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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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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주세요^^


BY 만석 2016-04-14

모 방송국의 어느 프로에 글을 올렸습니다. 당첨이 되어서 푸짐한 선물을 받
게 됐습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읽어보시고
축하해 주세요^^

 

에미 보아라

 

연주야.

오늘은 너를 이렇게 부르고 싶구나. ‘며느리가 딸일 수는 없다.’고들 하더라마는, 이 편지를 쓰는 동안만이라도, 네가 내 딸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이 편지를 쓰는 동안은 네 엄마가 되어 있으마.

 

연주야.

날씨가 추운 탓도 있지만 난 언제나 너를 보면, 네가 몹시 추워만 보이는구나. 웅크린 가슴이며 높이 솟은 어깨도 그렇지만, 가냘픈 몸매에서 나오는 선입견일까? 그래서 네가 입고오는 옷이 따뜻한가를 살피게 되는데, 너는 공연한 잔소리로 들을까봐 걱정이기도 하다. 넉넉하지 못한 우리 집에 시집을 와서 남들처럼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특별히 지난 1년 동안은 오빠의 실직으로 마음고생이 더 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괜찮아요. 본인의 마음고생이 더 심할 텐데요.”하곤 했지. 또 언젠가는,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예요.”했을 때, 나는 차라리 부끄러운 시어미였다. 공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네가 오빠라고 부르는 내 아들이 난 참 미웠으니까 말이지.

 

엎친 데 덮친다고 네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사무실을 접고 나니, 너희에게 걱정거리를 더 얹어준 꼴이 되어 마음이 더 무겁다. 어려운 네 살림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나 네 고운 마음을 하나님이 아셨을까. 오빠가 다시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되어서 착한 네 복이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인데 잘 견뎌줘서 고맙다.

 

연주야,

이젠 나도 암수술 7년차가 되었구다. 이젠 우리 살림은 내가 맡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주말에 보람이를 데리고 놀러오는 건 좋은데, 반찬을 해서 들고 오는 것은 그만해라. 나도 이젠 많이 움직여야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하더구나. 아버지도 이젠 사고방식이 많이 변하셔서 주방일도 제법 잘 도와주신다. 청소는 물론이고 세탁기도 잘 돌려주신단다. 옛날 같지 않으시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교대로 병원 출입을 할 때마다, 내려와서 밥을 지어놓는 것도 이젠 그만해라. 병원 다녀와서 두어 시간 쉬고 나면, 나도 식사 준비하는 거 문제가 없다. 혹시 힘들면 내가 SOS로 타전하마. 그동안 애를 많이 썼으니 이제는 그만 편하게 살아라. 자그만치 7년이 아니더냐. 그래서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한 내 며느님(?)이 아니신가 ㅎㅎㅎ.

 

네 시아버님이 이제 보람이도 크고 했으니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나면, 일박이라도 가까운 유원지로 니네 세 식구 다녀오게 하자고 하신다. 물론 경비는 아버님이 대신댄다. 내 딸이 명절마다 친정에 오면 네가 얼마나 부러워했더냐. 네게 명절에 갈 친정이 없다는 게 네 시아버님도 안쓰러셨던가 보더라. 사실은 내 딸이 친정이라고 들어서면, 나도 네게 눈치가 보였다. 네 아버님이 원래 말이 없으셔서 그렇지 널 많이 사랑하신단다.

우리 며느리가 양반이지.” 하고 늘 칭찬하신다.

 

연주야.

조금만 더 참고 견뎌라. 좋은 일이 있을 게다. 언제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만, 너는 우리 집안의 맏며느리가 아니냐. 맏이는 차자(次子)나 딸과는 다른 게다. 요새 시대에 맞지 않은 사고라고 하겠지만, 네 시아버지의 장자(長子)사랑은 유별나시다는 거, 다른 형제들이 알면 반기를 들 일이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느냐.

