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다 니네 식구여
아침 9시 40분경.
“딩동~♪ 딩동~♪” 인터폰이 운다. 아니 울린다. 아니 노래를 한다. 주방에 있는 나를 대신해서 영감이 나선다. 대문을 열고 두어 마디 주고받는 것 같더니 영감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선다.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며느님이 김밥을 말아서 공수를 한 모양이다. 옳거니. 오늘 보림이가 원(院)에서 가족소풍을 간다던 토요일이구먼.
며칠 전 주말.
세 식구가 왔었다. 아들 내외는 주방의 식탁에서 언제나처럼 커피잔을 기울이고, 보림이는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만화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보림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신나게 말했다.
“할머니. 세 밤만 자면 우리 가족소풍 가요.” 아이의 눈이 유난히 빛을 낸다.
“그래?! 보림인 좋겠다~. 할머니도 같이 가고 싶은데. 따라가면 안 되나?”
허허. 공연한 소릴 했나? 아이의 얼굴에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걸 어떻게 처신하나?’하는 걱정을 하는 게 분명하다. 잠깐 눈동자의 깊이가 깊다 싶더니 벌떡 일어나 주방의 제 어미에게로 달려간다. 두 손을 펴서 입 주위를 막고는 에미의 귀에 바짝 대고 속삭인다. 아마 소풍에 따라가고 싶다는 할미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같다.
곧 방으로 들어온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요. 세 명만 갈 수 있어서 우리 식구만 가야 한대요.”
나도 참 짓궂다.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할아버지랑 할미도 니네 식구여. 그러니까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아빠 차로 선생님 몰래 뒤따라가면 안 될까?”
아이의 반응이 없다. 돌아보니 아이의 눈에 눈물이 흔건하다. 감당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알았어. 알았어.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안 따라갈게. 집에 있을게.”
“아~앙 앙 앙 앙.”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렁주렁 열렸다가 쏟아진다.
“이런. 할매가 보림일 울렸어? 할매가 참 못 됐네.”
아이를 달래느라고 영감은 보림일 업고 둥둥~!을 한참을 애쓴다. 그렇게 그 저녁에 웃고 지냈는데, 오늘이 바로 그 ‘가족소풍을 가는 날’이로구먼. 영감에 묻는다.
“보림이도 왔었수?”
“오기는 했나본데 대문에 안 들어오려고 하나봐. 그래서 ‘됐다’고 그냥 가라고 했어.”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돈이라고 한 푼 주지 그랬수.”
“내가 따라 갈까봐 에미 뒤에 숨어서 날 쳐다보지도 않아 하하하.”
“그러니까 더 줬어야지요. 참 재밋대가리도 없는 할배여.”
그렇게 생각이 안 돌아가나? 배춧잎 하나면 보림이의 오늘 소풍이 얼마나 행복할까?
누가 그랬댜? 보림이 할배가 머리 좋다고.
보림아~!
근디, 보림이 생각에도 할배 할매는 니네 식구가 아닌가 벼.
우리도 니네 식구로 살고 잪다이~. 잘 놀고 와라~.
아무렇든 세상 끝나는 날까지 할배와 할배는 보림일 사랑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한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는 보림이가 하자는대로 하려고 애는 쓴다.
일어서기는 했는데 뭘 어찌하는 것인지를 몰라 아마 잘하면 춤도 나오게 생겼다 ㅋ~.
신이난 보림이의 비위를 맞춰주지 못하고 서 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