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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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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딸년과 며느님


BY 만석 2009-11-19

 

  며느리를 보고 시어미가 된 지 일 년. 이젠 며느리의 이야기에도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시어머니는 왜?>를 '담쟁이 덩쿨집의 고부백서'라 하여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며느리의 이야기까지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작 며느리를 보고 나니, 과연 내가 시어머니의 이야기만큼 솔직할 수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제 고민을 버리기로 했다. 약속처럼 솔직할 것이다. 그래서 항의도 받고 격려도 받으면서 나는 모자라는 내 인격을 키울 생각이다.  맞장구를 쳐 주는 동지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ㅎㅎㅎ. 

 

딸년과 며느님


  딸아이가 이른 아침 출근 후, 귀가 할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 이다. 늘 점심 전에 돌아오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가진 딸아인데 뭔 일일꼬. 자꾸만 현관 문 쪽으로 귀가 간다. 며느님은 이제 배가 제법 불러 눕는 시간이 길어졌다. 제 방문을 닫았으니 집엔 나 혼자인 것 같이 적적하다.


  휴대폰이 운다. 잽싸게 열어보니 딸년이 보낸 문자다.

  “엄마 친구랑점심먹고들어가요 점심맛있게드샴^^”

  에구~.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게 생겼다.


  누운 며느님은, 아마 점심을 먹자는 소리보다 더 자게 하는 것이 반가울 듯.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거의 틀림이 없는 ‘내 경험론’이다. 내 스스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그녀를 돕는 일이거니. 조용히 먹고 치우자 싶다.


  점심은 말 그대로 ‘점’만 찍는 것이라 했거니. 그런데 신새대 막내 딸년은 그럴싸한 반론을 편다. 기를 쓰고 옛말이라 한다.

  “점심을 황제처럼 먹어야 저녁을 간단히 먹게 될 것이고, 그게 건강에 일조를 한다.”고. 옳거니 영악한 딸년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늘어놓을 수 있는 대로 꺼내 놓은 반찬이 진수성찬이다. 배추김치, 무김치에 갈치조림. 장조림, 깻잎 짱아치에 시금치나물. 멸치풋고추조림, 마늘 짱아치에 콩자반. 볶은 묵은지, 날 배추 속에 양념고추장. 우와~. 쓰잘데기 없는 반찬이 십 이첩 반상기를 채울 만하네. 혼자 먹을 땐 김치와 나물과 생선조림이면 그만인 것을……. 꽤나 심심한가 보다. 손도 안 갈 반찬을 늘어놓고 가짓수를 세고 앉았으니.


  두 시가 지나자 며느님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방문을 연다. 이미 챙겨 먹은 흔적이 있는지라 곤욕스러운가 보다. 안 그래도 괜찮다 이르니 모자라는 잠을 채우러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에~구~. 저도 챙겨 먹어야 며느님도, 그리고 그녀 뱃속의 내 손자도 기력이 날 터인데……. 공연한 잔소리라 할까 싶어서 말도 건네지 못하고 멀쑥하게 문 밖에 섰다가 돌아선다.


  잠시 뒤에 말쑥하게 차려입고 며느님이 방끗 웃으며 나온다. 친구를 만난다 한다. 저녁 전에 들어온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수다를 떨다 보면 쉽지 않을 걸? 이도 ‘내 경험론’이다.

정말 혼자가 되어 거실 소파에 길게 눕는다. TV도 이 시간엔 별로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핸드폰 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다섯 시다.


  “엄마 저녁도먹고들어가요. 저녁맛있게드샴^^”

  딸년의 문자다. 요런 요런. 그래. 연애나 한다면 내 봐주마. 서른넷이 적어서 연애질(?)을 하느냐고 묻겠는가. 어서 연애라도 해서 결혼이나 했음 좋겠다. 아니, 정말 누굴 만나는 걸까? 궁금해진다.


  갑자기 내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알았샤 꼭바람난고양이같으~^&^”

  문자를 전송하고 나니 금방 답이 되돌아온다.

  “냐아~옹ㅋㅋ”

  흐흐흐. 깜찍한 것.


  무료하고 심심하던 차 휴대폰이 또 운다. 왠 문자? 내 핸드폰이 오늘은 호사를 하네?!

  “어머니 오빠만나서저녁먹고들어가고싶은데요...^^” 며느님이다. 왜 아니겠어. 그러고도 싶겠지. 아~ㅁ. 그럼 어디, 그녀에게도 장난을 좀 쳐 봐봐?


  “그러렴 꼭바람난고양이같으~^^”

  문자를 보내고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다. 뭐여? 시방 시어미 문자를 씹은 겨? 허긴. 그녀의 물음에 내가 답을 한 폭이니 또 무슨 답을 기다려. 그럼 저녁은 영감과 나만 해결하면 되겠군. 영감이 좋아하는 조기나 한 마리 굽고 콩나물을 팍팍 넣어서 김칫국이나 시원하게 끓여야지.


  작은 냄비에 밥물을 조율하는데 현관문이 바람을 날리며 급히 열린다. 며느님이다. 아들도 뒤 따른다.

  “어째? 밥 먹고 들어온다더니…….”

  “엄마 문자 받고 쟤가 새파래서 빨리 들어가자고. 하하하.”

  대답을 하는 쪽은 아들이고, 아들의 그 웃음도 내겐 의미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에구~. 에구구~. 며느님도 딸년처럼,

  “냐아옹~ㅋㅋ” 한 자만 보내면 될 것을…….

  발 뻗을 자리를 보고 누우라 했던가. 재미로 친 장난에 지금 후회가 막급이다. 내가 그녀의 시어미라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는 날이 많다. 바보! 바보! 나는 참, 큰 바보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