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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전생(前生)의 죄인(罪人)이라네


BY 만석 2010-12-19

 

전생(前生)의 죄인(罪人)이래요


  내게는 서른다섯 살의 막내 딸아이가 있다. 결혼을 한 제 친구들은 벌써 학부모로 동분서주하는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아~함하다’ 한다지. 어디가 특별하게 모자라는 건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할 그녀다. 내 입으로 가히 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혐오스럽지는 않다. 상냥하고 경우 바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하겠지. 허긴, 경우가 바른 사람치고 그 성격이 모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녀의 영악하고 깍듯한 자기관리(自己管理)가 모난 성격이라고도 하겠다. 아, 모자라는 구석도 있긴 하다. 작은 키가 흠이긴 하나 그것이 결혼을 못할 만큼은 아닌데. 헌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봐 줄만은 하다는 말씀이야.


  제 오라비의 결혼생활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결혼을 하기는 해야겠다는 소릴 요새로 제법 자주 한다. 손녀의 재롱도 내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싶은 데에 한 몫을 하는가 보다. 조카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그렇게 자애로울 수가 없고, 눈에 띄는 예쁜 머리핀은 몽땅 걷어오는 모양이다. 나도 요런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귓속말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정말 결혼을 하고 싶기는 한가보다. 그 좋은 혼처 다 놓치고 이제사. 쯔쯔쯔.


  그런데 이 어미의 ‘생각’ 깊은 곳에는 좀 다른 뭔가가 있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가 꼭,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회의(回議)가 있다. 외유(外遊)가 많지는 않았지만 양장점을 40여 년간 운영한 나로서는, 제법 많은 기혼(旣婚)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성은 별로 많지 않았다.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애써 함구(緘口)를 하지만, 두 번만 만나보면 그 속사정을 알 수 있다. 과히 부럽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남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나와 며느리의 경험으로 얻은 이야기를 하자. 그보다 확실한 이야기는 없으니까.


  깨워주는 시간도 놓치기 일 수고, 해 주고 퍼주는 밥을 먹고 빨아서 손질해주는 옷만 입던 딸년들.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가고, 보고 싶은 거 맘대로 보던 그녀들. 사고 싶은 것도 뜻대로 먹고 싶은 것도 멋대로 이던 그녀들. 마음이 끌리는 이성도 보고 싶은 친구도 참을 필요가 없었겠지. 비가 오면 정유장에서 우산을 들고 보초를 서던 부모님은 어버이날과 생신에 쩐(錢) 몇 푼 건네면 생색이 난다. 감기라도 앓는다 치면 따라다니며 약을 챙겨 먹이지 않았는가.


  결혼만 해 보라지. 별이라도 따다준다던 남정네 언제 그랬는데? 할 것이고. 그 남정네라는 위인은 너랑 신나게 연애하느라고, 폼 나게 결혼하느라고 생긴 마이너스 통장을 내 밀 것이고. 밥은 내 손으로 해서 바쳐야 하고 깃발 날리며 셔츠 다리고 바지주름 세워 입혀야 하고.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일일이 상의(相議)를 해야 하고. 비 내리면 손수 우산 들고 뛰어야 하고 감기라도 들면 그 엄살 다 받아줘야 하고. 네 부모 내 부모 챙기려면 자연스럽게 내 부모는 등한해서 서러울 게 뻔하지.


  아기라도 낳아 보라지. 내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그 녀석은 뱉어내라고 응아~응아~ 울어대겠지. 그래서 내 딸아이가 어느 날, 길이 남을 명언(名言) 한 마디 날리더군.

  “세상의 엄마라는 존재는 전생(前生)에 얼마나 큰 죄를 졌기에……”

  자식을 위해 몸 바쳐 마음 바쳐 섬기고, 요구하지 않아도 강요받지 않아도 일생을 통해서 희생해야 하는 어미를 두고 말하는 게다. 전생에 엄청난 대죄(大罪)를 짓고 환생(還生)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존재라 한다.


  뻔히 그런 줄 알면서도 여자들은 결혼을 한다. 남정네들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내 아들을 통해서는 그저 재미있고 즐거워하는 모양새만 볼 수 있으니까.

  “요렇게 예쁜 딸이 나올 줄 미처 몰랐어요.”
  “설거지도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까 봐주세요.” 하니 말이다.

  실제로 내 며느리가 칭얼거리는 손녀를 안고 졸리는 눈을 뜨지 못할 때, 시부모 밥상을 차리며 우왕좌왕(右往左往)할 때마다, ‘무슨 죄냐?’ 싶다. 그녀도 딸이 있어서, 설거지 해주는 신랑이 있어서 행복한 걸까.  

 

엄미는 힘든 줄도 모르고 행복하기만 하단다.

에고~. 좀 안아 주려 해도 걸레질 하는 어미 등에서 안 떨어져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