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이 있어 약 12주 교육을 받은적이 있다.
단순한 강의로 알고 갔지만 알고보니 집단상담 이란것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은 알겠지만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집단상담의
중요성이 크다고했다.
자신과 상담자들간의 대화로 자신의 문제와 외부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통찰하고 풀어 나가는 상담방법이라고했다.
대부분 다양한 연령대의 10명이 채 안되는 주부들이였다.
초, 중 ,고 자녀를 둔 그들은 비슷비슷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점은 많았지만 대화하는 방법에 있어(누구든)특별히
내가 배워야 할 점을 발견했다.
말하는 상대를 가리켜 직설적으로 "너"를 지시하지 않고 "나"의 기분과
나의 감정상태를 알릴때 상대방에게 전달이 더 잘된다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데 창밖으로 펑펑 눈이 내린다.
자칭 센치우먼에다 아이들 앞에서 오버를 잘하던터라
"오머머, 왠일이니~ 왠일이니~눈좀봐. 너무 이쁘다."
이러는건 식상해졌다.
아니, 그날따라 그런 행동은 격이 안 맞는다고나 할까.
고즈넉하고 아련한 풍경처럼 그날 아침의 눈은 내 마음의 고요를 차곡차곡
쌓듯이 품위있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뚝배기에 알(계란)탕이 식탁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우리식구가 건강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얘들아...봐바
너무 행복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저 예쁜 눈을 볼 수 있고
먹고 마실 수 있으니 난 너무 행복한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니?"
대수롭지 않게 모두들 "응.."이라고 대답했지만,엄마의 행복이 자신들의 행복보다 지대 크다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리라.
내 마음을 전하는것
그것이 바로 대화의 기본이라는것.
다시 한번 짚어본다.
실은 내가 하고 싶은 예기는...
그 강의에 참석한 주부 중에 60대 한분이 끼어 있었다.
딸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지만,맏이인 아들은 군대에 다녀 온 뒤,
복학할 생각도 없고 취업 할 생각도 않는다며 한숨을 토로하던 분이었다.
상담시간 그분 얘기를 듣다보니 당사자의 답답함이 얼마나 심할까
차라리 내 문제(자녀)는 별것도 아니구나 위로감마저 들었다.
아들 둔 부모는 딸 보다 더 부담을 느낄수 밖에 없다.
게다가 여자의 영향이 점점 두드러지는 시대이다 보니 자칫 아들 가진자의
오만에서 방심 하다 보면 아들은 "잘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뿐 아니라
딸의 반만도 못한 아들 어디가나 골칫거리 되기 쉽상 이라는 것이다.
잘난 아들 보면 잘난 아들 둔 부모가 부러운건 사실이다.
그러니 못난 아들 둔 부모의 입장은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 역시나 아들 때문에 매일매일 잔소리를 입에 담고 살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철들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건가.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아무래도 떡잎에 문제가 있으니 포기할까.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나와 남편에게 있는 문제며 가정환경의 문제,
여러가지 되짚어보고...
끝없이 심혈을 기우려 아들 하나 잘 되게 하기 위한 열망은 끝이 없다.
부모가 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들의 문제가 나오면 남편과의 마찰은 필수이고,
집안의 분위기는 급속히 냉기류로 급강하한다.
하나하나...
채근채근 풀어 나가야겠다.
사랑은 끊임없이 스스로와 하는 약속이다.
피 한방울 섞지 않은 남자와 수십년을 살기도 하는데
내 몸으로 낳은 자식하나 쯤이야 사랑으로 안 될게 뭐 있으랴.
내 기다리고 또 사랑하련다.
옛 사랑의 흔적들이야 세월에 씻기우고 희미해진다지만
세상에 뿌려진 너희들 흔적 마저 지워질소냐.
세상에 한점 네 이름을 새겨 놓을 때까지 기다리련다.