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3회
엄니의 자리
내 시어머님의 자리는 언제나 거실의 소파 한 쪽 구석. 작은 몸집에 단정한 모습으로 언제나 정좌하고 계신다. TV가 주방과 거실의 경계에 놓여 있어서, 당연한 엄니의 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시선이 주방에서 움직이는 나의 뒤통수를, 아니 적지 않은 내 엉덩이를 향한다는 게 늘 못 마땅하다. 몸을 놀리기도 불편하고 TV를 핑계 삼아, 내 알량한 몸매를 염탐 당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엄니의 방에도 물론 TV는 있다. 그러니 엄니 방에서 TV를 보시면 여간 좋겠느냐는 말이지. 하루 이틀도 아닐 테니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엄니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좋은 뜻으로 엄니를 방으로 떠 밀(?)수는 없을까?
옳거니. 오늘이 좋겠다. 엄니의 기분도 이 못 된 며느리의 기분도 과히 나쁘지는 않으니 말이다. 더욱이 엄니 아들의 기분도 썩 괜찮은 편이니 말이다. 마침 지금은 엄니가 당신 방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고 계신다. 마음을 다져먹고 쑥차 한 잔을 우려 받쳐 들고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엄니 방으로 들어간다.
"엄니요. 거기서 테레비 보시니께 나두 좋으네요."
"왜?"
"맨날 내가 뭐, 맛있는 거 먹나 하구 지켜보지 않으시니께."
"뭐시 그리 맛있는 게 있다구."
"아, 허다 못 해 반찬이라두 좀 집어먹을라믄 엄니가 지키고 앉았으니 집어 먹을 수 있슈? 호호호."
나오지도 않는 선웃음을 치면서 서투른 너스레를 떤다.
"내가 왜 소파에서 테레비를 보는 줄 알어?"
"와요?"
"아, 집에 테레비를 몇 대씩이나 켜믄, 전기세가 월매여?"
"엄니가 거기 안 앉았으니께. 나는 전기세가 많이 나와두 좋은디?"
"그냐?"
"야. 전기세 좀 나와두 좋구먼. 내 묵고 싶은 거두 몰래 먹구. 히히히."
"알았샤. 많이 묵어라. 안 그려도 소파 뒤에 창에서 바람이 술술 들어와서 나는 안 좋아."
이젠 됐다. 아마 이제부터 엄니는 당신 방에서만 TV를 보실 걸?! 엄니는 현명하시니까. 크크크. 아구~. 예쁜 우리 엄니. 오늘 나는 아주 큰일을 해 낸 것 같다. 아구~. 엄니의 못 된 이 며느리. 그러고 보니 시엄니의 자리도 어려운 자리인가 보다. 나도 멀지 않았는데…….
'엄니. 미안하요. 그래두 테레비는 엄니 방에서 보시는 게 좋겠는디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