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6회
엄니, 속 보이요
아니, 지가 오늘 무신 기분으루다가 엄니랑 너스레를 떨겄슈. 내가 무신 삐에로유? 아님 내가 엄니 기쁨조유. 지는, '지금쯤 우리 동우회 식구들 넘 재밌겄다.'는 생각밖에는 없는디……. 우찌 그리 엄니 생각만 하시오. 며느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외다. 아시겄슈?! 엄니 늘 하시는 말 대로, 오늘은 내가 '사나운 며느리가 아니어서' 원망시럽구먼유. 이럴 땐 내도 '사나운 며느리'였음 좋겄슈. 그래야 엄니한테 신경질두 좀 부리구 소리두 좀 지르구……. 그래야 속이 좀 시원하지 않겄슈!"
그라고 가만히나 계시믄 안 좋겄슈. 하루 죙일 내 앞을 아장거림시로,
"가라니께 안 가고……."
또 잠시 있다가서는,
"가라니께 지가 안 가구서는……."
오늘, 누구 속 긁기루 작심하셨슈?
늘,
"내 발로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야 혀. 나처럼 되믄 다니구 싶어두 맬짱 헛 거여." 하시구는, 정작 며느리가 좀 나갈라 치믄, 벨벨 꼬는 건 뭐래요? 언제부텀,
"20 날 모임있어서 나간다."니께,
"그려. 갔다와~."하셔서,
"옳거니. 요번 정모는 쉽게 대문을 나설 수 있겄다."했는디……. 그려서 맘만 들뜨구로 해 놓고는 정작 내일 모임에 간다니께 졸졸 따라다니면서,
"나는 이제 혀 놓은 밥두 챙겨묵지 못혀~."
"내 손으루다가 밥 챙겨묵기는 귀찮아서……."하시는 건 뭐라요?
차라리 큰소리로,
"날 혼자 두고 워딜 가~!"하시는 편이 훨씬 인간답겄슈.
"가라구 혔는디 니가 안 갔잖여~"하는 식으루다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시는 엄니의 속이 너무 훤하게 보인다는 말씀이어라. 이번이 한 번은 아니지만 제발 앞으루는 그리 마시라요. 며느리두 환갑이 지났슈. 새 색씨 때처럼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구먼유.
엄니. 엄니 며느리를 젊은 날의 며느리루만 보시믄 안 되지라. 이래두 며느리는 순종해야 허구, 저래두 며느리는 곱상을 떨어야 할 나이는 지났쥬. 세월의 질긴 껍데기가 겹겹이 나를 에워 쌓았슈. 그래서 이제는 그 질긴 껍데기가 녹록지가 않다는 말씀이여라. 그라고 양심 좀 있으소. 그래서 모임에 못 가고 심통이 난 것 같으믄 눈치껏 좀 미안한 맘을 가지셔야지, 좋아서 노래 나오게 생긴 엄니 꼴(이건 죄송), 참말로 미웠슈.
아구구~. 만석이는 오늘도 자판에서만 이렇게 소리 없는 함성을 질러본다. 휴~. 오늘따라 와 이리 덥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