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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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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23회) 엄니는 좀 빠지소


BY 만석 2009-08-24

 

1부 제23회

엄니는 좀 빠지소

  “따르릉. 따르릉.”
  그이의 핸드폰이 운다. 급하게 목장갑을 빼고 핸드․폰을 잡는다. 일을 벌려놓았는데, 다른 일이 생기는가 싶어 겁이 더럭 난다.
  “아, 그래. 나, 지금 뭐 좀 해. 돈 벌었지.”
  저쪽에서 뭐라는 지 웃음이 만발한다.
  “그래야지. 집으루 와. 집에 좋은 술 있어.” 아무래도 낌새가 좋지 않다.
  “누구요?”
  술친구 아무개 씨라고 한다.
  “무신 돈을 벌었다구 한 잔을 사?”
  “나, 돈 벌었잖어. 이 공사 맡겼으면 50만원은 들었을 걸? 내가 했으니까 50만원 벌었지.”
  “무신, 50만 원은…….”
  “아, 변기 앉히고 세면대 세우는데, 하루 가지구 되는 줄 알어? 그러구 세멘하는 데두 하루 잡아야할 걸? 인권비가 얼마나 비싼데…….”
  자기 집 화장실 수리를 손수하고는, 마누라에게 돈 내놓으라는 첨지가 어디에 있누. 나랑 눈만 마주치면 자꾸만 돈을 내놓으라 한다.
  “아, 일이나 끝내구 달라셔.”
  “그래. 다 하면 내 놔야 되.”

  한 시간쯤 지나자 대문 벨이 운다.
  “누구셔요?”
  에그머니나. 조금 전 전화를 건 그 아무개 씨가 인터폰 앞에 섰다. 아니, 저 친구는 어쩌자고 이 어지러운 공사판에를. 또 오라 한다고 정말로 온다는 말인가. 잘 하면 공사는 오늘도 끝내기가 어렵게 생겼다. 어쩌겠는가. 대문을 열고 눈웃음을 치며 아무개 씨를 맞는다.
  “오호호. 오셨네요. 어쩌나. 아빠가 지금 정신없이 바쁜데 오셨네요.”
  지금 생각하니. ‘그냥 돌아가세요.’의 뉘앙스가 찌~인했던 것도 같으나, 아무개 씨는 개의치 않고 거실로 들어선다.
  “어~이. 잘 왔네.”
  일에 방해가 되는 불청객보다, 반가워 죽겠다는 영감이 더 얄밉다.
  “바쁜데 왔나봐.”
  “아냐, 아냐. 다 했어. 앉어. 앉어.”
  친구라면 사죽을 못 쓴다. 다 하기는 무신……. 아직도 세멘 일을 해야 하고, 타일도 몇 장 깔아야 하는데. 영감은 전문도 아닌 일이거니와 들어는 본 일이냐는 말이지.