 

내가 사 남매를 두었으나 모두 미국으로 일본으로 송도로 내 곁을 떠나서 멀리 살지만, 너희는 장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내 가까이에 머물지 않느냐.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 했거니 사실이 그렇더구나. 내가 아프다 하면 누가 먼저 뛰어오겠느냐.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도 싫다는 요즘 세상에 우리 큰아들내외는 우리를 가까이에서 지키고 있으니, 좀 특별한 사랑을 받아도 마땅하니라.

 

너희들 마음이 헤이해질라 싶어서 꼭 찝어서 말하지는 않겠다만, 우리 내외는 마음을 그리 갖고 있다. 너무 애걸복걸하며 살지 말아라.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오빠도 사십 줄이 넘은 지 오래이고 너도 내 집안을 맡을만한 연륜이 됐으니, 우리도 이젠 머리를 비우고 주위를 좀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 네 어깨가 좀 더 무거워지겠다마는, 이제처럼만 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연주야.

내 아들 잘 부탁한다. 부모의 눈에는 환갑의 자식도 어린애만 같단다. 불뚝 성질이 좀 있기는 해도 너를 끔찍하게 사랑하지 않더냐. 내 손주도 멋지게 키워다오. 그렇지 않아도 애비랑 보람이를 저보다 먼저 생각하는 너라는 것을 잘 안다마는, ‘사내와 외양간의 황소는 여편네 손에 달렸다.’고 네 시할머님이 늘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 집안에 황소는 없으니 내 아들과 보림이 잘 부탁한다.

 

그리고 보람이 고모들이랑 보람이 삼촌도 좀 챙겨다오. 가까운 장래에 걔들이 내가 없는 본가에 오게 되면, 네가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너도 경험하지 않았느냐. 친정엄마가 없는 친정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외아드님인 네 시아버님과 결혼을 해서 네 남편을 낳고 보니, 삼촌도 없고 사촌도 없더구나. 그래서 서로 힘이 되어 줄 형제가 있어야겠기에 하나만 낳아서 잘기르자던 그 시대에, 사 남매를 두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 시할머니는 내게 안 하시던 말씀이다만, 나는 네게 할 말이 있다. 너도 좀 챙겨라. 네가 건강해야 가정을 잘 다스리지. 네가 병이 나면 나도 겁이 나더라. 난 이제 내 아들보다 내 며느님(?)을 더 믿고 의지한다. 그러니 네가 건강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아니겠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 며느리가 더 잘 입고, 더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모양도 좀 내고 그래라. ‘지나친 알뜰은 혹 나를 격하시키기도 한단다.

 

내가 사랑하는 연주야.

이제 편지는 끝을 내겠다마는 내가 네 엄마인 것은 끝내고 싶지가 않구나. 영원히 내 딸이 되어다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너무도 많지 않느냐. 내 며느리이기에, 내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이기에, 내 손주의 어미이기에, 내 집안을 다스릴 안주인이기에 사랑하지 아니할 수가 없지 않느냐. 사랑한다 영원히. 네가 나를 사랑해 준 것 같이 나도 너를 아낌없이 사랑할란다. 세상이 끝나도 내 맘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 추운 겨울도 다 가고 이제 봄이 오지 않느냐. 네게도 밝은 봄이었으면 참 좋겠다. 늘 사랑한다.

 

보림아~!

할미가 대단하잖여~?

상품이 오면 나눠줄 테니께 바구니 들고 와라이~.

쌀도 주고 김셋트도 주고 홍제셋트도 주고 커피셋트도 준다니께

전화하믄 언능 와서 맘에 드는 넘 골라가거라이~.

              축하해 주세요^^                     축하해 주세요^^

이젠 내 손이 가지 않아도 거뜬하게 젯상을 차려놓는 며느님이                 보림이를 챙기는 어미는 보기에도

대견합니다(보림이 증조모님의 제사 날.)                                                       대견합니다.

며느님도 수고했으니 절을 올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