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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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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4회) 엄니나 영감이나


BY 만석 2009-07-18

  1부 제4회

엄니나 영감이나

  늦은 저녁 9시. 가게의 출입문이 덜컹거린다. 돌아보니 엄니가 문을 잡고 씨름 중이시다.
놀라 마주 나가니,
  "애비 저녁 안혀?"소리치신다.
  아니, 저녁은커녕 계단을 어찌 내려오셨을꼬?

  "엄니가 밥 걱정을 왜 해요?"
  에구~. 들리지 않는 엄니 청력이 시원찮은 것은 모르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잡는다고 욕하겠다.
  "뜸을 들여야 먹을 것인디..."
  엄니 팔짱을 끼고 대문을 민다. 내려오셨으니 올라도 가시겠다 싶어 엄니의 손을 놓고, 아예 가게 문을 내리고 엄니 뒤를 따른다.

  이제 이층에는 아무도 없으니 목청껏 떠들자.
  "원제는 엄니가 밥 걱정했슈~?"
  "아니, 점심에는 니가 일부러 올라와서 내 밥 챙겨줬으니께 미안해서 그라제."
  "아들 저녁 굶길까봐 걱정이쥬?"
  "아녀~. 니가 밥도 못 먹구 되돌아 나가니께 내가 니 사정 봐줄라구."
  “……."

  차라리 아들의 저녁이 늦을까봐 걱정이라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하셨으면 좋으련만.

  11시에나 들어온다는 영감의 전화를 받았으니 아직 저녁은 이르다. 그래도 엄니 성화에 밥을 앉히고 속을 끓이는데 닫혀 진 엄니 방문이 빼꼼하게 열린다.
  "바쁜 니 생각해서 밥 앉히믄 내가 뜸 좀 들여 줄라구 나갔더니……."
  그러니까 일하다가 들어와서 당신 점심을 차리게 한 게 미안하고 고마웠노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고맙긴. 언제는 안 그랬고 오늘만의 일이었는가.

  잠잠하던 방문이 다시 열린다.
  "내, 잘 못혔다. 미안하다."
  "……."
  요상한 일이다. 안 하던 일을 하신다. 다시 조용히 닫혀 진 방안이 궁금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엄니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 계신다.
  "뭐하시는 거유? 공연히 나와서 '잘 못했다. 미안하다.'는 뭐유? "
  "그려. 그러게 '내가 잘 못혔다. 미안하다.'했어."
  여느 때 같으면 잘 못 들으셨나 보다 했으련만, 오늘은 나도 좀 요상하다.

  "그러게 와 나와서, '잘 못혔다. 미안하다.'하셔유? 그러니께 내도 맘이 안 편찮아유."
  "그러게 잘 못했다구 했잖여. 그만 해."
  이런~. 나는 시방 영락없이 엄니를 나무라는 못 된 며느리가 되고 만다.
  "그러게 왜 그러시냐구요. 그라니께 내도 맘두 안 편치유~!"
  얼라리? 몸을 팽그르 돌리니 내 등 뒤에 영감이 서 있다. 언제부터 서 있었을꼬?

  엄니 청각 때문에 늘 그랬지만, 고부간의 언성이 높아지자 현관을 들어서던 영감이 사태를 짐작하느라 목하 고민 중이었던가 보다. 허나, 사태가 고스란히 짐작이 가지는 않지만, 엄니의 말씀에 내자의 마음이 편안치 않다 하니 큰 사단이 일어난 일은 아니구나 싶은가보다. 크게 떴던 눈가에 안도의 빛이 역력하다.
에고~. 쥐방울만한 며늘 년 앞에 엄니나 영감이나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엄니요.

  오늘도 이 며늘 년은 이렇게 참 못 된 며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