  어느 새 세면을 하고 만면에 웃음을 담고 영감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참 얄밉다.
  “한 잔 해야지? 이 친구는 양주라야 해. 있지. 그거. Gramplan. 우리 집에 아주 좋은 거 있어. 몇 년 산이지?”
  나를 돌아보며 의기가 양양하다. 더 얄밉다.
  “돈 벌었다더니 양주 주는 거야?”
  “허허허. 벌었지. 50만원. 마누라한테 벌었다.”
  “…….”
  영문을 모르는 친구는 나를 돌아보며, 무슨 말이냐는 듯 턱을 치켜들고 묻는다.
  “오호호호. 우리 집 화장실을 손수 고치고는 50만 원짜리 공사라구 돈 내놓으래요.”
  “싱겁기는……. 난 또 돈 벌었다길래 들러봤지.”
  선웃음은 난발하지만 내 속이 말이 아니다.
  “내가 도와줄 거 있어?”
  “아냐, 아냐. 다 했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 자네가 뭘 도와. 됐어, 됐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저 떡 대 같은 두 팔로 주무르면 일은 수월하게 금방이라도 끝날 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줄 알았더니, 어~라. 가만 있자. 이제 보니 영감만 자꾸 잔을 비운다. 그랬다. 친구는 차를 운전해야 한다며 그이의 잔만을 채우고 있다. 아구~. 틀렸다. 오늘 일이 끝나기는 애시당초에 글렀다. 벌개진 얼굴로 영감은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어줍잖은 솜씨거늘…….
  “맞작도 못하니 그만 가야겠네.”
  내 눈길이 달랐을까? 아니, 아니. 난, 시방 충실한 연기를 했는데……. 아무튼 친구는 그렇게 횅하니 차를 몰아 떠났다. 취한 그이를 대신해서 대문 밖까지 배웅을 하고 들어오니, 얼씨구. 그이가 거실에 큰 大자로 누워 코를 곤다. 얼라리여. 정말 웃겼어. 이 일을 어쩌누. 깨운 들 무슨 소용이고 속을 썩인 들 무슨 소용이리요. 저녁에 아이들 샤워할 걱정을 하며 세면장으로 들어간다. 이 더위에 들어와서는 샤워를 아니 할 아이들이 아니니 걱정이지. 샤워는 못 하더라도 세면대라도 치워놓자. 에구~. 속 터져. 궁시렁 궁시렁.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말아 넘긴다. 에구~. 터져, 터져, 속이 터져. 그러게 사람을 부르자 했더니…….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는 세멘 일을 포기하고, 아이들 샤워나 하게 한다고 샤워할 준비를 마치는데, 영감이 문에 와 선다. 영감의 얼굴을 보자 이제껏 참았던 분통 뚜껑이 ‘펑’ 소리를 내며 열린다.
  “일을 벌렸으면 끝을 내야지. 일하다 말고 술은 무슨 술! 이게 일 다 한 거야? 일 다 했다며?”
  총알 같이 쏟아놓는 마누라의 잔소리에,
  “아까 일어났는데 당신이 뭘 하길래 다시 누었지.”
  “당신이 자니까 내가 청소를 했지.”
  “술이 취했으니까 그렇쟎어~.”
  영감 뒤에서 엄니가 영감을 대변하신다.
  “어서 끝을 내야 나두 치우구 내 일 할 거 아냐?”
  “아, 술이 취해서 그랬다니께~.”
  아들이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엄니가 받아친다. 치켜 뜬 마누라의 눈 꼬리가 예사스럽지가 않았던가. 그이가 엄니에게로 돌아서며,
  “저리로 가 계시요.”한다.
  그래도 만석이의 분이 풀리지 않는다. 엄니는 어쩌자고 이 지경에 아들 편을 드신담. 잠자코나 계시지. 아니면 며느리 편에 서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을. 나이 칠십의 아들과 며느리의 부부싸움에 그리 끼어들어야 하시겠는가 말이지. 푸~. 휴~. 끄~응.

  “피곤해서 좀 잤구먼서두......”
  영감이 엄니를 방에 모셔놓고 나와 선다.
  “그게 피곤해서 잔 겨? 술이 취해서 잔 거제?”
  영감의 눈빛을 보니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겠는데, 만석이 속이 아직 뒤집힌 채로다. 불거진 입술을 내 밀고, 우당탕탕, 우당탕탕. 거친 손 노릇을 해보지만, 그이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머리 위로 꽂힌다. 제 부화를 이기지 못하고 만석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흑흑 느끼며 울어야 제격이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수세미를 팽개치고는 볼품도 없이,
  “아~앙. 아~앙.”소리를 지르며 운다. 울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를 않는다.
  으하하하. 푸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나이나 어린가, 곱게 생겨먹기를 했나. 이 나이에 이 큰 입을 벌리고 아~앙, 아~앙이 무어람. 스물다섯 결혼을 할 때 내 오라버니가 이르셨다.
  ‘날 죽여라~!’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마누라보다, 방구석 한켠에서 ‘흑, 흑.’흐느끼는 마누라가 더 보기에 좋으니라. 남정네 마음을 얻기도 후자가 제격이지.”
  허니, 돌아가신 오라버니가 내 울음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셨겠구먼, 킥킥킥.

  영감이 내 손을 잡아끈다. 무슨 모양새냐는 듯, 방에 들어가서나 울라는 듯. 아직도 술이 덜 깬 영감의 눈이 깊어진다. 옳거니. 이제 영감도 내 편이기에 틀림이 없다. 아니나 달라?!    그이가 찬물을 벌떡거리며 마시고는,
  “내가 잘 못했다. 그래. 내가 잘 못했어.”
  이럴 땐 내가 한 술 더 떠야 한다.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엄니 방으로 향한다. 그이가 뒤따르며 나를 부른다.
  “어~이. 어~이.”
  엄니 방문을 열려고 방문 손잡이를 잡자, 그이의 손이 내 손을 덮는다.
  “정말 이럴 거야? 내가 잘 못했다는데두......”
  “엄니 잣죽 데워드릴려구 그려~ 왜!”
  그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나머지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제 그이의 서슬은 완전히 풀기가 가셨다.
  “하늘나라 계시는 오라버니요~. 요런 요령은 워떴소? 괜찮지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