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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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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며느리도 어미라요


BY 만석 2010-11-27

 

 며느리도 어미라요

 

  며느리가 생기면서 집안에 달라진 게 많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도 많고, 그렇지 못한 쪽으로의 변화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좋지 않은 쪽으로의 변화는 아직도 서로가 맞춰가는 과정에서의 불협화(不協和)라고 해 두자. 하여 앞으로의 변화가 좋은 쪽으로만 변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안 좋은 쪽의 변화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이르는 말이겠다. 다분히 내 개인적 성향에서 오는 것도 있고 이기심에서, 아니면 나도 고질이라 자처하는 그 알량한 고집에서 일 수도 있다. 다른 일은 내가 시어미로서 더 성숙해질 때까지 모두 접어두고, 오늘은 그저 허허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보자.


  며느리라는 이름의 그녀가 입성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집이 깨끗해졌다는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는 욕심이 많은 늙은이라서 항상 일을 많이 벌리고 살았지.. 되지 못하게 만학(晩學)을 하는가 하면, 공부를 마치고는 복지관으로 쫒아다니며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큰 병을 얻었으니 기가 좀 죽을 만도 하련만……. 강의를 할 만한 성대로 복원이 되지 않았다고 또 다른 일을 찾았으니……. 게다가 어질러놓는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청소는 사흘에 한 번이 고작이었지. 것도 잘 보이지도 않는 노안(老眼)으로 말이다. 그러니 며느리의 깔끔이 더 돕보이기도 하겠다.


  핑계는 그만 두고라도 게으른 늙은이에 비하겠는가. 밝은 눈에 젊은 힘을 빌어 집안이 눈에 띄게 반질거린다. 젊은 부부가 쓰는 두 방은 물론이고, 거실과 주방도 말끔하다. 내 방은 책(策)잡힐 게 있을라 싶어서 며느리의 선심을 굳이 마다했었지. 그 대신 나도 사흘에 한 번쯤 하던 청소에 쪼끔은 더 신경을 쓰게 되더란 말씀이야. 내 딴에는 심도 있게 깔끔을 떨었겠다?!


  그런데 손녀 딸아이가 생기면서 판세(判世)가 달라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아기가 제 방에만 머물겠는가. 그렇다고 거실에서만 놀겠어? 묶어둘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으니 제 할미 방이라고 들어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요즘 아가들은 영악해서 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귀신처럼 알아서 시도 때도 없이 기어드는 데에야.


  며느리가 보아하니 시어미방의 청결도(淸潔度)가 과히 맘에 들지 않았던가 보다. 결국 며느리가 걸레를 들고 들어오고 구석구석은 그만 두고라도 방바닥이 유리알처럼 말끔해지는 지경이 되었겠다? 얼마를 못 가서는 저녁마다 집안의 청소를 도맡은 아들이 안방을 드나들며 청소를 하는데, 어려서부터 깔끔하기로 이름난 이녀석은 침대 밑이며 책상 뒤까지 티끌도 보이지 않게 부지런을 떨더란 말씀이야.


  여름이 되면서 방에서 하던 손녀 딸아이의 목욕이 화장실로 옮겨지더군. 아기가 두 손을 휘저으며 양쪽 벽을 더듬었겠다? 우리 화장실은 좁아서 아기가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양쪽 손이 벽을 더듬게 되어있지. 어미가 그걸 두고만 보겠는가. 아기의 두 손이 닿는 화장실 양쪽 벽의 타일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반짝거리기 시작하더군 ㅎㅎㅎ. 변기쪽? 그쪽은 아직 내 손녀딸과 무관한 걸 알아야지 ㅋㅋㅋ.  김장을 하느라고 일 주일동안 변기를 돌아보지 못했더니 세상에나……. 그래서 화장실 입구의 양쪽 벽의 타일이 눈에 띄게 더 반짝 거리더란 말이지 으하하~.


  우리 집은 대문을 들어서며 제법 높은 계단을 올라야만 마당에 올라선다. 작으나마 마당을 밟고 현관문을 열면, 신을 벗고 다시 대 여섯 개의 계단을 올라서서, 실내 보온용 현관문을 열어야 거실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시방은 내 집의 구조를 알리려는 게 아니고 이제부터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하려고 서곡을 올린 것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어수선하고 덜 깔끔한 곳이 보온용 현관부터 대문까지다. 왜냐고 물어 볼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겠다. 아직 어린 내 손녀 딸아이가 보온용 실내의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음이 자명(自明)하니까 말씀이야 후후후. 실내로 통하는 보온용 현관문 밖에는, 아기의 응가를 처리한 기저귀도 모아놓고 신발장에는 발이 큰 남정네들의 싸이즈 큰 신발이 신발장의 문을 삐꿈 열어놓아 가끔은 흙이 날리기도 하는 곳이다.


  이제 우리 이쁜 아가가 걸음마를 시도하는 중이다. 아마 기저귀를 차지 않았음 엉덩이께나 터졌을 게다. 일어났다가는 풀썩 주저앉고 한 걸음을 뗬다가는 펄썩 주저앉으니……. 그러나 곧 아장아장 걸을 태세다. 아가가 걸음마를 하고 보온용 실내현관문을 열만한 힘을 과시해 보라지. 내 며느리는, 계단은커녕 마당도 아마 걸레로 문지르지 않으려나? ‘여기도 좀…….’이라든가, ‘저기도 좀…….’하는 따위의 내 잔소리는 필요치 않다. 가당치도 않다는 말씀이지. 공연한 잔소리로 인심을 잃을 필요가 있는가 케케케.


  어서 내 손녀 딸아이가 컸으면 좋겠다. 반질반질한 계단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깔끔해진 마당을 걷고 싶어서도 아니다. 내 며느리의 변화가 보고 싶은 게다. 아니, 내 예견(豫見)이 옳게 적중을 할 것인가가  궁금해서다. 어미로서의 며느리의 점수는 만점이다. 아니, 그 이상의 점수도 후하게 쳐 줄 용의(用意)도 있음이야. 그렇다고 다른 일에 인색한 점수를 주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은 맞춰가는 과정이니까 점수는 차차……. 

(지금은 간식 중.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미... 결사적이다. 그래서 내 며느리가 더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