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11회
이부자리도 깔라놓지 않을까?
저녁 9시. 이 시각의 전화라면, 우리 식구는 누구도 받지 않는다. 당연히 엄니가 받아야 할 전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니의 큰따님은 매일 이 시각에 전화를 건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계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는 따님의 정성이 보통을 넘는다. 오라비 부부가 밖에 나가서 생활을 하니, 엄니가 심심하시겠다는 속 넓은 배려이거니. 매일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보통이 한 시간이다. 자주 찾아뵙는다면 전화비만큼만 들겠냐는 오지랍도 넓은 계산이렸다.
그러나 그 일이,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썩 좋게만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한 시간의 수다 속에는 며느리의 흉도 있지 않겠냐는 심사 못 된 오라범댁의 계산이렸다.
"며느리 흉도 보시겠쥬, 뭐."라는 볼 멘 목소리에 엄니는 서슴없이,
"얘기하다보믄 흉두 하겄지."하신다. 절대로, 절대로 흉은 보지 않는다는 소릴 들은 것보다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좀 덜 솔직하게 그리 않는다 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알량한 며느리도 오지랖이 넓은 척을 해 본다. 절대로, 정말로 두 양반의 전화 통화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일이 그 일이다. 시누이와 올케의 사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이라서, 고부간의 그것과는 또 다른 껄끄러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두 양반의 평범한 대화도, 필경 비비 꼬아 들리기에 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예 들을 채도 아니, 애써서 듣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 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못 된 이 며느리는, 기력 없는 엄니에게 때때로 엄포를 놓는다.
"엄니가 지 흉보신 건, 엄니가 돌아가시믄 다 탄로가 난다구요. 시누이들이 지금은 내가 엄니를 모시고 있으니께 이래두 저래두 속으루 새기지만, 엄니 돌아가시믄 다 토해 낼 것이구먼유."
오늘은 9시의 전화를 내 방에서 받으신다. 엄니 방을 한창 도배 중이기 때문이다. 아마 주무셨느냐고 묻는 듯하다.
"안중 저녁도 안 먹었는디?"
아마 시장해서 어쩌느냐는 걱정을 하는가보다.
"시방 상 차리는 중이여."
어서 저녁을 잡수시라는 모양인지, 수화기를 내려놓으신다. 길게 통화할 여건이 되지 않음을 감지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 심사는 또 어쩌라고 요동을 치는고. 그냥 지나쳐도 좋을 것을 기어이 걸고넘어진다.
"엄니요. 기냥 아직 저녁을 안 자셨다 하시믄 되남유? 좀 전에 빵으루다가 요기는 하셨다는 야그를 하셔야 고모가 걱정을 않지유~."
사실은 어머니 따님의 걱정하는 마음이 안스러운 게 아니라, 노인네를 아직껏 저녁을 드리지 않았냐고 할 힐책이 싫은 것이렸다.
"말혔어. 빵 먹어서 배 안 고프다구 혔다니께."
"……."
못 들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지는 않으신 것 같다. 그러나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엄니의 방에 있던 엄니의 아드님(내 영감)이 걱정스러운 듯이 나와 선다. 며느리 눈치 보시는 엄니도 딱하시지만, 엄니와 와이프 사이를 교통정리 해야 하는 내 영감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나는 뭔가? 나도 엄니와 영감의 눈치를 보기는 보는 걸까? 아니면, 이러거나 저러거나를 상관 않는 독불장군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럴 주재도 되지 못하지 않은가?
고부 사이는 참으로 끝없는 평행선이다. 그러나 남편은 다르다. 어제는 죽이고 싶다가도 오늘은 작은 가슴으로라도 포용 하고 싶은 게 남편이라고 누군가 말을 했다. 아무튼 난는 긴 세월 엄니와 남편 사이에 살면서 터득한 나만의 철학이 있다. 엄니와 남편을 모두 아우르는 포용력. 그것은 작은 일이라도 엄니한테만 베풀면, 영감의 심사는 자연스럽게 요리할 수가 있다는 말이지.
그러나 실행이 중요하다. 나는 소파에 앉으신 엄니의 손을 잡아 식탁에 앉힌다. 엄니가 당신 혼자 걷지를 못해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 한 번의 수고로 엄니와 남편의 마음을 아우르는 중이다. 거 보라지. 영감의 미간이 풀어진다. 엄니의 밥 수저에 김이라도 얹어 보라지?! 이제 영감은 내가 좋아 할 일을 찾아서 할 것이다. 이제는 커피까지도 '콜'이 가능할 것이다. 까짓 이왕에 버린 몸이라지 않던가. 내친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엄니. 내일은 목욕시켜 드릴까?."
이밤, 영감은 틀림없이 방걸레질은 물론이고 이부자리도 깔아놓지 않을까?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