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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21회) 이넘의 조댕이가 병이라요


BY 만석 2009-08-22

 

1부 제21회

이넘의 조댕이가 병이라요

  “진지 잡슈.”
  엄니 방을 향해 소리친다. 엄니가 방긋 웃으며 나오신다.
  “내 국은 푸지 말어.”
  “…….”
  이미 국그릇을 내려놓던 만석이가 엄니를 올려다본다. 엄니의 말에 뼈다귀가 밖힌 것 같다.
  “내 국은 푸지 말라고 혔어.”
  “와요.”
  “에미 먹어야제.”
  예쁘게 웃으시지만 뭔가가 석연치 않다.

  “이제 실컷 자셨슈?”
  그러고 보니 내 말에도 가시가 돋쳤다.
  “그려.”
  엄니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시다.
  “왜 또. 엄니는…….”
  엄니의 아들은 엄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허긴 알 리가 없지. 왜 쓸 데 없는 말을 하시냐고 나무라고 싶어 하는 눈치다. 아서라. 나는 얼른 그이의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외쳤다.
  “암말도 마시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손가락에 금이 두 군데나 갔다 하여 깁스를 한 것은 지난 달 말. 소식을 전해들은 큰딸아이가 소꼬리 한 벌을 사 들고 왔다. 젊은 아이들 같지 않아서 더디 붙을 것이라는 걱정을 엄니 앞에서 늘어놓았었다. 아이는 엄니의 좋지 않은 청력을 생각해서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할머니가 좀 배려를 해 주라는 제 어미 사랑이었다. 저도 시집살이를 하는 아이라서, 이 나이에 시집살이를 하는 어미가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아이구. 고맙기는 헌디, 당최 뜯을 수가 있어야제.”
  “…….”
  “…….”
  큰 딸도, 같이 앉았던 작은딸도 제 할머니의 동문서답에 그 큰 눈들을 더 동그랗게 떴다.
작은딸아이가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렸다.
  “잠자코 있어.”
  오지랖이 넓은 척 아이의 입을 가로막았다.
  “뭐야. 할머니는……. 아니, 며느리 손 아픈 건 안중에 없으시다는 말씀이셔?”
  영악한 작은딸아이가 그냥 넘어가지를 않을 태세였다.
  “아이구. 씨끄러. 엄마도 먹으면 되지.”
  큰딸아이의 킥킥거리는 웃음에, 마냥 즐거우신 엄니가 오히려 딱했다.

  사실은 엄니는 고기를 즐기지 않으신다. 소고기, 닭고기를. 돼지고기는 엄니 앞에서 구울 생각도 못했다. 우리 집으로 오셔서부터 고기를 잡숫게 하려고 애를 썼었다. 지금도 고기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시지만, 당신의 체력을 생각하시는가? 끼니때마다 곰국을 잘 드신다. 다른 때 같으면 어미도 먹으라고 권하셨겠으나, 도통 한 마디도 어미 들라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내 몫이거니 하며 나도 한 대접을 비웠다. 먹을 때마다 엄니의 심사가 곱지 않았다. 엄니는 마냥 좋으신가 본데, 만석이는 은근히 심통이 발동한다.

  한 주일 쯤 지났을까? 큰딸아이가 또 소꼬리를 들고 들어섰다.
  “뭣이여?”
  이번에는 엄니가 먼저 물으셨다.
  “할머니 드시라구 소꼬리 사왔어요.”
  옳거니. 뉘 딸인고. 제 어미를 닮아 영악하기까지 하구먼.
  “아이구. 아이들 하구 지들이나 과 먹제. 또 워서 났냐.”
  “돈 주구 사오지 어서 나요?! 왜 갖구 왔는지 몰러유? 얼릉 나으라구유.”
  에구~. 만석이의 볼멘소리가 기어이 목젖을 타고 넘었다. 이럴 땐 제 딸년보다도 못한 에미로고.
  “먹으믄 뭘 혀. 났기는 무신……. 점 점 더 죽겄는디.”
  딸아이와 나는 나오지도 않는 선웃음을 주고받았다.

  국을 먹을 때마다 엄니가 미웠다. 엄니가 국물 한 점까지 부셔 마실 때마다 미웠다. 내 이 삐뚤어진 심사를 엄니가 눈치나 채시면, 아마 잡수신 국물을 토해 내고 싶으셨을 게다. 그래도 미운 건 미운 거다. 어째서 내 딸년이 제 어미 부서진 손가락을 위해서 곰국거리를 사왔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하시는고. 평소에 미련스러운 엄니도 아니고,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눈치꾼이신데 말이다. 이러다가 곰국 드신 엄니도, 심통이 난 만석이도 곰국 먹은 살이 다 내리겠다. 먹자. 막 퍼 먹자. 하~ㄴ 대접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 사실을 말하자면 엄니의 국 국물은 내 것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엄니. 내 손이 다 나았는가 본디?”
  “그려? 안 아파?”
  “딸년이 사다 준 뼉다구 고아 먹었더니 금방 붙었는가 본디요?”
  “…….”
  오늘 아침에 엄니와 마주앉아 밥을 먹으며 주고받은 말이었다. 엄니가 내 딸아이의 의중을 아니, 며느리의 심사를 읽으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오늘 저녁엔 국을 푸지 말라 하시는 게 아닌가.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묘하다. 엄니를 위해 사왔거나, 나를 위해서 사왔거나가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엄니도 자시고 나도 먹으면 되는 것을. 그렇다고 다른 식구들은 안 먹는가 말이다. 단지 당신만 생각하고 손이 아픈 며느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엄니의 심사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게다. 그렇다 치고 잊으면 되는 것을.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 말이다. 이맘, 만석이가 못 된 며느리임이 확실하다. 아니, 내 속이 밴댕이였던 게다. 그래. 만석이가 못 된 며느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맘이 편하겠다. 굽은 등으로 서서 당신의 국을 푸지 말라 하시는 엄니가 측은하다. 만석이가 밉다. 국을 챙겨 드시던 엄니보다 만석이가 더 밉다. 에구~. 이 심사는 또 뭐람. 못된 사람 같으니라구. 그러니, ‘이 넘에 조댕이가 병’이란 말이지.

  국을 푸지 말라며 서 계신 엄니 곁에서, 아직도 어리둥절 서있는 그이에게 다가가서, 이실직고를 한다. 남편은 말이 없다. 거실에 켜진 TV만 바라보고 앉았다. 그 심사도 오죽하랴만, 입을 닫고 있다. 내 예쁘지 않은 입을 손으로 쥐어뜯으며 그이에게 말한다.
  “이넘에 조댕이가 병이라요.”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엄니요. 죄송해유.”
  이건 영감이 들었으면 싶어서 한, 말하자면 수면제다. 그이가 좀 편한 맘으로 자도록 하자는 만석이의 지아비 사랑이다.

  ‘여보, 나 이만하면 됐쟈?’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