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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이 주사 맞으면 오래 살아요?


BY 만석 2009-11-07

 

이 주사 맞으면 오래 살아요?

  

  엄니가 여름 더위에 많이 약해지셨다. 영양제를 맞으실 때가 됐는가 싶어 여러 번 권했으나, 이제는 안 맞을란다 하신다. 이제는 영양제 맞고 힘 얻을 연세 지났다는 이웃의 말이 그런가 싶어 더 권하지 않았었다. 저녁마다 하시는 따님과의 통화에서 따님이 간절히 권한 모양이다. 따님의 맘이야 그러고도 남을 만 하겠다.

  "나, 주사 하나 맞아볼까?"
  "그라셔유. 하여간. 내 말은 안 듣고 따님들 말이나 들으시지..."
  "못 알아들었샤. 맞지 말라구?"
  "내일 학교 안 가는 날이니께 낼 맞으시라구요."
  "이~. 그랴. 냘은 안 가?"
  내일 학교를 쉰다는 말에 반색을 하신다. 내친 김에 더 신이 나게 해드리자.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래 사흘은 학교 안 가요."
  "사흘씩이나?"
  입이 귀에 걸리시겠다. 생전에 소리 내어 웃으시는 걸 보지 못했으니 그만하면 대단히 족하다는 뜻일 게다.

  서둘러 학교 갈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니 엄니가 빤히 올려다보며 물으신다.
  "핵교 안 간다 그랬잖여?"
  "내일부터 안 간다구요. 매일 안 갔음 좋겠쥬?"
  내 소리가 너무 컸을까? 아니, 엄니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달랐을까? 그랬겠다. 다른 소리는 몸두 흘리고, 학교 안 간다는 말만 귀에 담으셨나 싶어 밉다.
  "이~. 난 사흘 안 간다니께... 일요일은 어차피 안 가는 거니께 오늘부터 사흘인 줄 알았제."
  아이구~. 저렇게 정신이 맑을 수가.

  다음 날.
  엄니가 단골로 다니시던 병원에서 간호사 언니를 모시고(?) 와, 같이 현관을 들어선다. 엄니가 무척 반갑게 간호사를 맞으신다. 그게 왜 그리 곱지 않게 보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엄니 며늘 년은 못 됐다. 참 못 됐다. 아, 째끔은 이해가 간다. 나도 시방 너무 지쳐서 입 안이 헐었다. 아마, 나도 한 대 맞고 싶은 마음이 발동을 해서였을까? 그런 마음이었으면 나도 맞으면 될 것을……. 영양제 한 대 못 맞을 형편은 아니구먼서두……. 아하, 될 법도 아닌 것을.
  "에미도 같이 한 대 맞자."하시는 엄니의 말까지를 원했던 모양이다. 우헤헤. 언감생시다. 엄니가 그러실 턱이 없는데도 말이다. 엄니가 그러자 한다고 누웠을 나도 아니면서 제 혼자 오지랖이 꾀나 넓은 척을 해 본다. 그래. 지금 생각하니 엄니가 그래주셨어도 좋았을 것을. 나는 다음에 며느리를 보면 그리 해야지. 아니지, 내 발로 걸어가서 맞을 수 없을 때쯤이면, 자식들이 권할 때까지는 보약이나 영양제 따위를 스스로 원하지 아니 해야겠다. 옳거니. 이건 진작부터 맘에 두고 살았으니, 그리 해야 할 텐데 잘 되려나?

  링거 병을 매달고 주사를 찌르고, 주사기를 반찬고로 고정시키는 간호사에게 엄니가 나즈막하게 물으시는 소리가 난다. 나는 주방에서 간호사를 대접할 쥬스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거 맞으믄 오래 사는감요?"
  "……......"
  엄니의 물음에 간호사가 조금은 당황을 하는 모양이다.
  "오래…사시는 건… 잠시 힘이 나시는 거예요."
  엄니도 참 딱하시다. 아니, 내 심사가 요동을 친다. 만석이가 오늘 왜 이리 못 됐을꼬?

  간호사가 여분의 알콜솜을 두고 현관을 나선 뒤, 야쿠르트를 들고 엄니 방으로 들어갔다. 에구~, 팔에 주사기까지 달리니 엄니가 중환자 같으시다. 내 친정엄니 생각이 난다. 96세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최후 모습이다. 가슴에서 '덜컥!', 뭔가 내려앉는 소리가 난다. 저러다 가시는 걸까? 아직이지?! 아직은 아니지.아니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암. 아직은 아니지.

  야쿠르트를 들고 선 나를 쳐다보며, 엄니가 쌩끗 웃으신다. 아직도 고운 우리 엄니는 웃는 모양도 고우시다.
  "입이 마르면 드세요."
  "내가 간호부한티 물었어야. '이거 맞으믄 오래 사느냐구."
  "들었슈!"
  거~참. 아니, 짠한 마음에, '아, 그러셨어요?'했으면 오죽 좋아?
  "오래 사는 주사라믄 안 맞을라구 그렸어."
  "……."
  "시방두 오래 산 건디, 더 오래 살믄 뭘 혀. 그래서 사는 동안 힘이나 나나 하구 맞는 것이제 오래 살라구 맞는 건 아니니께."
  "……."
  "참말여. 오래 산다구 했으믄 안 맞았을 겨."

  "죽구 싶은 사람이 워딨어."하고 역정을 내실 때가 더 살가웠다는 소리가 목젖을 치받는다. 옳았다.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엄니를 내려다보며 빙긋웃는다. 참 못 됐다. '알았슈.' 한 마디 했으면 좋았을 것을……. 엄니요. 그리 말 안 하셔도 되유.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간디요? 내 눈엔 엄니가 어린애 같기만 한디요. 오래 사여야지유. 적어도 지, 졸업 할 때까지만 이라도요. 만석이는 오늘도 요렇게 못 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