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9회
엄니 아들한테는 지가 제격이여요
그이가 요새 심통을 부린다. 나는 아직 퇴근하기도 전인데, 벌써 불을 끄고 자는 척도 하고, 미간에 쌍심지가 지워지질 않는다. 도대체 말 잘 듣고 돈 잘 벌어다 주는 마누라를 왜 들볶는지 모르겠다. 그이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공연한 강짜다 싶어서 물어볼 채도 않는다. 그러다 지치면 말겠지.
요는 엄니가 문제다.
"애비 밥 안 먹은디."
"배 고프믄 먹겄지유. 엄니는 자셨슈?"
"난 배가 고파서 먹었지."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으시나 보다.
"애비두 안 먹었다니께. 먹으라구 그려~."
"안 먹는다잖유~. 퍼 먹여 주라구여? 배 고프믄 안 먹겄슈?"
영 마땅치 않은 기분으로 소파에서 내 뒤통수를 쏘아보시는 눈길이 느껴진다.
잠깐 앉아계시던 엄니는 일어나 당신 방으로 향하며 말씀하신다. 혹, 내가 듣지 못할까 싶어 힘주어 톤을 높이 하신다.
"휴~. 아부지 살아생전에, 땅 때기만 많으믄 아들 배 안 곯는 중 알구, 내 배 곯으믄서 땅 때기만 마련했구먼서두..."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외울 수 있다. 이미 여러 번 들어왔던 터이다.
그러니까 땅은 많아서 추수는 많이 하게 됐지만, 며느리를 잘 들였어야 아들이 공경을 잘 받을 수 있을 걸 미처 몰랐다는 말씀이시다. 결국 며느리를 잘 못 봤다는 후회이시렸다? 엄니의 속마음을 읽은 내가 언젠가 입을 댓 발 내밀고 미련을 떨었다.
"그 차 씨네 딸 며느리 삼지 그러셨슈? 힘두 세구 일두 잘허구 엄니 아들 잘 섬기게 생겼드만."
차 씨네 딸이란 시골 이웃동네에 사는, 나와 혼사가 있기 전에 중매가 들었었다는 소문의 여인이다.
그 뒤로 엄니는 아주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잊고 사시더니, 오늘 다시 입에 올리신 게다. 까짓. 이제는 차 씨네 딸이든 채 씨네 딸이든 상관없다. 나도 이제는 통달을 했나?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밥을 한 숟가락 퍼 넣은 채 엄니 방문을 연다.
"엄니. 또 차 씨네 딸 생각이 나유?"
"……."
"야~? 차 씨네 딸 생각 나시냐구유."
"아녀. 아~녀."
두 팔을 벌려 허우적거리신다.
"뭘 아녀유."
"차 씨네 딸, 교통사고나서 다리가 분질러졌댜~ 입에 올리지두 말어~."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차 씨네 딸이 교통사고라고? 아니, 그럼 엄니는 아직도 차 씨네 딸을 못 잊고 소문을 접하시는 겨? 아니, 그럼 아직도 차 씨네 딸을 며느리로 맞지 못하신게 억울하신 겨? 엄니~! 꿈 깨셔유~. 그래두 엄니 아들한테는 지가 제격이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