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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시어미와 며느님의 동상이몽


BY 만석 2010-01-10

 

시어미와 며느님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둘째 며느리가 아기를 가졌다 한다. 결혼한 지 8개월. 이제쯤은…… 하고 기다리는 차였다. 서른 살 아들이 첫 아기를 가졌다 하면 뭐, 크게 이슈가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녀석이 내 막내아들이라는 데에 큰 의(意)가 있다는 말씀이야. 허허. 내년엔 두 마리의 백호가 내 앞에서 뛰어다니게 생겼네?! 것도 60년만의 백호(白虎)라지? 모든 길조(吉兆)를 품은 백(白) 호랑이(虎)가 말이다. 절로 웃음이 난다. 영감도 입이 귀에 걸린다.


  “얼마나 됐데요?”

  “태몽은 누가 어떻게 꿨데요?”

  아랫동서가 임신을 했다는 소리에 내 큰 며느님이 다그쳐 묻는다. 하하. 나는 알지. 네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속마음을. 왜 아니 그렇겠어. 나라도 그러겠는 걸.

  “태몽도 없었단다. 한 5~6주 됐나 보더라.”

  “…….”

  그녀는 시무룩해서 고개를 돌린다. 푸하하. 글쎄 나는 네 속을 안다니까.


  아마 7~8개월 전쯤이겠지? 나는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분명히 태몽인데 말이야. 아주 덩치 좋고 검정 무늬가 선명한 하얀 호랑이가, 현관앞에 버티고 서서 나를 쳐다보더라구.”

  그날은 아무도 대구가 없었다. 나도 뒤 늦게 며느리가 신경 쓸라 싶어서 고개만 갸우뚱하고는 말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TV 화면에 검은 줄무늬의 백색 호랑이가 보였다.

  “아, 저거……. 저거야. 바로 저 녀석. 내가 꿈에 본 백색 호랑이!”

  백호(白虎)라고 했다. 2010년이 60년만에 맞는 백 호랑이의 해라고.

  “가만있자. 이건 진짜로 태몽인데. 태몽이 맞는데.”

  “백호가 엄마를 쳐다봤다며? 엄마 늦둥이 보시려나? 오호호.”

  딸아이의 너스레에 나는 그만 계면쩍게 낯을 붉히며 히히히 따라 웃고 말았었다.


  한 달쯤 뒤.

  “엄마. 쟤가 아기를 가졌다네요.”

  “오이~~~ㅇ?!”

  손자를 보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내 꿈이 맞았다는 게 더 반가웠다.

  “거 보라지. 내가 태몽이랬잖아. 틀림없이 아들일 게야.”

  며느리의 걱정은 아랑곳없이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지.


  몇 달 뒤.

  아마 두어 달쯤 뒤였을까. 정기검진 차 병원을 다녀온 며느리가 울고 들어왔다. 말을 하지 않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뭐가 잘 못 된 겨? 아직 퇴근 전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하하. 병원에서 선생님이 딸이라고 한다네요.”
  “아니. 시부모가 꼭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도 아닌데 왜 지가 울어?”

  “…….”

  “워~ㄴ. 별 일도 다 보겠네. 너, 다시 울면 나중에 애기한테 다 이를 겨.”


  며느리가 운 이유는 이러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구먼. 제 친정의 형제가 사 남매인데 위로 오빠 두 분과 언니마저도 첫 아들을 낳았다고?! 그래서 저는 당연히 첫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자신을 했다나? 더욱이 내가 백호의 태몽을 꾸었다 하니 첫 아들은 맡아놓은 당상(當相)이라 마음을 먹었던 게지. 시댁의 어른들이 모두 입을 모아 딸이면 어떠랴 했으니 한 시름 놓고 지내던 차 손아랫동서가 임신을 했다지 않은가.


  우하하. 현명한 며느님의 머리회전이 빠를 수밖에. ‘어머님의 태몽이 혹시 동서의 것이었나?’, ‘그럼 동서는 아들을 낳을 확률이 크지?’, ‘그러면 시부모님은 작은동서를 예뻐하시겠지?’, ‘내 아기보다 동서네 아기를 더 귀히 여기시겠지?’, ‘그럼, 내 아기는 끈 떨어진 연?’ 제 생각대로 그렇게만 된다면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였을까. 며느님은 아기의 태명을 ‘백호’라고 공표했고, 기를 쓰고 ‘백호’를 강조하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흐흐흐. 며느님은 심각한데 이 시어미는 웃음이 절로 나오니 어쩐다?


  며칠 뒤에 며느리가 다시 조용히 묻는다.

  “동서가 아들 낳으면 아버님이 이름 지어 주시나요?”

  “아들은 돌림자 따라서 집안 어른들이 지으시고, 딸은 너희가 지으라고 하실 걸?”

  푸하하. 눈치 백단의 이 시어미는 또 며느님의 속을 또 읽었구먼. 시어른이 이미 심중에 두었을, 월등하게 좋은 이름을 선제공격(先制攻擊) 당하는 느낌이겠구먼.


  크크크. 며느님은 별 게 다 걱정인가 본데, 이 시어미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니 이를 어째.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는 걸? 딸이라도 작명은 해 주어야 한다고 영감에게 슬쩍 귀뜸을 해주어야겠는 걸?! 그래도 얘야. 난, 네가 말이다.

  “동서라도 아들 낳아 두 분 섭섭지 않게 해 드리면 좋겠어요.”라고 했으면 더 좋겠구먼. 그럼 더 예쁘겠다는 말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