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65

세상 사는 이야기-아들보다 널 더 사랑해


BY 만석 2009-10-29

아들보다 널 더 사랑해

 

단풍놀이를 가자한다. 옳거니 조~ㅎ지. 날을 세며 기다려서 내일로 다가왔으니 짐을 챙겨야겠다. 영감이 뒷짐을 쥐고 들락날락거리다가 내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 "전라도도 먼데, 것두 또 장시간 배까지 타고 간다니……."  많은 사람이 하는 소리라면, ‘그러려니’하겠다마는……. 그런데 왜 짐 싸는 마누라의 눈치는 살피는고? 아마 그만 두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다. 보내고 걱정하느니 말리는 게 나은가도 싶은가 보다. 이미 남편 말을 들을 마누라가 아니게 들떠 있는 내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눈치다. 말리고 냉가슴 앓는 마누라를 어찌 감당하랴 싶기도 하겠지. 

문을 똑똑. 며느리다. 아들과 산책을 나갔던 그녀가 뭔가를 두 손으로 내밀며 예쁘게 웃고 섰다. 받아서 들여다보니 먹을거리다. 빵도 보이고 음료수도 들어 있고 초코릿도 보이고……. 방금 씻은 듯 물기를 먹은 방울 도마도도 보인다. 에구구구~. 아니, 이 이쁜 며느리가 시방 시어미 소풍가는 줄 아는가베. "어머님 무거우실까봐 많이 못 샀어요. 땀 날 때 드시라고…….”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쩐다? 우리 팀은 스무 명이다. 이걸 들고 가서 나 혼자 먹어? 옆의 친구 분과 같이 먹으라더니 먹을거리가 모두 쌍쌍이다. 앞뒤에 앉은 친구들은 어쩐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성의가 가상하니 안 들고 갈 수도 없고 천상 몰래나 먹어야겠다.  

이 밤이 어찌 이리 지루한고. 어서 잠이 들어야 내일 이른 시간에 일어날 것인데……. 지난번에는 만날 장소의 거리를 잘 몰라서 된통 지각을 했으니, 내일은 좀 일찍 나서야 하는데 말이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다가 며느리가 건넨 봉투에 시선이 머문다. 며느리의 뜻이 생각할수록 가상하다. 나는 대수술을 받은 뒤로는 소식(小食)이 필수여서, 배가 고픈 것을 참지 못한다. 갑자기 전신의 힘이 빠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깐 정신이 아물거리기도 한다. 얼른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만 주면 되는 일이어서 뭐, 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늘 봐 왔던 며느리가, 그런 일이 생기면 얼른 먹으라는 깊은 뜻이겠다. 고맙지. 아~암. 고맙지. 그게 다 사랑인 것을, 미련한 시어미지만 알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씀이야.

그래도 두어 시간은 눈을 붙였나 보다. 알람이 운다. 오~잉? 내 전화기가 아니라 영감의 전화가? 아하~ㅇ. 남편이 날 깨우려고 입력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 전화기는 왜 벙어린 겨? 들여다보니 에구구~. 오후시간으로 입력이 돼 있다. 내가 좀 이렇게 모자라는 구석이 있다. 분첩을 들어 얼굴을 두드리고 그리며(그려봤자지만) 부산을 떠는 동안, 선잠을 깬 영감이 두 눈을 껌뻑이며 내 등 뒤를 따라 걱정스러운 시선을 돌린다. 아침을 해 주겠다며 국거리를 사들고 온 며느리는 세상도 모르고 자는 모양이다. 배가 제법 불러서 아침을 얻어먹겠다고 할 처지도 아니지만, 워낙 이른 시각이라 아마 버스 속에서나 휴게소에서 먹게 될 것 같아서 일어나지도 말라고 어제 일러두었더니 홍시와 야쿠르트를 챙겨놨네. 예쁜 건 예쁜 짓만 해요. 에구~. 어느 새 시간이 이리 흘렀는고. 잽싸게 가방을 들쳐 업고 영감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을 나선다.

맞은 편 버스정유장에 섰는데 건너편에서 뭔가 들고 흔드는 남편이 보인다. 분명 내 영감이렸다. 새벽시간이라 차량이 적기는 하다만, 급히 무단횡단을 해서 내게로 건너온다. 에구 에구~! 일 나지. 덕분에 나는 차를 한 대 놓쳤다. 영감의 손엔 내 겨울 용 두툼한 점퍼가 들려 있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센데…….” 벌써 그이는 받아 입기 편한 자세로 점퍼의 깃을 두 손으로 펴들고 섰다. 이런, 이런. 속엔 얇은 내복도 이미 입었고 쉐터도 껴입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복이나 쉐터를 입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그 마음이 가상하여(?) 도저히 뿌리치지를 못하겠다. 얇은 점퍼 위에 다시 두꺼운 점퍼를 입으니 가관이겠다. 마침 버스가 와서 올라탔다. 물론, "고마워~.”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날씨가 어제와 달리 무척 화창한 봄날 같다. 전세 버스가 아니었으면 그 두꺼운 점퍼가 큰 짐이 될 뻔했다. 내복과 쉐타만으로도 내 몸은 땀이 날 지경이다. 짐칸에 올려놓은 점퍼를 쳐다보며 영감의 따뜻한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 내 여행은 만족이다. 다행히 걱정했던 일로 땀을 흘리는 일은 없었다. 며느리가 준비한 개수가 많은 빵과 방울도마토가, 마음씨 넓은 총무에 의해서 찬조품으로 등록이 된 글을 읽으며 오늘 씁쓸하게나마 웃어본다. 영감이야 살 섞어 산 시간이 사십 여년이니 그렇다 치고, 며느리의 그 잔잔한 정이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나도 그녀만큼 아니, 갑절로 더 많이 그녀를 사랑한다. 아가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변함없이 지금처럼만 사랑하고 살자. 난 말이다. 아들보다 널 더 사랑해~!

(글을 올리니 줄 바꾸기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여 대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