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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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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불량주부


BY 만석 2009-11-25

불량주부              

 

  에구구~.
  "학교에 가기 전에 빨래 좀 걷어 놓구 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며늘 년의 인사에 엄니가 그렇게 대답을 하신다. 마당에 펼친 빨랫대에서 주섬주섬 빨래를 걷어 소파 위에 얹는다.
  "저 쪽에도 있는디……."
  오잉? 우리 집에 빨랫대가 두 개란 말씀이야? 과연 베란다 방에 또 하나의 빨랫대가 서 있다. 이상하다. 빨랫대가 새끼를 낳았을 리도 없고 말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영감은 아직 퇴근 전이고 큰아들만 귀가를 해 있다. 영감이 빨랫대를 들고 들어올 리가 없으니 범인(?)은 큰아들이라는 심중이 간다.
  "빨랫대 사왔니?"
  "하나 사왔어요. 자꾸만 받침 살이 빠져서……."
  빨랫대가 늙었는지 빨래를 받치는 살이 빠지기 일수였다.
  "근데, 그거 사온지 한 달은 됐는데……. 이제 보셨어요?"
  흐흐흐. 허긴. 내, 빨래와는 담을 싼 사람이니…….

  버티컬이라는 놈이 왜 자꾸만 주저앉을까? 아직 힘이 빠질 만큼은 아닌데 말이다. 저녁에 퇴근해 들어오는 영감에게 달려들며,
  "버티컬이 말을 안 들어. 손 좀 봐요."하니,
  "싫어!"
  주저도 않고 감히(?) 퉁명을 떤다. 왜일까?
  "……."
  대구할 말을 잊고 움찔하고 선다.
  "왜 싫은데?"
  내 말이 곱상할 리가 없고 영감의 눈길이 고울 리가 없다. 이쯤해서 그만 두는 게 좋겠다. 심통이 난 버티컬도 문제지만 영감은 왜 심통이 났을꼬?
  "……."
  왜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언제는 말이 많았던가? 그냥 놔두자. 바쁜 것도 아니니.

  저녁밥상을 물린 그이가 베란다의 버티컬을 접었다가 편다. 어~라? 말을 잘 듣는다.
  '조르륵', '스르륵'.
  "잘 되는데 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나도 버티컬을 접어본다. 역시 말을 잘 듣는다.
  "언젠가 내가 접으니까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게 언제 적 일이라구……."
  그러니까 말을 잘 듣게끔 진즉에 영감이 손을 보았다는 뜻이렸다.

  엄니 방의 여름 커튼은 달아 보지도 못하고 긴 여름을 그냥 지냈나 보다. 이젠 찬바람이 들이밀 테니 아예 겨울 커튼을 달아야겠다. 엄니방도 추석빔을 해야지. 맘먹고 들어서니 엄니 방에 여름커튼이 너울거린다. 언제 내가 여름 커튼을 달았을꼬. 내 건망증을 나무라며 멍하니 섰는데 엄니가 물으신다.
  "왜 그라구 섰어?"
  "아뉴~."
  겨울커튼을 들고 들어오는 뒤로 영감이 따라 들어와 섰다. 알량한 내 키를 걱정하고 커튼을 뗘 줄 생각이었다 한다.

  "난 엄니 방에 여름커튼 달아드린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네. 이 건망증 머지않아 치매 부르지 않을까?"
  시무룩하게 엄니 침대에 걸터앉는 나를, 그이가 요상한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그 커튼, 당신이 달았어?"
  "…그…럼?"

  "……."
  "누가 달았어?"
  "당신이 달았다며?"
  아닌가 보다. 그럼 건망증이 아니란 말이지? 건망증이 아니라면 치매도 걱정은 없겠다.

  영감이 달았다는 말인가? 그이가 두 손으로 내 볼을 가볍게 쥐고 흔든다.
  "치. 지가 언제 달았다구. 아, 그거 단 지가 언젠데. 여름 내 달린 것도 못 봤나?"
  여름 내 엄니 방엘 그렇게 드나들면서도 저 커튼을……. '불량주부'는 드라마 제목만이 아니다. 나도 틀림없는 불량주부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나를 일러, '일인 다역의 현모양처'라 한다. 오늘부터 나는 부끄러워하자. 어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주제에.

  엄니요~. 그래도 엄니 아들은 나 이쁘다 하요. 엄니두 이쁜 쪽으루다가 봐 주소. 엄니도 엄니 아들도 내가 시방 '삐꺽'하면 큰일 아니요?! 그랬다. 내 엄니는 이미 그 사실을 인정하신지 오래다. 늘,
  "니 손에 몇 식구가 달렸는디……."하셨겠다?
  에구~. 엄니요. 그러니 나도 좀 이뻐하소. 내도 엄니가 이쁜 적이 더 많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