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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제25회) 아이들한테 배운다


BY 만석 2009-08-27

 

1부 제25회


아이들한테 배운다

 "얘들아~. 노래자랑 하는디? 어여 와 봐."
  TV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시작했다고, 엄니가 안방에 있는 내 손녀딸년들을 부르신다. 큰딸 내외가 지금 외유 중이어서, 두 아이를 내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니의 증손녀인 셈이다. 아이들이 쪼르르 나와 서서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 시원찮은 표정이다. 허긴. 지금 컴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중인데…….

  아이들이 난감할 것 같아서 엄니에게 다가서려는데, 아이들이 방 안으로 들어간다.
  "엄니요. 아이들이 노래자랑이 무신 재미가 있것슈. 냅 둬유. 지그들 재미있는 거 하라구."
  어서 나와서 TV를 보라고 다시 재촉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만석이는 입을 내밀고 볼멘소리를 지른다.
  "재미있는디……."
  엄니는 별 일도 다 있다는 듯 시무룩해지신다. 그래. 주일이면 언제나 기다리시던 노래자랑이 아니던가. 엄니 기분전환으로 보륨이나 좀 높혀 드리자. 아직도 옆방에서는 큰 녀석이 초저녁이지만, 이제는 일어나도 좋을 것 같아서 맘껏 보륨을 높힌다.

  잠시 뒤 안방에서 두 손녀딸년들이 다시 나온다. 내 엄니 앞에 가랑이를 벌리고 마주앉아, 손에 들고 나온 공기 돌을 각각 제 앞에 뿌린다.
  "할머니. 심심하세요?"
  아이들이 제 증조모의 시원찮은 청력을 아는지라 목청을 높힌다.
"우리 공기하는 거 구경하세요. 여우랑 둘이서 내기 공기하거든요."
  아이들은 제 증조모가 심심 해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 그래서 두 딸년들이 모의를 하고는, 컴을 끄고 공기 돌을 각기 들고 나온 것이렸다.

  아이들은 꺾기를 할 때마다 증조모에게 소리친다.
  "증조할머니. 이제 꺾기 할 거거든요? 잘 보세요. 꺾기는 언니보다 제가 더 잘해요."
  "이~. 히히히. 근디, 나 그런 거 못 혀."
  엄니는 아이들이 당신에게 꺾기를 하라는 줄 아시나보다. 만석이가 작은 소리로 아이들에게 작당을 건다.
  "할머니보고 하라는 줄 아시는가 벼. 한 번 해 보시라구 해 봐."

  내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아니면 아이들의 말 대로 꺾기를 하실 량인지, 공기 돌 앞으로 다가 앉으신다.
  "제 게 더 잘 되요. 이걸루 해 보셔요. 할머니."
  작은 손녀딸년이 굳이 제 것으로 엄니의 손을 채운다. 엄니도 즐거우신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공기를 올려 손등으로 받으신다. 에구구~. 모두 떨어지고 구부정한 엄니의 손등에 한 알의 공기돌이 올라앉는다. 그나마 앞으로 꺾어 받지를 못하고 옆으로 받아 드신다.
  "와~. 할머니도 잘 하시네요?"
  두 아이가 손뼉을 친다. 허허,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구먼.

  아이들이 두어 번을 더 제 증조모의 손등에 공기알을 올려놓고 받으라 한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벌써 재미가 없는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소리친다.
  "할머니. 이제 우리 들어가서 컴퓨터 해도 되요?"
  "그려. 니 할 차례여."
  엄니는 아직 더 놀고 싶으신 모양이다. 두어 판을 더 끝낸 아이들이 다시 소리친다.
  "할머니. 이제 노래 잘 부른 사람 발표해요. 누가 상 받나 보셔요."
  두 손녀딸년들이 제 증조모를 TV 앞으로 돌려 앉히고는 제 방으로 들어간다. 만석이가 보아하니, 아이들은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됐다."는 듯이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들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컴은 계속 켜놓고 나왔던 모양이다. 두 아이가 컴 앞에서 웃음이 만면하다. 영악한 것들. 볼멘소리로 엄니를 나무라던 만석이가, 이 주일 날에 아이들한테서 깊고 심오한 철학을 터득했구먼. 볼멘소리를 지르는 제 할미보다 얼마나 영특한고. 암, 어느 할미의 손녀딸들인데…….

  엄니요~. 아그들이 어른의 스승이라지유? 나는 오늘 아이들한테 아주 어려운 공부를 했슈. 며칠이나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두, 저도 엄니한테 아그들처럼 잘 할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