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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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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1부 제10회) 잘 돼야 할 텐데...


BY 만석 2009-07-27

 

1부 제10회

잘 돼야 할 텐데…….

  저녁을 지으려고 가게 문을 잠깐 잠그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그림처럼 소파 위에 정좌하고 계신다. 가지런히 모은 두 다리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얹은 모양새가, 내가 늘 얘기하는 그 '춘향의 좌상'과 오늘도 다를 바 없다. 꼿꼿한 허리와 야무지게 다문 입매가 차라리 나를 질리게 한다. 그래도 엄니는 현관을 들어서는 며느리에게 자랑삼아 말씀하신다.
  "내가 빨래 개 놨어."
  검은 양말이 어떻고 아들 런닝이 어떻다고 말씀하시지만, 작업을 하다가 들어와 밥을 하는 일이 귀찮아서, 이 며느리는 엄니의 그 소리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쌀두 씻어 놨어."
  주방으로 휑하니 들어가는 며느리의 등에다 알아 달라는 듯이 말씀하신다.
  "……."
  "냄비두 닦아 놨어. 밥 앉히기 쉬우라구."
  "……."
  365일 늘 상 하시는 레퍼토리라서, 별로 감격할 일이 되지 못한다.

  "에미 화났어?"
  "내가 왜 화가 나요?"
  "멀거니 앉아 노는 사람 밥 해 apr이기 힘들어서……."
  "엄니. 그런 거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그래두 내 땜시 화가 났는가 싶어서. 하루 중에 이 시간이 젤루 눈치스러버."
  금새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은 눈으로, 엄니는 날 올려다보신다.

  나도 참 못 됐다.
  "잘 하셨어요."라고 한 마디 던져 드렸으면 족할 것을…. 안 된 생각이 들어 돌아서서 엄니와 마주 선다.
  "엄니. 예. 저, 화났어요. 그런데 저녁에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엄니 때문이 아니구요. 작업을 하다가 저녁을 지으러 들어와야 하는 것이 화가 난다구 몇 번을 말씀드렸어요?"
  "……."
  "엄니가 시골에 계실 때 밭에서 들어오시면 누군가가 밥을 좀 차려주었으면 싶었던 것처럼, 저두 일하다가 들어오면 그려요."
  "……."
  "엄니가 안 계셔두 식구들 밥은 안 하나요? 어차피 밥은 하는 거구요. 그러니까 엄니 땜에 화나는 거 아녜요. 힘드니까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아셨죠? "
  이쯤이면 엄니의 대답이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 소리 없으신 것으로 보아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는가 싶다.

  전기밥통에 넣어 두었던 찐빵을 꺼내서 엄니 손에 쥐어 드리며 아주 조신하게 말을 건넨다.
  "엄니. 다시는 그런 소리 안 하기. 아셨쥬? 듣기 좋은 소리두 두 번 들으면 싫은 법인디."
  "그려도 저녁에 니가 말을 안 하믄 아주 눈치시러버."
  그러시겠다. 내가 엄니라도 그러시겠다. 아이구~. 그 서슬 시퍼렇던 시어머니의 위엄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허긴. 엄니가 이제 시어머니의 위엄을 보이기에는 너무 약하시다. 아이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시다. 불쌍하게도 엄니는 이제 이 며느리와는 쨉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그러고 보니 더 딱하시다. 참 딱하시다. 그럼, 내일부터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녁을 지으러 들어와? 그래 봐봐? 휴~. 잘 돼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