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번째 기차여행
나 혼자만의 기차여행이 보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터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동행이 있어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혼자 움직이려했던 계획에 그녀(나보다 연상이지만 나의 존대 말에 늘 불만이었으니 이렇게 불러주자.)가 끼어든 셈이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편견이다. 그녀의 편견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녀의 여행에 끼인 셈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녀는 몰라도 나에게는 덤으로 챙기는 ‘유익’이 있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결코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녀도, 내 동행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그러나 이것도 나만의 편견인지도 모르지. 여행의 목적이나 결과를 굳이 밝히자고,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 것은 아니다. 병문안을 다녀온 것이었고, 그래서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고만 말해 두자. 현관을 들어서니 황제 아드님(엄니에게만)이 엄니의 저녁을 챙기는 중이었기에, 손만 씻고 바턴을 받아 바쁜 저녁상을 봐야 했다. 이정도면 영감도 많이 발전했다. 지난번 '나만의 여행'을 다녀와서 영감에게 심통을 부린 게, 썩은 아니어도 제법 먹혀들었던 모양. 이만하면 ‘장죽의 발전’이라고 해 두자.
이제 저녁상도 물리고 샤워도 끝냈으니, 오늘 하루의 일을 마무리 해야겠다. 따라서 오늘 그녀와 주고받은 고부간의 이야기에 대한 異見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귀경길의 KTX 안에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요. 내가 깁스를 푼지가 얼마 안 돼서, 아직 손가락이 온전치 못하거든? 근데, 엄니가 목욕을 시켜 달라시는 거야.”
“…….”
“그래서 돌아다만 보고 그냥 아래 층으루 내려갔더니, 그게 맘이 안 편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올라와 보니까 엄니가 목욕을 하시는 중인 거야.”
“…….”
“근데, 내 기분에, 엄니가 ‘더러버서 내가 목욕한다. 니가 안 해 줘두 내가 할 수 있어!’하시는 것 같더라니깐.”
“…….”
“아까 목욕시켜달라는 말이 너무 당당하셔서 말야. 그래서 그냥 모른 척하고 내려왔어.” “가만있어 봐. 시어머니가 목욕시켜달라는데, 처음엔 그냥 돌아다만 보구 내려갔다구?”
“…….”
단호한 그녀의 표정에, 이번에는 내 쪽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올라와서도 목욕을 시켜드리지 않았다는 말이지.”
“응.”
“무슨 똥배짱이여. 아니, 시어머니가 목욕을 시켜달라시는데, 그냥 돌아다만 보구 내려갔다구?”
“응” “아구야~. 못 됐네. 아니, 잘 하다가 왜 그랬어?”
그녀의 눈이 더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난, 아직 손가락이 아프다구.”
“아무리 아파도 시어머니가 목욕을 시켜달라는데, 그냥 내려가냐?”
“내 손가락이 아직 온전치 못해.”
“아, 이렇게 싸매고 이렇게 하구라도, 한 손으루다가 문질러 드릴 수 있잖어.”
그녀는 자기의 한 손을 떠 매어 가슴에 안는 시늉을 하면서, 나무라듯 언성을 높혔다. “…….”
어~라. 이게 아닌데. 난 지금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 중인데……. 저녁에 들어와서 엄니한테 며칠 더 샤워만 하시라고 양해를 구했다는 말에도, 그래서 내 마음이 짠했다는 말에도 그녀의 노기는 식지를 않았다. 난감했다.
“있잖니. 잘 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못 된 짓도 하고, 못 된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한테 잘 하기도 하더라. 나처럼 늘 그냥 그 타령인 며느리는 잘 하지도 못 해.”
칭찬인지 나무라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가늠이 가질 않는다. 아무튼 그녀의 노기는 식지를 않았다. 한참을 지나도 그녀의 심중은 아직 이었다. 기분이 영 찜찜했다.
한참을 지난 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그래야 되는 거였어? 나는 손가락이 아파도 참고, 손을 목에다 떠다 메고라도 엄니 목욕을 시켜드려야 했던 거야?”
“그럼! 당연히 그랬어야지. 아니, 돌아다 볼 때 어머님이랑 눈이 마주쳤어?”
한참을 생각했다. 어쨌던가? 시선이 마주쳤던가? 어제 내 글에, ‘아마도 쏘아보지는 않았을까?’라고 적었지만, 그랬노라고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잘 하다가 왜 심통이 났었어.”
“잘 하는 것도 없지만, 엄니가 너무 당당하게 ‘목욕시켜라’하는 투로 말씀하셔서.......”
“그래서 고약하게도 팩 톨아졌구먼.”
아직도 그녀의 음성에 노기가 식지를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전철 속에서 다시 내가 물었다.
“언니. 내가 목욕을 시켜드렸어야 했던 거야? 정말이야? 그런 거야?”
젊은 아이들 흉내를 내며 웃기는 했지만, 나도 내 입장을 더 해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럼. 당연하지.”
“손가락을 잘 못 쓰는 며느리한테 당당하게 ‘내 목욕을 시켜라!’하실 수 있다구?”
“그럼. 그 양반은 자네 시어른이니까. 어른이니까.” 자꾸만 되물어도 노기가 식지 않은 그녀의 대답에, 나도 이제는 오기가 발동을 한 모양이었다. 자꾸 되묻는 나도 그렇지만, 노기가 식지 않는 그녀의 편애가 이상하리만치 단호했다.
