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날이 머지않았으니
결혼 5년차를 넘어선 내 며느님이 이젠 제법 시집살이에 적응이 되는 눈치다. 들어서면 주방으로 들어가서 쌓아놓은 설거지에 매달린다. 며느님이 온다 하여 일부러 쌓아놓은 건 아니다. 주부가 살림만 하면 그럴 리가 없겠으나, 가게라고 열어놓았으니 문을 닫고 올라오면 마음이 바빠서 설거지를 미루기가 일쑤다. ‘설거지는 저녁 하면서 밥 앉혀놓고 하지.’하는 계산이다.
그 사이에 며느님이 기별도 없이 오면 설거지는 며느님 몫이 되고 만다. 며느님이 온다는 연락이 오면 후다닥 이층으로 오른다. 설거지를 하고 대충이라도 걸레질을 한다. 누가 어질러놓는 사람이 없으니 뭐, 크게 치울 건 없다. 이젠 꾀가 나서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이면 걸레질은 일주일에 한 번만… ㅋㅋㅋ. 며느님이 알면 큰일날 소리지.
주일마다 아들내외가 보림이를 데리고 오는 게 이젠 관례다. 처음엔 나도 신경이 쓰였으나 이젠 나도 적응이 된다. 아니, 기다려진다 하면 내 며느님이 속 보인다 하려나? 들어서면 두 손 모으고 TV나 폰만 들여다보더니 어느 때부터인지 저녁밥을 하고 깨끗하게 뒤처리를 하고 나선다. 행주도 삶아 널고 낼 아침밥 지을 쌀도 닦아놓고 말이지. 그러니 기다려지지 ㅎㅎㅎ.
현관문을 나서던 며느님이 돌아서서 가방을 뒤진다.
“오빠. 이거. 잊을 뻔했네.”
“사온 사람이 드리지 뭘….”
“….” 영문을 모르는 난 멀뚱하게 섰을 수밖에.
“어머니. 이거 주방에서 쓰세요.”
주방에서 쓰는 빨간 고무장갑이다. 끝동을 곱게 달은 고무장갑.
“고무장갑 있잖아.”
“이건 속이 아주 따뜻하더라구요.”
그 뒤로 오기만 하면 묻는다.
“왜 그 고무장갑 안 쓰세요.”
“쓰는 거 구멍이 나면 쓰지. 너나 써라.”
제가 산 것이라고 옳다구나 쓸 며느님은 아니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던 어느 날.
“어머니. 고무장갑에 구멍이 났어요. 이젠 그거 쓰세요.”
구멍이 난 것이 반갑다는 듯 말한다. 구멍이 났다면서도 새 것을 쓰지 않는다. 왜냐 물으니
“어떻게 제가 먼저 써요.”한다. 누가 먼저 쓰는 게 무슨 대수라고.
고무장갑의 속에 면 소제 장갑이 제물로 붙어있다. 찬 물을 써도 손이 시리지 않다. 제 것을 사면서 이 시어미 생각을 했다는 게 신통하다. 거금을 들이지는 않았으리라마는 그 마음이 예쁘다. 참 예쁘다. 내 몸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그날까지, 내 며느님의 그 예쁜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욕심이려나? 내 그날이 머지않았으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