사위와 며느님들을 잘 물어(?)와 줘서 고마워. 눈이 파랗고 코가 크고 너무 약하고 너무 길이가 짧긴 해도, 최고의 사위와 며느님들이라네. 눈이 파래도 제대로 볼 수 있고, 코가 커서 뭐 걸리는 거 있어? 약하다고 못하는 일 없고 길이가 짧다고 부족한 거 어디 있는 감?! 좋아요 아주 좋~아(전두환 전 대통령 버전). 막내딸도 어서 짝꿍 데리고 와. 우리는 네가 좋다는 녀석이면 만사 오케~이 여.
아, 잊을 뻔했네. 벌써 대학생이 되어서 미국 주립대의 장학생으로 유학 중인 외손녀와, 아직도 제가 '아가'라고 우기며, 외국인 학교에서 다방면으로 날고 뛰는 고등학생 둘째 소녀딸. 그리고 친 손녀와 손자. 고추가 없는 녀석은 없는 그대로 예뻐서 좋고 고추가 달린 녀석은 그래서 좋고. 이 애들 없었으면 시방 무슨 재미로 살아?!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 싶고, 내 입에 들어간 것까지도 아깝지 않으니 참 하나님의 조화는 신비롭고 오묘하시단 말씀이야. 에헤라 디여~.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더 행복한 말년을 보낸다네. 예전에 어느 스님이 말했었지. 엄마의 사주에 말년이 기똥(?) 차다나? 맞아. 맞았어. 그 스님이 아주 신통한 스님이셨구먼 ㅎㅎㅎ.
같이 사는 큰아들네 손녀딸입니다^^ 일본에 사는 막내아들네 손자입니다^^
다 큰 외손녀 딸아이들은 그 미모가 출중하나, 초상권이 어쩌고 할 것 같아서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