턱을 괴고 앉아 차창에 지나가는 바깥 풍경에 시선을 두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단호할까? 헤어지기 전에 내 입장을 더 설명하고, 그녀와 한 맘이고 싶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을 내 쪽으로 돌이키고 싶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아하. 옳거니. 알았다. 그거다. 가재는 계 편이라지? 그녀도 그녀의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였다. 그제서야 그녀의 노기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눈에 시어머니로서의 그녀가 보인다. 그녀의 며느리도 이미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아직도 있었다.
“언니. 그건 아니지. 며느리 손이 아직도 온전하지 않은데, 그래도 시어머니가 원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했어야 한다는 건, 악덕의 ‘고정관념’이지. 나도 머지않아 시어멈이 되겠지만, 그런 고정관념은 우리 스스로가 버려야 해요. 언니도 마찬가지구.”
제법 힘주어 설교를 한다.
“시어머니가 변해야 해요. 신세대의 며느리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따르기를 바라지 말고, 우리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따라 변해야 해요.”
“…….”
“세상이 변하는 걸요. 아니 이미 변했어요. 그런데 고정관념만 고집하면 안 되죠. 그건 퇴보하는 거예요.”
이런, 이런. 내가 무슨 여성인권 학자라구……. 옆자리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조용히, 그러나 힘주어 말을 거든다.
“그러게 노인네 모시는 사람이랑 모시지 않는 사람이랑 다른 거예요. 노인네 모시지 않는 사람들은 노인네 모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옳거니. 여기에 공자가 한 분 앉아있었구먼. 아니면 그녀도 同病相憐을 느끼는 중이렸다.
조용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가만있어 봐. 아까 다시 이층에 올라오니까, 시어머니가 목욕을 하시더라구 했지. 어머니가 샤워 정도는 하실 수 있어?”
이건 그녀의 항복이다. 이젠 끌어당기기만 하면 된다. 내 입에 힘이 붙는다.
“그러~엄. 샤워하고 머리 감는 일은 다 하시지.”
“취소다. 내가 말한 거 취소다. 나는 시어머니가 샤워도 못하시는 줄 알았어. 그럼, 어머니가 좀 기다리셨어야지. 난, 어머니가 그것도 못하시는 줄 알았지.”
그녀의 백기에 맥이 빠진다. 그녀가 좀 더 버텼어야 옳았다. 좀 전의 그 노기가 그렇게 사그라지면 재미가 없다. 나도 할 말이 아직은 많은데 말이다.
“만석아. 잊어버려라. 아까 말한 거 다 취소야.”
그녀는 손을 흔들며 예쁘게 웃는다. 사실 전자계산기나 주판으로만 계산을 하자면, 그녀의 말대로 나는 똥배짱의 못 된 며느리요 엄니는 현명한 시어머니시다. 아마 나는 그녀의 이 ‘똥배짱의 며느리’라는 표현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 내가 ‘똥배짱의 며느리’가 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아니, 거기에다가 상대적으로 엄니를 ‘현명한 시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사실은 후자의 그 편애가 더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잠자코 앉아있는 그녀에게 자꾸만, “내가 정말 그랬어야 했느냐.”고 대들 듯 물었던 게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쓴다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럽다. 지하철에서 만난 옆 자리의 그 아주머니가, “그러게 노인네 모시는 사람이랑 모시지 않는 사람이랑 다른 거예요. 노인네 모시지 않는 사람들은 노인네 모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라는 한 마디에 그녀가 백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던 게다. 사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어’가 다르고 ‘아’가 다르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는 내 시어머니의 그 말투가 너무 당당하다는 느낌이었고, 그것이 며느리인 내 마음에 어떻게 꽂혔는가가 문제가 된 게다.
글을 쓰는 중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잘 들어갔냐는 안부다. 내가 했어야 할 전화를 그녀가 먼저 한 것이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묘한 감정이 생긴다. 이건 낯에 그녀가 나에 대해서 가졌던 노기에 대한 화해의 손짓일까? 아니면 내 엄니처럼 어른스러운 언니로서의 포용이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내 설득력에 그녀의 완고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진 것일까? 그녀의 감정이 후자였으면 참 좋겠다.
“당신 생일날엔 절대로 당신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지 말고, 아이들에게 얻어만 먹으라.”던 그녀의 고정관념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 물론,
“아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내 생일엔 외식보다는 내 집으로 아이들을 불러서 먹인다.”라거나,
“맏벌이 부부인 자녀들의 바쁜 일상이, 나를 그녀의 말 대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라던지,
“거동이 불편하신 엄니를 두고, 우리만 나가서 먹게 되지를 않는다.”는 나만의 정당화도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다 접어두더라도, 아무튼 만석이가 못 된 며느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잘 해드리지는 못하더라도 못 되게 굴지 않는 며느리로 살겠다’던 결의가 무색해진다.
만석아~. 너는 언제나 철이 들꼬.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지만, 이로서 그녀와의 첫 번째 기차여행엔 유익한 장사를 한 셈이다. 그것도 ‘아주 유익한 장사’ 말이다. 오늘 밤엔 잠이 잘 올 것 같다. 그녀도 이 밤, 좋은 꿈을 꾸도록 기도해야겠다. (혹, 그녀가 이 글을 읽으면서,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녀와의 기차여행이 유익했었다는 얘기를 한 것일 뿐이다. 그녀의 편견이나 편애를 비난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음을 밝힌다.-하도 무서운 세상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