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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1부 제28회) 마음이 짠한 날


BY 만석 2009-08-30

 

1부 제28회

마음이 짜~안 한 날

  큰일을 치르느라고 엄니께 소홀했는가. 엄니가 병이 나셨다. 더위를 잡수신 걸까? 이틀이 들떠서 진지를 자시지 못 하겠다 하신다. 감자를 갈아 넣어 죽을 끓여드렸더니 제법 맛있게 잡수신다. 밥이 보약이라더니 두어 끼니 잘 자시고는 힘을 얻으신다. 저녁에는 제법 말소리도 또렷하시다.
  "고맙다. 니 덕에 일어났다."
  "뭔 그런 인사를 다 하신다요."
  "허긴, 니들은 나한티 잘 혀야 혀."
  "와요?"
  이런. 쓰잘 데 없는 소리 좀 들어 보소.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거늘. 왜? 라고 묻는 꼬라지 하고는, 쯧쯧쯧. 당연한 일이긴 하나, 엄니의 심지를 읽고 싶어서다.

  "내가 니들한티 돈을 월매를 줬어야?"
  그랬다. 돈을 많이 주시긴 했다. 영감이 병이 났을 때, 영감이 사고를 당했을 때, 영감이IMF로 어려울 때 엄니는 원하지 않아도 선뜻,
  "돈이 필요하제~?"하시며, 가지고 계신 '돈'을 통장 채, 도장 채, 내 놓으셨었다. 고마운 일이다. 감사한 일이지.
  "그러니께 니들은 내한티 잘 해야 혀."
  "지가 뭐 잘 못한 거 있슈?"
  "잘 혔어. 이제껏 잘 혔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째 엄니의 말이 껄끄럽다. 그러려니 해도 좋으련만, 그런 말을 오늘 처음 듣는 것도 아니련만, 여~엉 그냥 넘기기에는 고약스럽다.
  "엄니요. 엄니가 돈은 많이 주셨는데, 인정은 안 주셨지요."
  "뭐시여?! 뭐라는 소리여?!"
  킥킥킥. 당신에게 해로운 말은 잘도 들으신다.
  "엄니는 아들한테는 잘 하셨는데, 며느리한테는 박절하셨다는 말씀이어요."
  "내가 뭘?!"
  "엄니가 며느리 아플 때, 병원에 있을 때 돈 써 보셨슈?"
  "원제?"
  "언제든지요."
  "……."
  그렇구나 싶으신가 보다. 그만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지는 엄니한테 잘해야쥬? 잘 해야 하는 거지유?"
  "……."
  여기까지도 좋았을 것을,
  "엄니 영양제 사다 드시는 것두 그려유."
  "……."
  "구십 바라보는 엄니는 눈 영양제다 뼈 영양제다 사오라 해서 드시면서, 빈 말이라두 '너두 같이 먹자.' 한 번 해 보셨슈?"
"나는 눈이 망가지서 앞을 못 보므는, 니가 고생할까봐 그러제. 넘어져서 뼈라두 부러지믄 니가 고생 아녀?"
  그렇지. 엄니가 병 얻으시면 며느리가 고생을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도 영 듣기가 거북하다.

  "그러니께. 환갑 지난 며느리 눈두 안 보이믄 엄니가 더 큰일이지유. 환갑 넘은 며느리 뼈  가 부러지믄 엄니가 더 걱정 아녀유?"
  "내 돈으루다가 먹는 것두 말았어야 했구먼. 지들이 사다가두 줄 것인디.……."
  "내 돈으루다가 사다 드린다믄 무슨 문제겄슈. 엄니가 '너두 같이 먹자.'하신다구 지가 넙적 받아 사다가 먹지는 않쥬. 그래두 엄니는 빈말이라두 '같이 먹자.' 하셨어야쥬."
  엄니 심사가 편안치 않으신 게 역력하다.
  "엄니는 며느리를 너무 바보로 보셨슈. 그런 것두, 아무 것두 모르는 바보로유."
  "누가 니를 바보루 봐야? 어이구야~. 아니, 니를?"
  "환갑 지난지 원젠데……. 당연히 눈이 나빠지는 거 엄니가 몰라유? 이 나이에 뼈가 부실해지는 거 엄니가 몰라유? 심부름만 시키구 엄니만 영양제 잡수시는 거, 지를 무시하신 거쥬. 내가 그러냥하게 말하니께 지우 한다는 소리가, '그라믄 애비도 눈 영양제 하나 사다 줘라.'하시니, 더 울화가 안 나유? '나는유?'소리가 모가지까지 나오는데 참았슈."

  "원젠가는 명절에 시골 내려가니께, 아이들 양말이랑 애비 런닝을 사다 놨다가 주시드만. 아니, 거기다가 며느리 것두 양말 하나 더 넣었음 월매나 좋았을꼬. 며느리 것만 쏘~옥 빼놓을 게 뭐라요."
  "벌써 그런 소릴 들으니 큰일 났다."
  "진작에 들으셨을 말인디, 내가 아꼈다가 이제 하는구먼유."
  "큰일났네. 나, 이 담에 구박 받겠구나."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런 대화를 자근자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엄니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관계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이쯤에서는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
  "히히히. 구박 받으실라요? 구박 받을 일 하셨으믄 구박 받으셔야제."
  "근디, 왜 나한테 잘 하냐?"
  옳거니. 이젠 됐다. 별일은 없을 것같다.
  "내가 잘 하기는 뭘 잘해요? "
  "그만하믄 잘 혔어."
  엄니는 역시 현명하시다. 보통의 시어머님은 이렇게 대처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지는유~. 잘하지두 못하구유. 그대신 못 되게 굴지는 않아유."
  엄니 얼굴이 금새 밝아진다.
  "어제 교회 가서 내 기도 했어?"
  "언제나 엄니 기도가 첫째쥬."
  "이~. 고맙다."
엄니도 여기까지만 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워쩌. 이렇거나 저렇거나 이젠 이 물건이 다 니 짐인 걸. 내가 잘 못한 거 다 이자부려라. 무식하구 배운 거 없어서 그랬다구 생각혀. 섭섭했던 것두 이자부리고……. 니는 하나님 믿으러 교회 다니는 사람 아녀? 하나님이 웬수도 사랑하라 했다제?"
  어라? 엄니요. 그게 아니지. 그렇게 나오시면 난, 정말로 나쁜 며느리가 된다 아니요. 마음이 아니, 가슴이 짠하다. 이구~, 에구~. 엄니는 언제나 나보다 한 수 위시다.
  세상 젊은 며느리들아~.
  나도 늙고 시어머니 더 늙으시면, 그 시어머니도 이렇게 불쌍해 보인다우. 어려운 일 있어도 좀 참으소. 시방은 지는 것 같아도 곧 그대들이 이기는 날이 올 거요. 그때는 마음이 짜~안하도록 시엄니가 불쌍해 보인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