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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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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엄니요. 내도 재미 좀 보입시더


BY 만석 2009-12-28

 

엄니요~. 나도 재미 좀 보입시더

 

  딸년들은 만나기만 하면 수다가 끝이 없다. 석 삼 년이나 된 것처럼 지지배배 또 지지배배. 내 그렇게 살라 하고 둘을 두었으니 볼수록 좋다. 주방의 에미를 도우다가도 어느 새 엉겨 붙어 못 다 나눈 이야기에 한창이다. 쯧쯧. 상에 수저를 챙기다가, 수저 뭉치를 든 채로 마주앉았구먼.

  "이히히."

  "오호호."

  그녀들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을 새도 없지만, 보기만 해도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이다음에 며느리의 일이라도 이리 좋아야 할 텐데……. 상은 차려야겠으니 막내 딸아이 손에서 말없이 수저를 넘겨받는다. 아차 싶었는지 쌩끗 웃으며 낼름 일어나 두레상에 수저를 챙긴다.

  "그건 할머니 건데……."

  "이건?"

  "그건 아빠 거."

  "왜? 그런 게 어딨어요? 이거랑 그거랑 한 쌍이구먼……."

  뭐가 잘 맞아들지가 않는 모양이다. 이미 상 위에 올려놓은 수저와, 제 손에 쥐어진 수저를 번갈아 들여다본다. 나는 알지. 쌍은 쌍이어도 그건 엄니와 엄니 아들의 것들이다.

  "엄마. 왜 할머니랑 아빠 게 한 쌍이예요?"

  "그냥 그렇게 놔."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엄마는?"

  "요거."

  "왜? 그런 게 어딨어요?"

  "엄만, 커피 잔두 그러더니 수저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엄니가 서울의 우리 집으로 옮겨오셨을 때, 그때는 왜 그리 엄니가 측은해 보였던지……. 내, 지금도 그때 그 마음만 같다면 효부상은 따 놓은 당상인 것을. 혼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 혼자가 된 외로운 어른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크게 효부는 아니로되 수저도 한 벌은 숨겨야 하고, 찻잔도 한 벌은 깊숙하게 넣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 해도 될 일을, 엄니의 아들과 같이 드는 찻잔도 눈치스럽고, 같은 무늬의 수저를 챙겨 먹는 것조차도 그리 죄송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엄니와 내 영감은 언제나 한 커플이 되었다. 수저와 찻잔은 물론이요 방석까지도 엄니와 내 영감은 한 셋트다. 며느리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엄니는 한 번도 그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으셨다. 내 영감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량한 마누라의 배려를 알 것이고.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니 뭐, 심사가 꼬이는 일은 아니나 곁의 식구들이 자꾸만 거론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꽤나 효부인 척하는구먼. 그럼, 내가 결코 효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 마디쯤 해야겠다.

 

  엄니는 언제나 엄니 아들과 나란히 소파에 앉으신다. 아예 내 영감의 옆자리는 맡아 놓고 엄니 자리다. 눈치로 말씀드리자면 조자룡이요, 감으로 말하자면 녹익은 홍시인 엄니시다. 어째서 아들과 며느리가 나란히 앉아 있는 꼴을 못 보신다는 말인고.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 짚고 넘겨야겠다. 바로잡아 내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오기가 발동을 한다. 까짓 수저까지도 찻잔까지도 양보를 했으니, 소파의 영감 옆자리가 뭬가 그리 욕심이 났을꼬.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수작이다.


  엄니도 나도 기분이 아주 좋은 어느 날. 엄니 아들도 없겠다 녹차 두 잔을 쟁반에 얹어 엄니 곁에 앉아 한 소리 한다. 이럴 땐 너무 엄숙해서도 안 되고 농담인 양이 좋다.

  "엄니요. 이 자리가 그리도 좋소?"

  "……?"

  "나 좀 눕구 싶어두 엄니 땜시 못 눕는디."

  말의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하던 엄니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신다.

  "아이구~야. 별 소릴 다 하네. 누워. 누워라."

  "엄니가 기시는디?"

  "내, 있음 워뗘. 누워. 누워."

  엄니는 내 팔을 잡아당겨 금방 눕히실 태세다.

  "와, 엄니 방에 기시다가도 내가 이층으로 올라오믄 잽싸게 아들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요?"

  "사람이 그리워서 그라제. 니 오가는 것도 보구……."

  "나는 엄니가 떠~억 앉았으니께 영 어려운디요? 내 궁둥이만 쫄쫄 따라다니는 엄니 시선도 싫고."

  "어렵긴 뭐시 어려버."

  "엄니가 누구여. 내 시어머니란 말이시."

  "고부간에 그런 게 어려우믄 못 살지. 괜찮여~."

  "엄니는 괜찮제. 나는 신랑 손 한 번 잡아 보구 싶어도 그리 못하고. 으하하하."

  이쯤에서는 웃어야한다. 아니면 엄니가 삐지실 테니까. 엄니가 삐지시면 내 심사가 오히려 불편하다.


  너무 직설적이었는감? 서둘러 엄니에게 너스레를 친다.

  "엄니요. 머리 자릅시다. 좀 있어도 좋겠구먼서두 오늘 내 시간 있으니 자릅시다."

  "그럴까?"

  이리저리 모양을 내고 목욕을 시키시는 동안, 며느리의 서운한 말을 잊으셨나 보다. 뜨거운 꿀차에 남았던 앙금이 녹아지듯 엄니 가슴의 앙금마저도 녹아내렸나보다. 히히히. 됐다. 이제 엄니는 아들 옆자리를 두고 벌렸던, 며늘 년의 서운한 말쯤은 잊으셨을 게다. 다음 날부터 거실의 엄니 자리가 달라졌다. 소파 오른쪽 작은 의자. 그러니까 내 방 문이 마주 바라보이는 자리에 앉으신다. 방을 드나들 때마다 콩콩 문을 닫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열어놓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에구~. 그냥 아무소리도 말 것을. 내가 놓은 덫에 내 발이 걸린 격이다.

  "엄니요. 다 관 둘라요. 엄니 편한 데 앉으소. 엄니 아들 손잡고 히히덕거릴 나이는 진즉에 지났으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