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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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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31회) 호랑이도 못 잡아먹을 질긴 년


BY 만석 2009-09-07

 

1부 제31회


호랑이도 못 잡아먹을 질긴 년

  "엄니요. 진지 잡숴요."
  "시방은 안 먹어. 생각 없어."
  "또! 또! 또! 시방 안 자시믄 원제 또 상 차리게 할라요?"
  이 못 된 며늘 년 입 놀리는 거 좀 보소. 제 손주 딸년 나무라듯 소리를 하는구먼.
  "아이구~. 엄니는 나를 할머니보다 더 성가시게 하는디?!"
  침대에 누운 엄니에게 악을 쓰듯 내지르는 소리 하고는……. 쯧쯧쯧.
  "니가 할머니를 보기나 했냐?"
  엄니가 기운이 딸려서 나오는 너털웃음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를 못하시나 보다. 허긴. 난, 결혼을 한 뒤로 엄니가 소리를 내서 웃으시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
  "엄니가 말했으니까 알지요. 그래서 엄니는 제 때에 진지 드시고, 절대로 며느리 성가시게 하지 않으신다더니……."
  "아까 빵 먹었잖어~."
  "빵은 간식이지. 아, 밥을 자셔야제!"
  오지랖이 넓어서 제법 효부인 척을 해 본다. 저리 입맛이 없을 때에는, 상금하고 매콤한 국물이 제격이렸다.

  열무김치 국물에 참기름을 똑 똑 떨어뜨리고, 설탕을 뿌린다. 누구나 늙으면 맛에 둔감해진다지?!. 그래서일까? 엄니는 지독하게도 높은 당도의 단맛을 좋아하시니께. 밥을 조금만 비비자. 그래도 한 숟가락을 남기는 법은 없으시니, 한 수저만 더 넣자. 임금님 수랏상도 부엌데기가 먼저 맛을 본다지? 캬~. 매콤하고 달착지근 이 맛.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이 맛 좀 보소. 엄니가 이 맛을 놓치지 않으셔야 할 것인디. 엄니를 드리고 나도 좀 비벼 먹어야지. 이럴 땐 상도 필요 없지. 벌써 엄니와 내 사이는 격식 같은 번거로운 일은 버린 지 오래로구먼. 쟁반에 비벼놓은 밥을 얹어 수저를 얹고.

  "엄니요. 맛이 기가 막히는디?"
  아직 엄니 방 문지방도 넘지 않고는 소리를 지른다. 꼼짝 않고 누우신 엄니 입술에 한 수저 작게 떠서 얹으며,
  "봐요. 얼마나 맛이 있나."
  흐흐흐. 엄니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밥을 빨아드리신다.
  "안 먹어야 하는디……."
  "그래야지 며늘년이 겁낸다구요? 이젠 겁 낼 시기 지났제. 굶으믄 엄니만 손해여."
  두 손을 마주 잡아 일으키니, 과히 싫지는 않은 기분이신가 보네. 엷은 미소를 지으신다.

  하하 소리 내어 웃는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련만.
  "나, 엄니 손수건 사러 가요."
  엄니 무릎 위에 쟁반을 얹고 방을 나간다.

  "다 자셨슈?"

  시장을 다녀오며 거실에서부터 소릴 지른다. 안 자셨으면 때리기라도 할 모양.
  "성의를 봐서 안 먹을 수 있간디?"
  "그려서 버릇이 되셨다니께. '자시라'구, '자시라'구 하기를 바라시구……."
  "그려~."
  "인자는 안 그럴 라요. 이제부터는 엄니가 안 자신다믄 내나 먹어야제."
  엄니는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도 없이 환하게 웃으신다. 며늘 년도 나이 육십이 한참 지나고 나니, 억새풀만큼이나 질겨졌다. 아이들 다루듯 시엄니도 갖고 놀고(죄송), 말 안 들으면 때릴 듯이 악다구니를 떨고…….

  교회에 나가서는 제법 효부인양 두 손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엄니를 사랑하는 맘 가지게 하소서."
  "엄니를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면서 아니, 엄니를 마주하면서부터 이리 못 되게 구니……. 그래도 엄니는 곧잘 말씀하신다.
  "니가 사납게 굴믄 내가 같이 못 살았제."
  엄니요.
  며늘년도 귀밑에 흰머리 돋고 정수리 머리칼이 반백 되면, 질겨서 호랑이도 못 잡아먹는다 하지 않소.
사실은 내도 이제 차려 주는 밥 좀 얻어먹고 싶은 나인데……. 내 말 좀 잘 들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