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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늙으면 아이가 된다


BY 만석 2010-02-10

 

늙으면 아이가 된다

 

  외손주 딸아이들이 온다고 한다.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기에, 그리고 할미도 방학을 했으니 불러야 했다. 뭐, 남의 집 방문은 초대를 받아야 하는 거라나? 외국생활을 몇 년 하고 오더니 ,제법 서양풍습을 익힌 모양이다. 먼 길 다녀와서 어른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미덕이었음을 역설해도, 고집스레 불러 달라고만 한다. 정중(?)하게 초대를 했다. 아이들이 오니까 엄니도 반가워하신다.

  된장찌개도 좋아라. 순두부찌개도 베리 굿. 아이들 탄성에 신이 나서 이 할미도 덩달아 손주들의 먹거리 해 나르는 일에 힘이 든 줄을 모른다.
  “할머니. 천국에 온 것 같아요.”
  “우짠 천국씩이나?”
  아무튼 ‘별로’라는 말보다는 듣기에 좋다. 직장생활을 하는 어미가 쉽게 인스탄트를 많이 먹여서겠다 싶어서 마음이 짠하다.

  “할머니~. 난, 속이 상해요.”
  “어째서?”
  큰 손녀 딸아이가 심통이 나서 주방의 할미를 찾는다.
  “증조할머니께서 자꾸만 불을 끄셔요. 난, 어두운데.”
  평소 전기를 아끼시는 엄니가 아이들이 컴 하는 방의 불을 자꾸만 끄신다고. 전에도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또 시작이신가 싶어 엄니께 소리를 지른다. 요새로 부쩍 더 못 들으시기 때문이다.
  “엄니요. 아이들 어두우면 눈 버려요. 냅 두셔요.”
  “그만혀두 밝은디……. 핼미나 아그들이나 똑 같어.”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가 싶어서 서운하신 모양이다. 당신 방문을 세차게 닫으신다. 아이들을 달래서 방안으로 들어가라는 눈 짓을 한다.

  잠시 뒤.
  다시 아이가 발을 굴리며 통통통 뛰어나온다.
  “할머니. 증조할머니가 또 불을 끄셨어요.”
  방에 들어가 보니 엄니가 안 계신다. 불을 끄시고 잽싸게 당신 방으로 들어가신 모양이다. 아이구~. 어린애가 되신 모양이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아이들을 달래 앉힌다.

  엄니 방으로 가서 문을 여니, 이불을 얼른 머리 위로 올리신다. 정말 웃음이 난다. 내 장난기도 발동을 한다.
  “엄니. 주무시요?”
  “…….”
  “우리는 나갔다 올라요.” 공연한 소리다.
  “워디 가?”
  덮어 쓰셨던 이불을 걷고 얼굴을 내 미신다.
  “엄니가 자꾸 불을 끄니께 아그들 데리고 밖에 나갈라요.”
  “안 그러께.”
  정말 아이가 다 되신 모양이다.
하하하.


  야구루트가 배달되어 왔다. 내일 것까지 네 개가 왔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싶으나, 엄니 몫이니 엄니 방으로 들여놓는다. 엄니가 금방 야구루트 두 병을 안고 의기양양 나오신다.
  “이거 갖다 먹어라. 그 대신 어깨 좀 주물러라.”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야구루트 하나 먹자고 컴을 멈출 리가 없지. 공연한 시비를 거시는 게다. 나서고 싶지만 되어가는 모양새를 보려고 관망을 한다.
  “할머니. 난, 안 먹어요.”

  안방에서 내 컴을 끼고 앉았던 작은 손주가 먼저 대답을 한다.
  “할머니. 나도 안 먹어요.”
  제 큰 외삼촌의 컴에 앉았던 큰손녀 딸아이도 소리를 지른다.
  “이거 안 먹어? 안 먹으믄 니들 손해여~.”

  야구루트를 내 밀었다가 얼른 품에 다시 안으신다. 딱한 우리 엄니. 증손자들과 시방 힘겨루기를 하신다.

  “안 먹어? 진짜 안 먹어?”
  “예.”
  “녜.”
  엄니는 시무룩해서 서 계신다.
  “엄니요. 아이들이 시방 게임하느라고 열이 올랐는데……. 내가 주물러 드릴께요.”
  “히히. 그양 해 본 소리여~.”
  엄니는 아장아장 걸어서 당신 방으로 들어가신다.

  엄니는 영판 어린아이시다. 엄니는 며칠 심심치 않으시겠으나 내가 머리 아프게 생겼다.
엄니요~. 아그들은 며칠 안 있을 거라요. 제발 협조 좀 해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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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석 2010-02-10
    파이님.
    댓글이 달렸기에 파이님인 줄 알았어요ㅎ~.
    맞아요. 지나고 나면 후회되지요.
    그땐 어린 증손녀들과 기싸움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마 같이 놀고 싶으셨던거 같아요.
    그만큼 무료하셨다는 게... 좀 안된 맘이 들어요.
    우리도 머지않아 어린아이가 되겠죠?
    아니, 파이님은 아직이고 만석이는 곧...ㅜㅜ.
  • 아트파이 2010-02-10
    ㅎㅎㅎ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죠? ^^
    정말 그래요...
    저희 시아버님이 그러셨거든요..... 작은 일에도 토라지시고.... ㅎㅎㅎㅎ
    아프셔서 더 그러셨던것 같아요..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그땐 아이처럼 왜 그러실까 했었네요.... 조금 더 잘 해 드릴걸...지금은 약간 후회되네요.... ^^;;
  • 만석 2010-02-11
    백향목님.
    궁금하세요?
    배운다는 건 끝이 없지요.
    남 하는 건 다 경험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 백향목 2010-02-11
    할머님이 아주 귀여운 면이 다분히 있으시네요 ㅎ ㅎ

    만석님은 저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더 인생의 선배님이신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늦은 공부를 하시게 됐는지 전부터 궁금했어요^^
  • 만석 2010-02-17
    달팽이님.
    안녕?!
    저도 나이가 들고보니 손주가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든 자녀들은 제각기 바빠서 곁에서 보기도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늙으면 아이가 되나 봐요. 댓글 감사합니다^^
  • 달팽이 2010-02-16
    친정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울할머니도 어린아이같으시고 정이 무척이나 많은 분이셨지요... 손주들 사랑이 무한정으로 많으셨던 할머니 그리워지네요
  • 만석 2010-02-17
    낸시님.
    안녕?!
    손주가 생기니까 집안 분위기가 아니, 내 인생이 달라졌어요.
    살아있음이 실감나고 더 살아야 할 것 같고...
    아드님이 혼전인가 보죠?
    나도 35살 딸아이가 아직 혼전이라 조르는 중이지요.
    아드님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음 좋겠습니다.
    댓글 감사해요^^
  • 낸시 2010-02-16
    참말로 귀여운 할머니시네요. 어린애는 날마다 이쁜짓이 늘고 노인네는 날마다 미운짓이 는다는데... 할머니를 귀엽게 그려내시는 만석님은 아름다운 마음의 눈을 가지셨구요. 전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아들더러 제발 장가 좀 가라고 조르는 중이랍니다. 요즘, 처음으로 여자친구라고 같이 다니는 여자애가 있는데, 얼마나 이쁜지...행여 헤어지면 어쩌나...벌써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