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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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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못드는밤


BY 햇반 2006-03-03


지난 봄, 매실을 담그며 가족건강을 실천하겠다던 남편.

20킬로 한박스의 매실을 사가지고 와서 원액을 만들고 나머지는

매실주를 담구었다.

평소에 음료나 물을 잘 마시지 않는 나는 매실이 숙성이 되든 발효가 되든

그다지 관심없었다.

여러달 지난후 매실이 우러 나자 남편은 적당이 물을 섞어 냉장고에

넣어 두기 시작했다.

아이들 마실때 가끔씩 마셔 보았는데 그 맛이 파는 매실쥬스와는 달랐다.

맛이 좋은것은 아이들이 먼저 안다.

아이들은 물처럼 매실음료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런지 커가는 아이들은

지난가을 ,겨울 감기 한번 안 걸렸다.

그렇게 겨우내내 열심히 먹고 원액이 떨어질때쯤 ,반은 여기저기 퍼 준걸 생각하고는

아까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실주는 그대로였다.

매실주에 매실원액을 섞어 먹으면 달콤한게 맛있다.

나는 술을 잘 못하지만 가끔 매운탕을 끓이는 날이면 기분이나마 내보겠다며 남편과 나누어 마신다.

하지만 깨끗하고 청정한 순소주만 고집하는 남편,술과는 별로 못친한 나때문에 우리집

매실주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전,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대구 매운탕 거리가 싱싱해 보이길래 사왔다.

남편은 한동안 술을 안마신터,오랫만이라 함께 마시자면 좋아할거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알콜에, 푸짐한 매운탕에, 마누라의 콧소리까지 흥겨워지자 남편이 잔을 넙죽넙죽 비워댔다.

입으로는 괜찮겠냐며 나 역시 인심좋은 주막집 아낙처럼 잔이 넘치도록 부어댔다.

아들 딸래미 마저 매운탕에 포도 쥬스를 열심히 마셔대다보니 금새 안주가 떨어진다.

그나마 내가 술자리에서 자리를 보존 하는것은 뭐니뭐니해도 안주때문인걸,

재운 양념 불고기를 전골냄비에 끓이기 시작하니 술상이 무르익는다.

난 얼마나 마셨을까....

그래봐야 소주잔으로 서너잔?

취기가 오르자 남편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운다.

술 탓이었는지 남편은 화장실에서 식탁을 찾아오는길을 그만 잃어버렸는지 아들방 침대에 뒹글고 있노라는

딸의 말과,얼굴이 새빨게진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딸의 부축을 받으며 딸래미 침대에 눞혀지고 말았다.


"양치도 안했는데...세수도안했는데..."

난 중얼중얼거리며 딸과 나란히 누워 천정을 보며 까마득히 먼 어둠속으로 휘휘 빨려 들기 시작했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아들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내 옆에 누워 말한다.

"엄마 아빠가 내 방에 팬티 벗어놓고 안방으로 갔어."

"어.."

"엄마... 아빠 팬티 어떻해?"

"어..입혀.."

"알았어. 엄마 나도 잘게."

"어.."

그리고 나가버린다.

제멋대로 벗겨졌을 남편의 팬티처럼 내 속이 뒤집히려한다.

갑자기 뱃속으로 꿀꺽꿀꺽 밀려들어간 알콜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그리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새벽 3시까지 무려 4번이나 화장실을 달려가야만했다.

머리속은 격렬한 전투라도 하는듯 욱신거리고 부숴질것같다.

몰골은 말이 아니다.

잠 못드는 새벽내내 곯아 떨어진 남편을 원망하며 깨울까말까,깨울까말까.

나만 못자는건 부당하다는 생각과,혹시 술이 잘못된게 아닐까.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게 아닐까.

남편도 깨워 보았지만 헛수고다.

대체 술에 뭘 탄거지?

걱정은 잠깐,머리 아픈거에 비할바가 아니다.

악몽이 따로없다.

내가 술과 친할래야 친할수 없는 상황.

간신히 잠을 청하고 청하고 그렇게 아침이 밝아왔나보다.


눈을 뜬 아침.....

불투명했던 안개속에 안개가 걷히듯 내 머리는 너무도 맑아 있었다.

게다가 속은 너무도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죽다 살아난 느낌.

죽다가 살아나면 이런 기분일거야.

하늘을 날을것 같은 기분이다.

아참,난 이런데...

얼른 안방으로 달려가 보았다.

이런,그럼 그렇지.

남편은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인다.

그래서 나 큰소리쳐본다.

어이,그만 좀 일어나지~

글구 대체 그 술에 뭘 탄거야?

사실대로 말해...어?

말하라구..

날 뭘 멕인거냐구...어?

짐짓 술이 덜깬 소리와 비슷하게 하려고 가끔 딸꾹질을 섞어가며 남편을 흔들어본다.


그날 하루 남편은 운신을 못할 정도로 두통에 시달렸다.

남편 말로는 자신은 소주 두병정도의 양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니,

서너잔 마신 나도 죽다 살았는데 그 양을 다 마신 남편은 오죽하랴 싶어

얼른 콩나물을 사러 슈퍼로 달려갔다.

휴,,,

공기는 왜 이렇게 좋은거람~

음,,,이 신선함~

죽다 살아난 느낌은 뭐든 감사하지...그럼그럼.

이렇게 가끔 죽다가 살아난다면...

 

술이 왜 그렇게 독했던가를 분석한 결과 숙성이 덜 된 까닭이라 결론을 내렸다.

흐~~술...

그건 독이더라.

아마 집에 남아있는 매실주...

아마 더이상 입에 대는 일은 없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