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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며느님의 놀토일


BY 만석 2009-11-30

 

며느님의 놀토일


  주 5일 근무제. 이 ‘주 오 일 근무제’가 내 집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은 직원들의 주 오 일 근무를 위해서, 남편이 토요일마다 이른 출근을 하는 게 그 첫 번째 사단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내가 조금은 더 고달파졌다는 게 더 큰 사단이다. 오 일이 편하다가 단 하루 고달픈 것쯤 뭐 그리 대수냐 하겠으나, 그래서 더 고달픈 것을…….


  남편이 벌써 정년퇴직(停年退職)을 하고 들어앉은 친구들은, 늙은 영감의 꼬장한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것도 들어보니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는 말이 공연한 핀찬은 아닌 성. 결혼을 하느라고 어른들이 알아본 내 사주에, 말년의 복(福)이 많다더니 것도 헛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세상일이 언제나 그러하듯 상대적인 것이어서, 고달픈 어미의 이면엔 즐거운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 내일의 늦잠을 만끽하려고, 아들 부부는 아예 금요일 저녁부터 축제 분위기다. 특히 컴을 낀 아들은 자정은커녕 한 시 아니, 두 시도 초저녁이다. 그 대신 녀석에겐 토요일 아침이란 없다. 오 일의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야만, 월요일의 출근이 다시 행복해 진다 하니 낸들 어쩌겠는가. 덩달아 며느리도 아들 옆에 컴을 켜고 앉아 아양이 한창이다. 하루 종일 그 신랑의 귀가를 기다렸을 터. 그림이 예쁘다. ‘사네.’, ‘안 사네.’하며 지지고 볶는 딱따구리(내 친구의 별명이다.)네 아들 내외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그러니 새신랑이 토요일 아침마다 달콤한 늦잠에 빠져있을 때, 그 각시는 따스한 신랑의 품을 빠져나오고 싶겠는가. 덜 깬 잠에 취해서 눈을 비비며 방을 나서는 그녀가 딱하다. 그녀도 어제는 신랑 옆에서 밤늦도록 즐거웠겠지만, 토요일의 아침기상은 마음마저 스산스러울 것이다. 이럴 땐 ‘어이 내가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가 되었는고.’싶겠지. 그럴 때면 나는 꼭 얹혀사는 시어미 꼴이 되어, 며느리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구먼. 그러게 애시당초에 각각 살자 했더니만 웬 고집을 부려.

 

  토요일은 우리 부부만 아침상을 받는다. 아니, 날마다 그렇지만 출근하는 아들이 일어나는 평일과는, 며느리의 입장이 많이 다르겠다는 말씀이야. 어차피 영감을 따라 나도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니, 애꿎은 며느리를 좀 더 재워? 옳거니. 철든 시어미 노릇 좀 해 봐봐? 그러자. 평일보다는 더 일찍 일어나야 하니, 차라리 내가 영감 아침밥을 챙기자.


  “이제부터 토요일은 네 ‘놀토일’이다.”

  며느리에게 제안을 하자 무슨 말씀이냐고 펄쩍뛴다. 첫날은 몹시 어색해 하며 공연히 죄 없는 행주만 쥐어짜고 섰다. 그 다음 토요일은 어정쩡 내 뒤의 식탁에 앉아 모자라는 잠을 이기느라고 머리를 흔든다. 그리고 그 다음 토요일은 식탁에 머리를 박고는 아예……. 그리 말라 해도 안 되더니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이젠 적응이 되는 모양이다. 와중에 임신이 되어 입덧을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힘들어지고, 또……. 으하하 저도 별 수 있간디? 몸이 무거워지는 데에야.


  이래서 토요일은 내 며느리의 ‘놀토일’이 되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도 처음엔 벅찼다. 알람이 울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으나, 나도 며느리처럼 한 달이 지나자 몸에 베어든다. 푸하하. 내도 적응 안 하면 어쩔 겨. 스스로 맘먹고 자처한 일이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추위에 영감을 굶겨 내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아직은 온 식구가 영감 덕에 먹고 사니 말이다.


  그런데 아주 요상한 일이 생겼다. 나는 현관을 나서는 영감을 등 뒤에서 허리를 안아도 보고(케케케), 기분이 째지는(?) 날에는 남편의 어깨에 덥썩 업혀도(우헤헤) 본다는 말씀이야. 후후후. 사실 우리부부는 젊은 날에도 해 보지 못했던 짓(?)이다. 중매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무슨 정이 그리 많았겠는가. ‘정’이라든지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려운 시집살이에 전전긍긍하며 헤맸던 것을. 그 뒤로 사 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은 녀석들 뒷바라지에 우리는 손 한 번을 잡고 걸어 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니 이젠 몸이 괴로운 날이 많아, 이브자리도 따로 편지 오래고…….


  더 신기한 일은 마누라의 그 얄궂은 짓을, 영감이 과히 싫어하지 않더라는 말씀이야. 젊은 아이들은 현관을 나서며 뽀뽀도 한다더라만, 우리 부부에겐 이만만 해도 장죽의 발전이다. 나는 이제 살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사소한 일에서도 느낀다. 나보다 5년이나 연상인 그이이고 보면, 그이도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제는 토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방문을 나서는 며느리가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그럴라치면 영감도 이젠 적응이 될 법도 한 것을……. ‘어화~ 둥둥’은 아니더라도, 두 손 뒤로해서 한 번쯤 마누라 엉덩이 좀 받혀주고 나가면 안 되겠는교? 그러구 보니 요사이 며느님이 큰 효도를 하는구먼 ㅎ~. 영가~암! 이나마 있을 때 잘 하시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