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잘 못 키운 겨?
“아, 죽기루 작정한 겨?! 뭐라두 덮고 자제, 이게 뭐여? 보이라나 좀 올리지......!”
두어 번을 나가 살펴도 엄니 방은 기척이 없으시더니, 이제 막 잠이 깨신 모양이다. 여느 때는 일어났다는 통보를, “에헴!”으로 알리시더니, 오늘은 역정이 난 모양이시다. 누웠던 내 몸이 반사적으로 퉁겨져 일어나 앉는다. 엄니의 심중을 살피느라고 잠깐 귀를 기울인다.
“문은 누가 열어놨누!”
‘문을 열어? 영감이 더워서 창문을 열었나?’ 그러고 보니 옆자리가 비었다. 옳거니. 어제 과음을 했더니만, 속에서 열이 난 모양이로구먼.
“아, 뭐라두 덮어야지 저렇게 어떻게…….”
뒷말은 분명히, ‘저렇게 자도록 내 버려뒀느냐!’는 말씀이시렸다. 그러고 보면 나를 탓하시는 중이로구먼. 얼라리. 정신없이 술 퍼마신 아드님은 젖혀놓고, 알토랑같은(?) 며느리를 나무라셔?
“지금 막 나와서 누웠어요.”
아드님의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이 집엔 사람 없누?”
거실 소파에 아드님을 재웠다고 역정이 나신 게다.
약이 오른다. 부화가 난다. 어제 밤늦도록 자지도 못하고 기다린 것이 약이 오르고,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도 않고 자리에 든 영감도 미운데……. 이럴 땐 엄니가 더 밉다. 누가 그 큰 키의 아드님을 떠다 뉘인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엄니는 더 역정이시다.
“내가 죽어야 혀. 어서 죽어야 혀.”
뭘 끌어다 덮어주시는 모양이다.
“아, 싫다는데……. 거, 참.”
보나마다 발길질로 걷어찼을 게다. 영감은 열이 많아서 더운 것을 참지 못한다.
“속은 열이 나고 겉은 추우면 큰 일이 난다잖여~.”
엄니의 언성이 쩌렁쩌렁. 매일 앓는 소리만 하시더니 어디서 저런 힘이 나셨누. 큰일이 나는 걸 모르는 아드님도 아니고 나도 아니지만, 영감이 일단 취중이면 아무도 그의 고집을 이겨내지 못한다. 거실이 조용하다. 엄니가 들어가셨을까?
방문을 여니 엄니가 굽은 등으로 마주서서 내 방문을 쏘아보고 계시는 중이다. 뾰족한 시선이 예사스럽질 않다. 오늘은 무슨 사단이 나겠는 걸? 어쩐다?! 상을 차려 대령을 하고 내 방으로 건너와 궁리를 한다. ‘요’에다 물을 부어? 영감의 요를 돌아보니 마침 귀퉁이에 주전자가 나동그라져 있다. 물론 요의 귀퉁이가 살짝 젖어 있다. 옳거니. 저거다. 화장실문을 살짝 열고 주전자에 물을 조용히 채운다. ‘이럴 땐 약간 따뜻한 온수가 제격이렸다. ‘뒷수습이 귀찮을 테데…….’하다가, ‘아니지. 시골집에는 목화솜 이부자리가 가득하지 않은가. 알뜰한 엄니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신 이불이 그득하니 이번 참에 실어오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주전자를 기울여 요 위에 주루룩. 적신 요를 질질 끌어 엄니 조반 자시는 앞을 지나 현관 앞에 동댕이치고 방으로 들어온다.
밖이 조용하다. 영감은 아직 눈을 감은 채겠지만, 엄니는 이제 요의 모양새를 보셨을 게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밖은 조용하다. 아주 조용하다. 주일이니 아들은 아직 한 밤중일 테지. 영감이 일어나면 어쩐다? 속옷은 멀쩡한데 요는 젖어있으니 이상타하겠지? 그렇다고 매달려서 속옷을 적실 용기는 없다. 좀 더 일찍 잠이 깼어야 했나? 겁이 더럭 난다. 영감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한 번의 의심은 앞으로의 신뢰감을 자주 상실하게 한다는 게 걱정인 게다. 이런 저런 궁리로 방안을 서성거리는데, 엄니가 들으라는 듯 한 마디 더 토하신다.
“이러구 앉아 밥을 퍼먹응께, 밥에 걸신 든 여편네 같구나!”
으하하. 엄니의 목청이 한결 낮아지셨다. 이젠 됐다. 점심엔 아마,
“에미야. 나, 아들 잘 못 키운 겨? 그려도 밥 먹자. 너 안 먹으믄 나도 안 먹을 겨.”하실걸?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