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남편이 늦은 퇴근을 해 왔다.
지금 시각이 11시. 다른 날 같으면 벌써 잠이 들었을 시간이다.
“이거 너무 길어서 바보 같아. 좀 줄일 수 없나?”
금방 벗은 바지를 들고 하는 말이다. 바느질 잘하는 마누라를 둔 덕에 쉽게 하는 소리다.
“내일 고칠게요. 다른 바지 입고 가요.”
내 말을 잘 듣는 그이인데 오늘은 좀 유별나다. 바지를 든 채 서있다.
“이거 입고 갔으면 좋겠는데…….”
이런, 이런. 아무리 그렇기로 이 밤에? 더군다나 ‘멋’하고는 거리가 먼 이 남자가 말이야.
“왜 꼭 이거예요? 이 바지 멋지다는 여자나 만나러 가요?”
“…….”
아니라고 펄쩍 뛰어야 하는데 머뭇머뭇 하는 폼이 심상치 않다. 자리에 누었다가 벌떡 일어나 정색을 하고 묻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해 주지. 누굴 만나? 여자야? 여자 만나는 거면 해 주지.”
이제 생각하니 조금은 취재하는 말투였는지도 모른다. 씨이~ㄱ 웃으며 그이가 말한다.
“어떻게 알았어?”
에구 에구우~. 아니, 단 한 방에 넘어가는 영감도 그렇지만, 아무 반응이 일지 않는 나도 우습다.
거실로 나와 영감의 바지 단을 손질하며 피식 웃는다. 나는 좀 더 조근조근 물어야 했고, 그이도 천장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펄쩍 뛰었어야 하질 않는가. 나이 탓이겠다.
안방에선 벌써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내일 만나는 여자는 누구일까? 정말 여자를 만나는 건 맞는 겨? 그리 쉽게 이실직고를 할 수 있는 겨? 날 놀리려고 한 소린 겨? 으하하. 푸하하. 나도 아직 여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